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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19. 2017

시그니처로서의 스네어

https://youtu.be/ImAHVHQDseQ


힙합 커뮤니티에선 그레이가 비트를 준 비프리의 'Hot Summer'가 최고의 붐뱁 비트로 꼽히곤 한다(붐뱁 비트란 주로 샘플링으로 만든, 80~90 bpm 정도의 둔탁한 계열의 드럼으로 찍은 비트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클래식한 힙합의 비트인데, 도끼 콰이엇 등의 '공중도덕' 전반부가 붐뱁 비트다.) 잘 만든 비트라고 동의하지만 저런 평가는 어긋난 것 같다. 'Hot Summer'는 붐뱁의 정체성이 변주된 비트다. 붐뱁의 매력은 심플하고 강력한 룹의 반복인데 'Hot Summer'는 편곡에 변화가 많다. 드럼 종류와 진행이 수 차례 바뀌고 편곡의 멜로디 구성도 벌스와 훅, 브릿지를 오가며 교체된다. 이건 가요식 작법에도 능한 그레이의 재치인 것 같다.


무엇보다 붐뱁의 진수는 스네어의 톤과 질감에 있다. 드럼이 쿵 치 딱 할 때 '딱'하고 터지는 스네어 말이다. 스네어는 힙합이란 백 비트 음악의 무게 중심이자 드럼의 타격감에 기반을 둔 붐뱁 사운드에서 가장 타격감이 큰 부분이다. 이 점이 808 드럼 셋을 공유하는 까닭에 드럼 질감의 차이가 크지 않은 서던 스타일 힙합과 붐뱁의 또 다른 변별점이기도 하다. 'Hot Summer'는 스네어의 특징과 장점이 충분하지 않다. 하이햇도 그렇고 신시사이저 프리셋의 펑퍼짐한 스네어를 적절히 가공한 것 같은 무난한 질감이다.  


이건 'Hot Summer'의 단점이라기보다 그레이라는 만능형 비트 메이커, 붐뱁이 스탠더드의 지위를 잃고 다른 하위 장르와 공존하게 된 시대적 성격의 반영인 것 같다. 소위 미국 힙합의 90년대 골든 에라와 그 황금기를 멀리서 꿈꾸던 00년대 한국 힙합에선 붐뱁 비트가 주류였고 스네어가 비트 메이커의 한 정체성이었다. 어떤 샘플을 쓰든 일관된 자질의 스네어가 쓰이곤 했고, 그것이 비트 메이커의 인장과 클래스로 통용되었다. 요즘엔 프로듀서들이 비트 도입부에서 "그레이" "그루비 에브리웨어" "지 알 보이" "제이와이피!(...)"라고 외치지만, 그때는 스네어가 시그니쳐 사운드였던 것이다. 즉 비트의 완성도가 스네어를 운용하는 비트 메이커의 디스코 그라피 속에서 연속적으로, 배타적으로 평가받은 측면이 있다. 누구의 스네어엔 존재감이 확실하다든가, 누구가 피트 락 스네어를 훔쳐 썼다든가 하는 말이 심심찮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붐뱁을, 붐뱁만 찍는 비트 메이커가 많지 않다. 스네어의 고유성을 평가할 만한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붐뱁의 시대가 끝난 후 힙합을 듣게 된 리스너들도 이런 평가 기준을 접해보거나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힙합 커뮤니티에서조차 무단 샘플링을 라이선스의 차원이 아닌 표절로 간주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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