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광장을 결산하며
1
연말의 광장을 결산하자. 작년 광장이 02년·08년 광장과 구별되는 본질적 정체성은 "이번엔 승리했다"는 것이다. 승리야 말로 가장 큰 성과다. 나라의 중대사를 내 손으로 결정지었다는 쾌거, 이런 정치적 효능감이야말로 한국 유권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었다. 주권자 의식을 깨울 수 있으며, 사회에 누적된 정치혐오,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냉소하는 수동성을 극복할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천관율 기자처럼 "승리했다"는 결과로 상황을 소급해 “의회와 광장의 이분법이 무너졌”고 “위험한 저항권 대신 단호한 비폭력으로 움직였다”며 의미를 덧칠하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 광장의 승리는 군중의 역량은 물론 과거의 광장과 달랐던 조건에 힘입은 점도 크기 때문이다. 08년 광우병 촛불은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한 협상을 캔슬하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를 잡았다. 그에 비해 탄핵안 가결은 현실 가능성이 충분했다. 08년엔 새 정부가 출범한 여대야소의 정국이었지만 이번엔 대선을 앞둔 여소야대의 정국이라 의회를 움직이기 훨씬 편했다. 탄핵은 국회에서 회부해야 진행되는 사안이라, 대의 민주주의 목적의식 같은 것이 아니라도 광장은 의회를 조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외적 변수를 간과하고 시민들의 '정치적 각성'을 강조하는 건 광장 한 편에서 여전히 노출된 한계, 앞으로의 과제를 덮는 과잉해석이다.
2
‘평화 시위’부터 짚고 가자. 이번 집회는 거의 완벽한 평화시위였다. 이를 예찬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질서에 대한 복종 의식이라 의문을 품는 관점도 있다. 이 논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과대성장국가’란 개념이다. 파키스탄의 정치경제학자 함자 알라비가 사용한 개념으로 탈식민국가들이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통치기구를 물려받은 결과 사회경제적 토대에 비해 비대한 국가기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이 일제 경찰력을 치안기구로 흡수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은 좌파세력을 척살하고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민중을 탈동원했고, 그 과정에서 군·검·경, 방첩기구로 이뤄진 국가 강권력이 발달했다. 한국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중앙집권 국가의 확고한 전통이 있었다. 60~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은 권위주의 정부가 절대적 주도권을 쥔 산업화를 단행했고, 민주화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중앙정보부 같은 정보기구에 힘을 몰아줬다. 이 말의 뜻은 한국이란 국가의 토대가 국가에 대한 저항을 억압하는 데 역량을 투여하는 반복 과정 속에 성장했으며, 그것을 능히 수행할 만큼 국가가 강력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잔재를 상속한 현 정부가 사회운동을 적대하고, 의경 제도의 존재 이유가 시위 진압인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시위대에 대한 국가의 폭력진압은 논외하고 국가에 대한 시위대의 폭력만 고발하는 ‘폭력 시위’ 프레임도 그 일환이다.
문제의 근원은 국가주의의 강함과 개인주의의 약함이란 전통이다. 서구에서 국가는 개념적으로 개인들의 사익을 보호하기 위한 계약의 산물이며, 사적 활동이 일어나는 시민사회의 대리기구다. 반면 한국에서 국가는 개인이 태어나기 이전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이다. 한국에 서구적 시민사회의 전통이 부재함을 뜻하는데, 정치학자 최장집은 한국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공적·보편적 이익이 조직되는 운동의 공간이었다 정의하며, 사적 이익의 표출과 그에 기반을 둔 조직적 활동이라는 시민사회 본연의 정체성을 백안시하게 되었다고 해설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군사독재라는 타락한 정부를 민주주의라는 성스러운 도덕으로 정화한 국가주의적·집단주의적 열정으로 전승되고 있다는 암시를 얻는다. 과거 두 차례 촛불 시위 또한 굴욕적 소파 협정, 불공정 소고기 협상을 지목하며 “국가적 자존심”을 세우자는 기저 심리가 팽팽했다. 이렇게 해석할 때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의 전통을 잇는 촛불시민들이 ‘외부세력’을 백안시하고 운동에 사익이 개입하는 것을 금기시하며 국가를 향한 폭력을 죄악시하는 프레임에 공명하는 것은 매끄럽게 설명된다. 광장은 국가와 정부를 명확히 분리했고, 후자에는 반역해도 전자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08년 광장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구호가 메아리쳤지만, 개인들의 합의체로서의 국가를 강조했다기보다, 국가를 찬탈한 정부에 대항해 국민 자신을 국가라는 거룩한 대상과 동일시하려는 몸짓이었던 것 같다. 단적으로, 의경이란 강권력 집단 또한 국가의 물리적 촉수의 재현으로 이해되고 있는 건 아닐까. 국가와 맞서 싸우지 않음으로써 국민으로서의 정당성을 인증하려 하는 건 아닐까.
혹자는 ‘헬조선’ 같은 유행어가 퍼졌듯, 과거와 달리 한국에 대한 환멸이 아득한 것을 들어 과연 시민들이 아직도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있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이것은 “개인에 대한 국가의 우위”란 맥락에서 국가주의의 또 다른 증상이거나 반작용에 가깝다. 여전히 국가는 개인에 대해 지나치게 강하다. 국가를 재구성하거나 다시 건설하는 사회적 가능성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국가에 복종하거나 국가를 포기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지 밖에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한국 국민은 거대하게 분출해 온 사회 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국가의 정상성을 세우는 것을 넘어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는 명확히 다다른 적 없다. 광장의 승리 뒤에서 다시금 시작해야 하는 고민, 평화시위에 관한 논쟁 심층에 깔린 쟁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는 곧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을 넘은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라는 물음과 이어진다.
3
연말 광장의 또 다른 정체성은 광장 내부에서 별도의 의제가 제기돼 논쟁됐다는 사실이다. DOC 여성혐오 논란이다. 과거의 광장에서도 대오 내부에서 논쟁은 있었다. 폭력 시위는 안 된다거나 운동권 깃발을 내리라거나, 시위의 형식과 전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성 문제 같은 독립된 안건이 떠오른 건 처음일 것 같다. '수취인분명‘에 여성혐오 가사가 있느냐 없느냐는 종료된 논쟁을 되풀이할 생각 없다. 여기서 주목할 건 전통적 시위의 관성에 젖어있던 대오가 이 새로운 안건에 대응한 양상이다. 주로 남성들로 구성된 이들은 “노래에 대해 이견이 있다고 무대에 세우지도 않는 건 박근혜식 검열이다”와 “탄핵이란 큰 목표가 있는데 우리끼리 싸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자신이 명분으로 건 가치와 완벽히 반대 방향으로 표류하는 주장이다.
민주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인민의 자기 지배다. 그것은 인민 모두가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하는 체제다. 시민권 인구가 3~4만 명에 불과한 고대 아테네에선 이 정의에 근접할 수 있었다.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근대 국민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채택된 것이 주권을 위임할 정치인을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다. 문제는 주권의 소재가 단일하지 않고 수천만 국민 손에 흩어져 있으며 그 모두의 정체성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의 집합적 선호가 통치 권력을 차지할 때 나머지 국민의 주권은 소외될 위기에 처한다. 때문에 대의민주주의 과제는 다수결에서 패배한 소수의 의사를 존중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에 쓰이는 장치가 숙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다. 다양성과 다름의 존중 같은 가치는 허공에 뜬 미사여구가 아니다. 이렇듯 모든 인민의 주권을 가능한 평등하게 관철하려는 이상의 수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DOC 보이콧은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 앞장 서서 부르짖었는데, 얼마나 무지에 찬 주장인지 재론할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언뜻 표현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수호하는 듯 보인다. 사실은 “민주사회에서 이견을 배제하는 검열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교리를 아래에 깔고, 상대의 이견을 검열 이미지에 포개며 공론장에서 배제하려는 짓이다. “큰 목표를 앞에 두고 싸우지 말자”는 주장도 그렇다. 이렇듯 거대한 이상을 제시하여 개인을 집단에 종속시키는 건 정확히 전체주의의 개념이다. 산업화라는 시급한 대의를 제창하며 사회 구성원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집단주의, 효율 지상주의가 바로 시민들이 청산하려 하는 박정희 체제의 본성 아니었던가? 여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정체성 중 하나이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적으로 주장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부여한 권리이며, 민주주의는 소란스러운 분열을 통해 학습된다. 한국 사회가 조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할 때, 외부로부터 단번에 주어진 민주주의를 시민의식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최장집의 말처럼 세금납부자선거체제를 둘러싼 사회 각층의 참정권 투쟁으로 투표권과 함께 실질적 권리가 기층까지 확장되는 과정없이 보통선거가 도입되었다는 것이 진실에 맞다. 어쩌면 사회는 뒤늦게 그런 성장통을 겪는 중인지 모른다. 한국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에 불타는 이들조차 그것을 각자의 삶에 앞서는 교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가 초월적 관념이 되어 대오의 분열을 용납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의 깃발을 들고 민주주의의 등을 찌르는 가장 배은망덕한 배신이다.
4
87년 체제의 한계는 민주주의에 대한 절차적인 것 이상의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한계라기보다, 그 당시 주어진 조건에 따른 현실적 목표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 사회는 87년에 1차 종결된 절차적 민주주의의 최종적 공고화를 이루는 단계에 도착했는지 모른다. 앞으로의 목표는 자명하다. 절차적인 것을 넘어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다. 연말의 광장을 다소 회의적인 어조로 회고했지만, 저 모든 소음은 민주주의의 과도기가 내는 소리일 것이다. DOC 논란은 민주화 운동과 페미니즘 의제가 결합한 역사적 사건이고, 그런 사건이 일어날 만큼 한국 사회에 ‘다른 의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비폭력 시위에서 긍정적 맥락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엄기호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시민들의 준법 실천을 “우리에게 자치능력이 있다”는 퍼포먼스로 해석했는데 인상 깊은 지적이다. 다만 그런 과정 속에 ‘프락치 논란’과 의경 버스에 붙은 구호 스티커를 떼어주는 강박이 엿보인 것도 사실이며, 한 공중파 다큐 프로는 광장을 우호적으로 결산하면서도 운동권 혐오를 노출했다. 그런 만큼 ‘승리’라는 마침표를 크게 찍기보다 광장의 함의를 지속적으로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령 이번 시위는 굉장히 특수하고 예외적인 사례인데, 모든 집회가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은 합의해야 한다. 폭력과 비폭력의 시위 형식 보다 시위를 통해 주장하는 내용으로 그 정당성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단 것도 말할 나위 없다.
이번 시위의 한 특징은 과거와 같이 온라인을 거점으로 조직된 것은 물론, 정세와 여론에 실시간 대응하며 변화했다는 것이다. 무대 사회자들은 장애인·여성 혐오 발언을 몰아내 달라는 SNS 피드백을 전파했으며, 정부의 도발과 국회의 느슨한 태도를 제압하려 촛불은 횃불로 교체됐다. 앞서 언급한 '평화시위'에 대한 강박적 촌극도 집회를 거듭하며 반복해서 재연되진 않았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성장기의 한 장면에 있다는 뜻이다. 지난 겨울의 광장에 나갔던 경험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결연해 보이면서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내 삶을 사방에서 포위하던 문제의 뿌리 하나를 드디어 확인했다는 '반가움',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열의, 이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한다는 든든함 아니었을까. 그런 열의 속에 저마다가 원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나눈다면 민주주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하늘을 나는 새의 시점으로 내려다본 청사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불균질한 비전을 공적 화폭에 종합한 몽타주다. 그것은 나쁜 정부와의 성전으로 단번에 수복할 수 있는 성지가 아니다. 앤소니 기든스의 말처럼, 남은 과제는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민주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