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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12. 2018

일상의 탄생

<드래곤볼>과 프랜차이즈적 일상성

의심할 나위 없이 <드래곤볼>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저명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을 획득했고, 문화산업과 사회상에 기념비를 세운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달리, <드래곤볼>은 이름을 아는 사람 대부분이 직접 읽어봤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금껏 출판된 <드래곤볼> 코믹스는 2억 3천만 부 이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발행된 도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치다. 이제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은 동시대를 감도는 공기이자, 인류 문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명사가 됐다. 소위 하위문화의 입지를 이만큼 도약시킨 장본인 중 하나라는 점에, 역시 <드래곤볼>의 위대함이 있다.      


얼마 전엔 <드래곤볼>의 최신 애니메이션 시리즈 <드래곤볼 슈퍼>가 방영되었다. <드래곤볼> 희대의 악당이자 주인공 손오공의 영원한 숙적, 프리더가 손오공과 콤비네이션을 펼쳐 보스 캐릭터를 격퇴한 이채로운 결말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드래곤볼>은 코믹스 첫 화가 발표된 1984년부터 <드래곤볼 슈퍼>가 종영한 2018년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리고 또 다른 후속작들이 발표돼 엔딩 없는 엔딩 스토리를 써갈 것이다. 원작 코믹스가 완결된 95년 이후 무수한 번외물이 발표되었지만, <드래곤볼 슈퍼>가 특별한 점은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가 유일하게 정식 후속작으로 공인하며, <드래곤볼> 정사에 편입되는 동시에 정사를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드래곤볼>의 업적 중 하나는 일본 만화계를 통치하는 배틀 장르-소년 만화의 관습을 확립한 것이다. 원작 <드래곤볼>은 연재 도중 작풍이 크게 요동친 만화인데, 그에 따라 세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일 부는 드래곤볼 찾기 모험과 천하제일 무도회가 이어지는 ‘피콜로 대마왕 전’ 까지고, 손오공의 형 라데츠가 등장하는 ‘사이어인 전’부터 ‘셀 전’까지가 이 부다. 마지막은 나머지 ‘마인부우 전’이다. 일 부는 서유기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명랑 활극의 성격이 강하고, 이 부는 일 부에서 제시된 설정들을 SF-아포칼립스적 세계관으로 교체하고 흡수한 배틀 만화다. 삼 부에선 그때껏 선보인 작풍을 통합하며 원점으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을 준다. <드래곤볼>의 정수는 이 부, 특히 사이어인이란 설정에 있다. 더 강한 적수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에스컬레이팅 시스템, 전투의 재능을 타고난 일인자와 그를 추월하려 고뇌하는 이인자의 경쟁구도, 무력을 수치로 표현해주는 전투력 시스템, 파워업을 끌어내는 변신 시스템 등 이후의 소년만화에서 볼 수 있는 장치가 여기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요소를 추동하는 중심 장치가 강자와의 싸움을 갈구하는 전투민족 사이어인이다.      


이 시스템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키워드는 ‘밸런스’다. 캐릭터들의 배틀이 만화의 콘텐츠이기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에게 어떤 전투력을 부여하고 어떻게 전투력의 고하를 정하느냐가 연출의 생명 줄이다. 어느 만큼의 힘을 가진 적을 어떤 순서로 등장시킬 것인가가 곧 만화의 줄거리가 되고, 전투력 시스템 내에서 캐릭터들이 배정받은 좌표가 그들의 개성을 이루어 캐릭터 플레이의 무대가 마련된다. 파워 밸런스의 조율에 따라 서사적 몰입감이 형성되고, 그것을 운영하는 수준에 따라 서사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드래곤볼>은 서사의 짜임새가 단순한 만화이고, 이 경향은 후반부로 갈수록 심화한다. 가령 일 부에선 꼬마 손오공이 레드 리본 군을 물리치고 다니며 만나는 인물들과 거기서 발생하는 에피소드가 중요했기에 서사적 요소와 배틀 물의 요소가 구분됐었다. 하지만 이 부에서는 전자가 후자에 종속되며, 파워 밸런스가 서사의 짜임새를 대신하게 된다.      


<드래곤볼>은 자기 파괴의 숙명을 품고 있다. 밸런스를 잘 닦아서 마련해 놓아도 작품 특유의 에스컬레이팅 시스템이 그것을 계속 해체해버리기 때문이다. 압도적 강자에게 도전한다는 설정이 매력적인 건 말 그대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뿜는 카리스마와 그 차이를 극복해내는 카타르시스에 있다.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이전의 이야기와 비슷한 수준의 감흥을 주려면 역시 이전의 강자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해야 한다. 파워 업이 반복될수록 직전까지 쌓아 올린 이야기는 무게감을 잃고 현재 진행하는 이야기도 설득력을 잃는 ‘밸런스 붕괴’가 일어난다. 야무치에서 천진반, 천진반에서 피콜로, 피콜로에서 라데츠, 라데츠에서 베지터, 베지터에서 프리더, 프리더에서 인조인간, 인조인간에서 셀, 셀에서 마인 부우, 마인 부우가 또 다른 마인 부우로… 에스컬레이팅이 무한 연쇄하는 동안 낙오한 캐릭터와 파산한 설정이 허다하다.      


프리더 전은 기존의 세계관이 우주로 팽창하며 에스컬레이팅의 파괴력이 극대화한 <드래곤볼>의 전성기였다. 인조인간-셀 전에서 무대가 지구로 복귀한 건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세계관에서 다시금 서사를 진행해야 하는 딜레마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고작해야 고철과 전류로 이뤄진 인조인간이 우주적 생명체를 유린하는 힘을 지녔다는 설정이 납득이 안 가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에스컬레이팅의 효력이 잔존했었다. 최고조에 달한 파워 밸런스를 허물어버리는 또 다른 강자가 나타났다는 센세이션이 작동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가 <드래곤볼>이 배틀물의 진지함을 거머쥘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였다. 잘 알려졌다시피 토리야마 아키라는 셀 전을 끝으로 연재를 종료하려 했지만 <드래곤볼>에 걸린 경제 효과 때문에 정부 관료까지 찾아가 만류했다고 한다. 마지막 마인부우 전에서 일 부의 시츄에이션 드라마적 성격과 코믹한 연출로 돌아가며 작풍이 가볍게 이완된 건 창작 자원의 고갈로 인한 궁여지책의 성격이 있었을 것 같다.      


이런 밸런스 붕괴의 반복이 남긴 결과는 연출 ‘설정’의 비대화다. 이야기 전개가 단순한 만화 인 데다, 이야기 기능을 대신하던 밸런스도 붕괴된 상황에서, 몇 가지 중심 설정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됐다. 늘 이인자의 통탄으로 끝나는 일인자와 이인자의 경쟁, 침략자와의 대결로 파괴된 지구를 회복하는 드래곤볼, 그리고 보스 캐릭터와의 결전은 늘 새로운 버전의 초사이언 출시를 통해 마무리된다(프리더 전은 초사이어인 1, 셀 전은 초사이어인 2, 마인 부우 전은 초사이어인 3). 이 설정들은 원작 전체에 걸친 반복을 통해 공식화됐다. 코믹스 완결 이후 제작된 번외물들 또한 원작의 설정들을 반복하고 변주하며 에피소드를 가지치기했다. 극장판에서는 전설의 초사이어인 브로리가 등장하고, <드래곤볼 GT>에서는 초사이어인 4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설정이 아무런 의미 없는 허무 개그로 전락했고(지구가 파괴되는 걸 왜 근심하겠는가? 드래곤볼로 되돌리면 그만인데), 작품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살아남은 건 초사이어인 정도다.

 

<드래곤볼 슈퍼>는 전투력을 넘어 원작의 설정 자체를 에스컬레이팅하며 우려냈다. 계왕신을 아득히 능가하는 파괴신이 나타났고, 우주는 십 수 개의 평행 우주로 확장되었으며, 애니메이션이 진행되는 와중 파괴신 역시 평행우주와 똑같은 숫자로 늘어났고, 결국엔 파괴신 마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왕이 등장한다. 추억의 숙적 프리더는 ‘골든 프리더’로 재출연하고, 초사이어인은 ‘초사이어인 갓’으로, 다시 ‘초사이어인 갓 초사이어인’으로 진화한다. 손오공이 프리더와 협력해 지렌을 쓰러트리는 상황 역시 손오공과 피콜로가 라데츠를 쓰러트리고 손오공과 베지터가 마인 부우에 맞서던 상황의 변주이며, 평행 우주 간의 대항전은 천하제일 무도회의 변주다. 아무리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도 새로운 건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작품의 구도는 걸쭉한 고인 물이 되어 고착된다.      


이 사태가 분만한 증상은 ‘성장 없는 인물’이다. 원작 코믹스에서 손오공은 발전하는 인물이었다. 싸움밖에 모르는 천진한 성격이지만, 이 성격을 베이스로 한 채 나이를 먹을수록 차분함과 노련함, 현상을 파악하는 직관을 갖추어 위기를 타개해갔다. 베지터와 피콜로 역시 냉혈한 악당에서 ‘가장’과 ‘현자’ 캐릭터로 변화해갔다. <드래곤볼 슈퍼>에서 손오공은 마치 원점으로 리셋된 것 같다. 현실 감각과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된 채 온통 사고만 치고 다니는 민폐꾼이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고, 손자까지 얻은 할아버지가 되었음에도, 사회적 인격은 성장 억제제를 맞은 것만 같다. <드래곤볼 슈퍼> 방송과 함께 인터넷에서는 “손가놈(손오공) 인성”이란 유머 게시물이 공유됐었는데, 바로 캐릭터의 퇴행을 꼬집은 여론이다. 이건 독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캐릭터의 단면을 잘라내서 그것으로 캐릭터를 박제한 사태다. <드래곤볼 슈퍼>의 또 다른 주인공 베지터 역시 ‘이인자 츤데레’라는 그의 가장 유명한 속성으로 냉동돼있다. 그 외 대부분의 조역은 원작의 전사가 무시된 채 비중조차 가지지 못한다.


한편으론 원작에선 인물의 성장과 함께 서사적 역할이 노화했었다. 2부가 종막하며 손오공이 죽고 손오반이 뒤를 이었지만, 3부에선 결국 또다시 손오공이 되살아나 마인 부우를 물리치는 주인공으로 복귀했었다. 그를 만회하려는 듯, 짤막하게 붙여진 에필로그에서 우부라는 새로운 인물이 진정한 후계자로 역사를 계승하는 것처럼 암시되었지만, <드래곤볼 슈퍼>를 비롯한 후속작들에서 손오공은 은퇴없는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


이상은 새로운 시리즈물이 원작의 검증된 셀링 포인트에 무작정 기대는 안이한 연출이다. 실제로 <드래곤볼 슈퍼>는 이런 점들을 이유로 팬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런 반복과 고착은 심지어 지루함이라 표현할만한 고도의 동어반복을 일으키는데, 이것이야말로 드래곤볼 세계를 관통하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부산하게 사건이 일어나지만, 서사는 나아가지 않으며 어제와 동일한 전개가 펼쳐지는 세계. 물리적 시간만 존재할 뿐 역사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축적과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장소. 이것은 매일 똑같은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것의 개념 정의 자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선형적 이야기는 서사의 종결과 함께 더는 그 세계와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허와 우울을 안겨준다. 한편 육체성을 가진 실존 인물과 물리적 만료 시효를 지닌 사물의 경우, 지난 시간과 함께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이 되었을 때 상실감과 노스탤지어를 일으킨다. <드래곤볼>의 세계는 종결되지 않고 반복된다. 그래서 어떤 감정의 낙차와 깊이도 빚어내지 않는다. 그저 이 세계 한 편에서 어떤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익숙한 느낌, 내 경험세계의 당연한 일부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매 시즌 새로운 작품을 파생하며 돌아오는, 오늘날 매체를 막론하고 대세가 된 프랜차이즈 서사물이 제공하는 특유의 일상성다. 그러나 할리우드 히어로 시리즈는 배우의 육체성으로 재현되기에 그들의 노화와 함께 시간의 선형성에 떠밀리고 주기적으로 리부트 되며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된 세계관으로 존재하고, <나루토>는 원작 종결 이후 <보루토>로 재개되어 세대교체의 역사적 시간을 따라 흘러가지만, <드래곤볼>은 작품의 동의어가 된 손오공을 반경으로 자기 완결성을 이룬 채 공전한다. 게다가 이런 연속성은 어린 시절부터 그 만화와 대면하며 살아온 이들의 사회적 자아의 연속성마저 구성해준다. 이것은 영구한 동질성을 품은 이미지를 재현는 그래픽 매체이기에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다.      


<드래곤볼>은 현실과 현실 너머에서 평행하는 동시에 현실을 구성하는 독립된 세계가 되었고, 손오공은 실존성을 지닌 고유명사가 되었다. 내가 익히 아는 세계가 거기 있고, 거기에서 내가 익히 아는 하루하루가 펼쳐지며, 익히 아는 인물이 나와 같은 시간을 맴돌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의 서사물이 일상성을 이루는 걸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일상이 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종류의 예술품이 이런 일을 해냈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을 21세기 문화산업이 빚어낸 이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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