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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Sep 24. 2017

'혼자 화난 래퍼들'에 부쳐2

비판들에 대한 정리와 대답

지난주에 쓴 ‘혼자 화난 래퍼들’이 매체들을 통해 중복 발행되었고, 지난주보다 많이 공유되었다. 더 많이 공유된 만큼 피드백도 더 많다. 공감을 표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비판도 있었다. 그것들을 큰 틀에서 묶고 나누어 짧게 대답한다.


한국 힙합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아닌가? 힙합이란 음악엔 긍정성의 가치가 있고 대중은 그것에 감응하고 있다. 그래서 힙합이 젊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 음악적으로 사회적으로 힙합이 각광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힙합을 흥미로워하는 대중은 많다. 힙합은 주류 음악이 됐다”라고 글을 열었다. 하지만 힙합을 거북해하는 대중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 글의 초점은 거기에 있다. 그리고 대중이 힙합의 무엇에 이끌리냐는 추론은 힙합이 부흥한 지난 몇 년 동안 힙합의 어떤 얼굴이 전면에 진열돼 있었는지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쇼미더머니, 디스 가사와 혐오 가사, 돈 자랑, 성질 자랑. 긍정성의 가치인가? 적어도 한국 힙합에 저런 부정적 가치, 보는 이를 질리게 하는 표정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SNS와 스마트폰 시대에 전 세계 트렌드는 실시간 전파된다. 한국 힙합도 그런 환경에서 미국 힙합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걸 막을 도리는 없다. 리치 치가도 미국적 클리셰를 따라 하며 글로벌 스타가 된 아시안 래퍼다.

: 나는 클리셰를 따라 하는 걸 비판하지 않았다. 클리셰로 획일화된 작태, 로컬라이징에 관한 고민이 없는 실태를 지적했을 뿐이다. 해외 동향을 접하기 쉬운 환경이 펼쳐졌다는 사실이 그 동향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논리적으로 통하지도 않는다. 해외의 동향을 폭넓게 흡수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낸다는 선택지도 있다. 오히려 미디어의 국경이 지워진 오늘날이야 말로 그런 작업을 실천하기 마땅한 기회일 수 있다. 생각 없이 흉내 내는 건 쉽고 독창성을 더하며 창작하는 건 어렵겠지만 말이다. 이건 뭘 막고 말고 가 아니라 문화의 창작자들이 향유자들과 되먹임을 나누고 전망을 모색하는 문제다. 그리고 리치 치가는 한국 래퍼들처럼 클리셰를 강박적으로 모사하며 스웨거에 목매는 케이스가 아니다. 게토와 동떨어진 정체성, 콘텍스트를 배경으로 드러내고 클리셰를 '패러디'하며 키치함을 연출한 래퍼다. 꼭 한국화된 토종 힙합을 하라는 게 아니다. 요컨대, 로컬라이징이란 의제를 의식하고 매력 있는 음악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돌파구는 각자의 선택과 위치, 캐릭터에 따라 달라지겠고, 리치 치가처럼 클리셰 패러디를 통해 참신한 효과를 내는 것도 한 해답이다.



우원재를 칭찬하는 건 좋은데 왜 다른 래퍼들을 깔아뭉개는가?


: 내 글은 우원재에 관한 단락으로 끝나지만 한국 힙합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단락으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후자가 전자보다 몇 배는 길다. 우원재를 칭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국 힙합을 진단하고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다. 문제를 극복할 하나의 대안으로 우원재를 지명한 것이다. “한국 래퍼들은 이 신참 래퍼에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야 한다”는 종결 구에 울컥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힙합처럼 형식 파괴적이고 자유분방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선후배 찾기 유교 근성에 빠져서야 쓰겠는가. 씨잼이 ‘신기루’라는 트랙으로 동료 래퍼들의 추태를 경멸하고 호평받은 것처럼, 비평하는 사람도 비평의 대상을 신랄하게 꼬집을 권한이 있다. 얼마나 훌륭한 논거로 정확하게 꼬집느냐가 요점이고, 저 정도 표현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글에 발끈하는 일부 래퍼와 힙합 매거진 관계자들에게 궁금하다. 블랙넛이 명분도 논리도 없이 집요하게 키디비를 모욕할 때도 ‘예의’를 찾으며 목소리를 냈었는지. 물론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블랙넛 같은 인물을 에미넴과 비교하고 영리한 래퍼라고 칭찬하는 게 못마땅하다.


: 실제로 비슷한 걸 어쩌겠는가. 사실 에미넴은 언어폭력에서 블랙넛 보다 몇 술은 더 뜨는 위인이다. 블랙넛이 키디비를 밑도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는 것도 에미넴이 여성 뮤지션들을 괴롭힌 걸 벤치마킹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다. 에미넴과 비슷하니까 용납하자거나 대단하다는 말이 아니란 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다. 내 글의 논조는 한국 래퍼들을 망신 주며 전개될 수밖에 없는 프레임이었다. 때문에 평가할 대목은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블랙넛 같은 래퍼의 장점도 밝혀준 것이다. 내가 블랙넛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동안 내가 쓴 글과 내 SNS 계정을 봐온 사람은 알 것이다.



우원재 외에도 좋은 가사를 쓰는 래퍼들, 로컬라이징을 시도한 선각자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를 지워선 안 된다.

: 옳은 지적이다. 그 글에서도 말했듯, 한국 힙합 태동기에는 로컬라이징이 뜨거운 논제였고, 가리온과 UMC UW, 피타입, 타이거 JK 등등의 시니어 래퍼는 이 논제에 공로가 있다. 다만 모든 글에는 분량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 글은 지금 상태로도 원고지 60 매다. 모든 래퍼들을 거론할 순 없었고, 주류 힙합을 목도하는 대중을 상대로 쓴 글이기에 소통하기 쉬운 래퍼를 골랐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가사적 방법론에서 주류 힙합과 반대되는 길을 걸어온 래퍼들도 주류 래퍼들의 윤리적 잘못을 공유하거나 더 심한 경우가 있다. 차붐, 화지, 저스디스가 이런 케이스인데, 그들의 가사에선 여성혐오 표현 등이 감춰지지 않은 채 시뻘겋다. 우원재의 캐릭터는 ‘아래로 주먹을 휘두르는’ 블랙넛과 대구를 짓기 좋았고, 그가 쓴 ‘시차’는 로컬라이징이란 의제에 특화된 장점을 품었다. 지금 한국 힙합에 부족한 게 무엇인지 이보다 잘 환기할 수 있는 예시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진정성을 좋아해~ 힙합에서 진정성 찾는 건 촌스러운 거요


: 60매 분량의 글을 쓰는 동안 진정성의 ㅈ도 쓰지 않았다. 진정성이 아니라 로컬라이징이란 개념을 반복해서 강조했을 따름이다. 있는 그대로의 논리를 논파할 능력이 안 되니까 일소하기 쉬운 개념으로 바꿔 치고 빈정대는 게 아닐까.



“길게 말할 것 없이 솔직하게 털어 놓으쇼. 잘 나가는 래퍼들 부럽고 배 아프다고 왜 말을 못해~


: 이쯤 되면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내가 만약 “당신은 잘 나가는 래퍼들한테 빌붙어 먹고 사니까 나처럼 분위기 깨는 사람이 미운 거겠지”라고 대꾸한다면 멀쩡하고 똑똑한 반박일까? 더 말할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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