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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12. 2017

혐오가 낳는 사회의식

한국 힙합과 페미니즘이 동행해야 하는 까닭

오왼 오바도즈는 평소 사회적 의식을 표현하는 래퍼, 소위 컨셔스 래퍼를 자처해왔고 박근혜 게이트 때는 시국선언 트랙까지 냈다. 그런 래퍼가 여고생 팬에게 "안 줄 거면 그냥 가라" 폭언을 하고, "백인 여자들을 강간하고 싶어 못 참겠다"라고 극언을 했다. 사실, 컨셔스 래퍼들조차 여성혐오에 빠지곤 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고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들은 진지한 토론을 남성들의 몫으로, 하찮은 일을 여성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사회적 랩을 할 때 여성들의 존재는 열외 되고, 심지어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사회의식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 점은 래퍼들 뿐 아니라 많은 평범한 남자들이 정치와 공동체를 논할 때 따르게 되는 관성이다. "여자들은 연예 뉴스나 보고 정치에 무관심하다. 포털 사이트 정치 기사에 댓글을 남기는 사람 대다수가 남자다"처럼 생각 없는 여자들이 세상을 좀 먹는다고 풍속을 비판하는 것이다. 가령 낭비에 찌들고 동료에 대한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이 없는 '된장녀'를 욕하며 사회 문제에 발언한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은 많다. 그러니까 스윙스가 컨셔스 랩이라고 '리얼 레이디' 같은 노래를 만든 거지.


이건 교차적 관점이 결핍돼있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계층성과 정체성이 결합된 사회 문제의 다층성을 깨닫지 못하고 남성이란 정체성을 보편화하여 세상을 가늠하는 것이다. <쇼미더머니> 이번 시즌에 나와 스타가 된 넉살은 작년에 '작은 것들의 신'이란 앨범을 발표하며 깊이 있는 가사와 사회적 시선을 인정받았는데, 그가 이 앨범에서 말하는 '작은 것들'은 여성과 성 소수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가 아니라 보편적 덩어리의 약자다. 넉살은 여기에 삼십 대에 이르도록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남은 자신의 처지를 투영했고, 이 앨범은 기존의 세대론에서 익히 다루던 꿈 많고 가난한 청년이라는 '남성화된 약자'들을 호명하게 되었다. 이런 호명을 통해선 남성이란 지배적 젠더를 부여받지 않은 소수자들의 이름은 부를 수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앨범 중 'Hood'라는 트랙은 메스로 얼굴을 뜯어고치고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한 젊은 여성의 '타락'을 스토리텔링 한다. 이건 용모와 신체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소외하고 정조의 보존 상태로 여성의 존엄을 평가하는 대상화이며, 그 대상화가 규정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여성이 겪는 징벌적 몰락을 관조하며 페이소스를 얻는 여성혐오적 문학관이다. 만약 누군가 소수자 혐오에 빠진 한국 힙합에 대한 해독제로서 '작은 것들의 신'을 상찬 한다면 소수자 의제에 대한 개념 파악이 잘못된 오독이다.


나는 많은 래퍼들과 '보통 사람'들이 꼭 악의와 오만에 취해 여성을 이등시민 취급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주어진 원리이자 질서이기 때문에 그것을 의문시할 계기도 부족한 것이다. 요즘 어느 페미니스트 교사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게 그래서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을 배우며 남자들의 도덕을 배우고 사회를 배우며 여자들을 뺀 사회를 배우고 국어를 배우면서 여자들을 무시하는 언어를 배운다. 이건 이념이 아니라 시민 교육의 문제다. 몇몇 래퍼들의 가사와 인터뷰를 보면 최근 자신들을 향해 제기되는 비판을 "예민한 여자들의 히스테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모르는 사람한텐 친절하게 알려줘야지 비난을 하면 어떡하냐" 발끈하는 경우도 보인다(힙합 le 저스트뮤직 인터뷰). 그건 곧 남자들에게 가부장적인 것 외에 세상을 인식하는 프레임이 없다는 뜻이다. 그 프레임을 구조 조정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국 힙합을 즐겨 듣지만 여성혐오 가사가 식도에 걸린 가시 같아서 갈등에 빠진다고 토로하는 여성들이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트렌드를 넘어 메인스트림이 되어가는 만큼 이런 갈등에 빠지는 여성 팬들, 그들의 이의 제기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페미니즘은 한국 힙합의 갈 길을 막는 훼방꾼이 아니라 한국 힙합이 더 많은 리스너들과 리스펙을 나누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창작자들이 이 점을 깨달아야 문화가 품은 독소가 향유자들에게 전가되는 굴레를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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