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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18. 2017

비판에 의한 존중

지금껏 쓴 힙합 비평을 돌아보며

요 일 년 동안 힙합에 관한 관심을 회복했고 스무 편에 이르는 글을 썼다. 그 글들을 한국 힙합 비평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사실 내 관심사는 힙합보다 넓다. 영화 비평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 울타리를 뛰어 넘길 망설이지 않았다. 정치 ᆞ사회 ᆞ문화적 쟁점에 관해 닥치는 대로 글을 써 왔다. 내 흥미와 탐구심이 이끄는 대로 원고지 위를 활보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름의 공부와 사색, 글쓰기 수련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내가 쓰는 힙합 비평은 장르 비평 안에서 깊이를 추구하는 분들이 쓰는 글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있고, 기존의 비평과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려하는 글은 사회적 의의를 찾는 데 치우쳐 장르를 서툴게 넘겨짚는 글도, 그 반대의 글도 아니다. 문화 비평과 장르 비평 사이, 그 좁은 궤도를 오차 없이 비행하는 글을 쓰고 싶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블랙 뮤직 애호가로 지냈다. 내 관점과 지식은 오래전부터 장르 비평의 길을 닦아 온 이들에게서 종잣돈을 떼어 와 불린 것이다. 특히 사이트가 운영 중단돼 리뉴얼되기 이전의 리드머에서 많은 것을 읽고 배웠다. 힙합 플레야가 진행한 뮤지션 인터뷰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견문을 많이 넓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힙합 매거진의 존재가 희소했다. 일 세대 래퍼들이 한국 힙합이란 장소를 개척한 것처럼 힙합 크리틱과 저널리즘에도 일세대가 있다. 나는 이름을 불문하고 그 모든 이들의 자취에 리스펙을 품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힙합 대부라는 묘한 말이 연예 신문 헤드라인의 상투어가 됐지만, 한국 힙합이란 기념비는 누구 한 사람이 세운 것도 아니고 그러기도 불가능했다. 이십 년은 방대한 시간이었고, 이름 난 래퍼와 이름 없는 래퍼, 스쳐 간 사람과 버텨 낸 사람, 성공한 인물과 실패한 인물 모두의 행보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이뤘다. 좀 더 많은 것을 이룬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있겠다. 그것도 간과할 수 없는 차이다. 이런 협업의 오케스트라는 힙합 신의 모든 분과를 아우른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누군가의 견해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리스펙을 져버린 태도는 아니다. 오히려 상호 비판과 논쟁은 힙합 신의 담론을 풍성하게 하고 독자들에게 더 많은 관점을 펼쳐 보여주는 협업이 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존중과 현재를 향한 비판은 조화로울 수 있고, 경쟁 역시 리스펙의 한 형태다. 만약 내가 무언가를 비판한다면 무엇보다 그것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비판의 논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나 역시 그러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런 논리가 정당하려면 나 자신이 나보다 큰 대상에 관해 글을 쓰고 있으며 내가 이 오케스트라의 일개 연주자라는 사실을 긍정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고, 내가 모르는 것을 잘 아는 누군가가 있음을 자각하는 것. 타인과 세상을 향한 리스펙을 잃지 않는 열쇠는 겸손함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지금껏 이 원칙을 지키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다만 공적으로 발행된 글이 원칙에 어긋난 적은 없다. 앞으로도 계기가 생긴다면 힙합에 관한 글을 쓸 것이고 내가 쫓아온 논조에서 바뀌는 건 없을 것 같다. 정확한 글, 새로운 글을 쓰고 세상 앞에 정직하면 된다. 무익한 다툼과 거짓된 논거, 지적 허영심을 경계하며.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리스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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