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연 씨 악플러 고소에 관한 다른 생각
김가연 씨가 오래전에 쓴 '악플러 고소 설명서'가 절찬리에 공유되고 있다. 누군가 거짓말을 퍼트리며 날 모욕한다면 법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대화로 수습할 수 없는 모욕에 처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고소의 칼을 빼들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모욕과 명예훼손을 민사뿐 아니라 형사소송으로 처벌한다. 그 소송이 일상화될 때 진실을 알리는 폭로도 처벌받기 쉬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로 다툴 문제에 법이 강림하는 건 진실을 발화하는 입을 악다물게 하는 압력이다. 알다시피 법은 평등하지 않다. 법은 돈과 힘을 가진 자들과 친하다. 김가연 씨가 악플러들을 향해 장쾌하게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도 그가 돈 많은 유명인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지위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도 고용하지 않고 악플을 프린트해 경찰서로 가봤자, 그런 작은 사건을 무겁게 대하는 경관은 없다.
명예훼손과 모욕죄 고소는 약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말의 힘에 의지해 사회에 각성과 연대를 호소해야만 폭력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 잇따른 성폭력 폭로 사건에서, 가해 혐의자들은 하나같이 "법대로" 하자며 폭로자들을 수세에 몰았다. '인생은 실전'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이 세상은 약한 자일수록 혹독한 삶을 사는 불공정한 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김가연 씨를 영웅시하는 장삼이사들의 사회경제적 자리는 김가연 씨보다 그 너절한 악플러들에 가깝다. '인실좆'에 환호하며 '팝콘'을 씹는 순간, 자신의 발 밑을 파먹으며 관람료를 지불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말했듯이, 개인들이 악플로 겪는 고통과 그것을 고소하는 결단은 존중한다. 적어도 그 무용담에 취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나는 '인실좆'이란 말이 끔찍하다. 철부지야, 인생은 실전이니 세상의 쓴 맛을 보아라, 는 통보가 무엇인가. 어떠한 보호 장구와 체급을 보정하는 평등의 규칙도 발가 벗은 채, 맨 몸의 자력으로 이 압도적 세상과 대결해 보라는 일그러진 웃음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며, 타인의 순진함과 허약함을 야유하는 쾌감인 것이다. 머리로는 약자를 편드는 사람들조차 입으로는 저 말을 뱉고는 한다. 약한 것에 대한 환멸과 강한 것을 향한 동경, 적자생존의 숙명에 대한 복종심이 이 시대 사람들 마음의 골수에 스며들어있다는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