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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l 12. 2017

홍상수의 그 후

홍상수의 신작 <그 후>에서 ‘그 후’는 무엇을 뜻할까. 여러 해석할 수 지만, 대뜸 떠오르는 건 세상에 화제를 일으킨 '스캔들 그 후’의 이야기다. <그 후>에는 기시감을 일으키는 설정과 상황이 넘쳐난다. 가령 출판사 사장 봉완과 직원 창숙의 외도란 큰 소재가 그렇다.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의 이야기, 전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공통되는 부분인데, <그 후>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그 후’ 그러니까 속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밤의 해변>이 외도의 상대가 된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후>는 외도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전자에서 여자가 책을 받으며 끝난다면 후자는 남자가 여자에게 책을 주며 끝난다. 남자가 주는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동명 소설 '그 후'다. 이 소설의 제재는 외도이고 남자가 손에 쥔 모든 것과 사랑을 바꾸며 막을 내린다. 짓궂게 들리겠지만, 두 작품을 홍상수 필모그래피에서 '외도 2부작'으로 묶을 수 있겠다. 자신의 작품 활동에 틈입한 사적 사건을 역시 영화로 정리하고 ‘그 후’를 맞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그 후>에 관해선 영화와 관계없는 것이 너무 많이 이야기되는 한편 영화와 관계있는 것이 너무도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 대중은 홍상수와 김민희의 외도를 도덕적으로 심판하며 영화에 침을 뱉고, 평단은 모사 수준으로 재현된 스캔들에 관해 대동 단결하듯 함구한다. 사생활과 창작활동은 별개이니까, 영화 외 사건을 비난하는 세상으로부터 영화를 지켜내기 위해 내린 결단일까.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문제엔 세 층위의 윤리가 있다. 배우자를 등지는 외도는 잘못이란 사적 윤리가 하나고, 남의 사적 윤리를 공적으로 비난하는 건 잘못이란 보편 윤리와 작가의 사생활로 작품을 평가하지 말라는 비평/관객 윤리다. 셋은 각각 타당하고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홍상수가 자신의 사적 사건을 노골적으로 영화에 끌고 오기 전까진 그랬다. 이 상황에서 비평 윤리에 맹종하면 엄연한 영화의 구성물을 못 본 체 하는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의 엑스트라가 되어야 한다. <그 후>에 걸린 윤리적 쟁점은, 영화를 통해 외도를 미화하는 뻔뻔함이라기보다, 자신의 것만이 아닌 사적 사건을 함부로 재현하는 작가의 태도다.


<그 후>에는 의사와 무관하게 반복해서 불려 오는 존재가 있다. 홍상수의 아내(로 연상되는 인물이)다. 봉완의 아내는 외도라는 구도에서 홍상수의 아내를 연상케 하는 자리에 있고, 그가 김민희(아름)를 찾아가 따지는 장면은 널리 알려진 스캔들의 한 상황을 거의 재연한다. 재밌는 건 <밤의 해변>에서 외도에 빠진 당사자였던 김민희가 <그 후>에선 외도의 주변인이란 점이다. 봉완의 아내는 아름을 남편의 파트너로 오인한 채 다짜고짜 뺨을 때리고, 두 사람을 “악마들”이라 저주하며 홍상수 특유의 인물 풍자에 포섭당한다. 이 모든 모습이 동의하지 않은 채, 동의할 수 없을 방식으로, 세상 앞에 전시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김민희는 콘텍스트의 중력이 소거된 제삼자의 자리에서, “사장님 아내가 나한테 어떤 짓을 했는데요!”라고 콘텍스트가 스며든 메시지를 외친다.


<그 후>는 확실히 장인의 영화다. 약호 없이 빗발치는 플래시백과 흑백 화면의 무시간성은 인과 관계적 인식의 틀에 다공을 뚫고, 현실의 사건과 관계와 이름을 끌고 와 영화 속에 어긋나게 붙이고 뒤섞으며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희롱한다. 홍상수는 널리 알려진 사적 사건을 작품세계에 통합하는 야심을 실현했고, 작가의 자기 반영이 작품을 시시하게 망치지 않는다고 시연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 후>의 아름다움에 도취하려면, 거기 불려 온 ‘한 사람’을 영화의 구성 요소로 즐기는 한편, 그 사람의 실존을 외면하고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이건 사적 사건을 처리하는 공모자로 관객을 끌어들이며 다함께 그를 소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상황은 더 이상 예술과 분리된 감독의 사생활로 끝나지 않는다.


세르주 다네는 “우리 자리가 있지 않는 곳에 자리 잡아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의 자리에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재현의 윤리에 관한 격언을 남겼다. 영화는 현실을 다른 현실로 구성해 보여주고, 모든 것의 형상을 스크린에 빚어내는 재현의 연금술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그의 현실을 대신해 보여줄 자격과 권한이 없는 타자를 분별하고 침묵하는 일이 엄중한 것이다. <그 후>에서는 무언가가 질 나쁜 방식으로 말해지고 있다. 이곧 이 영화의 나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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