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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l 25. 2018

죽은 영웅들의 사회

한국사 위인들로 바라 본 한국 사회

어린 시절 장영실의 위인전을 읽었다. 아마도 여섯 살 때였을 것이다. 우리 집은 2층 주택에 세를 든 1층이었다. 기억의 태엽을 천천히 돌리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집 구조와 외관, 장판과 벽지의 구김살, 마당에 깔린 시멘트 바닥, 이따금 호기심과 두려움에 어리어 멍하니 쳐다보던 어둡게 옻칠된 복층 다락의 문까지. 나는 그 문을 한 번도 열어보지 못했다.

나와 누나는 주방과 연결된 작은 방을 함께 썼다. 어느 날 오후 방바닥에 엎드려 장영실의 위인전을 읽었다. 그 집의 모습만큼이나 그 책의 줄거리는 내 머리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다. 그보다 뚜렷하게 남은 건 기승전결을 따라 요동친 내 어린 마음이다. 이 후미진 나라에서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강수량을 재는 기구를 만들다니. 세상의 문물은 모두 서양에서 빚어진 줄 알았던 나는 감격스러웠다. 그건 마치 박지성이나 김연아를 보는 기분과 비슷했을 것 같다.     


우쭐해져 부푼 가슴은 책의 엔딩에 이르며 펑, 터졌다. 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졌다고? 실수 한 번에 곤장을 맞고 쫓겨난단 말이야? 그렇게 많은 문물을 발명한 과학자가? 이상하게도 장영실을 발탁한 세종은 그저 안타까워할 뿐 무력했다. 장영실을 시기하고 미천한 신분을 깔본 고관들이 모함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어린 머리에도 이건 명백히 불합리했다. 왜 우리는 영웅을 가지고도 스스로 망치는 것일까. 만인지상의 임금, 불세출의 성군마저 잘못된 걸 알면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라니. 압도적인 부조리함이 안개처럼 혼란했고, 마치 이 땅을 규정하는 형언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졌다. 최근에서야 나는 이런 역사와 감정의 조우가, 많은 국민이 학습하게 되는 사회적 각인효과가 아닐까 의심을 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사에서 박해받고 스러진 비운의 영웅은 장영실 혼자가 아니다. 오히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눈에 채일만큼 흔하다고 해야 한다. 동종의 역사와 문화권을 공유한 한중일 3국을 비교하면 명확하다. 역사적 위인을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부류로 나눠 보겠다. 하나는 전쟁영웅과 내치의 달인이고, 하나는 혁명가와 순교자다. 전쟁영웅은 정복자와 창업 군주로 다시 나눌 수 있고, 내치의 위인은 성군과 정치가다. 중국을 대표하는 위인들은 전쟁영웅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 다시 천하를 통일한 유방, 정복사업을 벌인 한무제, 그리고 당태종 등 새롭게 왕조를 세운 군주들은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고 봐도 된다. 이들은 내치에서도 업적을 남겼지만, 환란을 종식하고 국운을 증식한 이미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 현대사의 대표적 인물 모택동 역시 국공합작으로 일본군을 몰아내고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창업 군주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서 빈번하게 회자되는 위인은 전국 3웅과 유신 3 걸이다. 전국 3웅은 전국 시대를 거쳐 에도 막부가 건립되는 과도기에 활약한 전쟁영웅이며, 유신 3걸은 막부의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 국가를 세운 혁명가다.     


한국에는 저런 유형의 위인이 드물다. 한국 제일의 위인은 세종대왕이며, 그는 한글을 창제하는 내치의 위업을 남겼다. 당연히 한국에도 전쟁영웅은 있다. 세종에 버금가는 위인 이순신이 그렇고, 삼국시대로부터 을지문덕과 양만춘, 연개소문, 계백, 강감찬, 삼별초, 권율 등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정복자도 아니고 창업 군주도 아니다. 군마를 몰아 국토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강토를 지키려 한 호국영령이며 그만큼 수동적 캐릭터다. 창업 군주에 해당하는 인물은 김유신과 김춘추, 태조 왕건인데, 후삼국시대에 비해 삼국시대는 한 나라라는 의식이 없었던 만큼 정복자의 속성까지 갖춘 건 전자다. 하지만 김유신과 김춘추는 한국사에서 유달리 인기가 없는 위인이다. 외세와 내통해 고구려를 멸하며 만주 벌판을 잃었다는 것이다.

     

속류적 민족주의 사관에서, 김유신과 김춘추는 외세에 붙어 민족의 유산을 팔아먹은 집단, ‘친일독재-정통성 없는 통치 세력’의 원형적 캐릭터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한국사 유일의 정복군주 광개토 대왕이다. 그는 고구려를 상징하고 만주를 상징한다. 고구려의 영토는 고조선과 포개어지는데, 만주 대륙은 곧 민족국가의 기원부터 차지했던 우리의 땅, 고토에의 그리움으로 유사 역사학을 낳았다. 저 아득한 한 때 세상의 패권을 향해서 누빈, 그러나 너무도 오래전 잃어버려 전설로만 남은 결핍, ‘우리가 한 때 가졌지만 스스로 망친’ 미망의 판타지다. 현재까지도 겨레를 빛내는 영웅, 세계화를 향한 열망은 스포츠와 미디어, 정치인, 과학자를 아우르는 각 분야에서 빗발친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기득권을 지닌 내부의 적에게 견제당하는 서사구조에 놓여있다. 김연아와 빙상연맹을 떠올려보라. 겨레의 한스런 숙명을 짊어진 순교자인 것이다. 이들이 한국사에서 압도적인 캐릭터다.     


타락한 기득권과 순교자 영웅의 대립 구도는 숱한 위인을 아우른다. 한국사 제일의 전쟁 영웅 이순신 또한 선조의 박해를 받아 삭탈관직당했고 백의종군했으며 왜란의 종지부를 찍는 전투에서 숨을 거둔다. 나라가 죽인 잃어버린 영웅이다(이순신의 최후에 관해서는 사망 위장설이 있다. 신뢰도를 떠나, 이 설의 근거는 선조가 전란을 통해 거대해진 이순신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점만큼은 사실관계의 영역에 있다). 계백과 삼별초 역시 이길 수 없는 싸움에 결사 항전함으로써 타락한 지배 체제를 대속한 순교자들이 아니었던가? 원나라의 침략과 왜란 등에 맞서 일어난 민병들도 후세에 의해 순교자로 자리매김된 성격이 있다.     


또 한 가지 한국사에서 빈번한 캐릭터가 ‘실패한 혁명가’다. 고려시대부터 일어났던 민란들의 주모자가 있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장렬한 외마디를 남기고 목이 잘린 노비 만적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홍경래가 있었고, 동학 농민군이 있었고, 임꺽정과 장길산, 홍길동 같은 화적이 세상을 엎으려 한 의적으로 스토리텔링 되었다. 신돈과 정도전, 조광조 같은 지배 계층 내부에서 등장한 개혁 세력 역시 숙원을 이루지 못했다. 당연하다. 한국사는 한 번도 혁명이 일어나지 못한 역사이기에, 혁명을 꿈꾼 모든 이는 실패한 혁명가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의 위인들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했건 간에, 미망의 가시밭길을 걸은 순교자의 캐릭터가 강하다. 온전히 천수를 누렸고 많은 업적을 완성한 세종 역시 기득권 신하들과 투쟁하며 한글을 개발하지 않았는가? 내가 읽은 위인전의 세종 역시 그러한 이미지로 빚어져 장영실이란 또 다른 순교자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객관화된 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역사를 말하지 않았다. 민족 공동체 내부에서 특정한 관점으로 인식되며 전승되는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위인관이 형성된 것은 민족국가가 처해 온 사회 환경과 소위 민중이라 불리는 공동체 기층 구성원들의 역사적 경험의 융합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일본처럼 자력으로 체제를 바꿔낸 경험이 없다. 몇 차례 왕조 교체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엘리트 계층 내부의 권력 이동이라고 봐야 한다. 강고한 중앙집권 국가의 전통이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번번이 진압했고, 사대주의와 쇄국정책으로 중화 문화권 바깥에 문호가 닫혀있어 변화의 전기를 맞아들이지 못했다. 후삼국시대란 예외를 제외하면 중국, 일본처럼 중앙권력을 견제하고 대신할 지방 군벌도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동아시아 대륙 극지의 반도 국가로서 숱한 침략을 겪어야 했고, 삼면의 바다에 갇힌 민중들은 이주할 곳도 없이 그 파괴력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중국 역시 이민족의 침략을 겪고 왕조를 빼앗긴 예가 많지만, 한족 왕조를 수복한 역사도 수차례 있으며, 최후의 이민족 일본군을 몰아내며 승리의 경험으로 현대사를 맞았다. 반면 한국은 미국에 의해 해방됐고 자국의 운명에 관한 소유권을 얻지 못한 채 분단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식민 권력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결핍의 상태로 현대사를 시작했다.     


중앙 권력의 수탈에 대항해 각지의 민초들을 대표해 줄 존재도 없으며, 민초들 스스로 반란에 성공한 전력도 없고, 중앙 권력이 외세로부터 지켜주지도 못하고, 체제가 바뀔 전망도 없다면 남는 길은 무엇이겠는가. 기득권의 대극에 있는 어질고 탁월한 인물이 나타나 또 다른 중앙권력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기성 체제 내부를 정상화하는 성군일 수도 있고, 기성 체제를 밑바닥부터 갈아엎을 ‘성공한 혁명가’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살펴보았듯 한국엔 실패한 혁명가 밖에 없었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관통하는 영도자에 대한 열망, 성군 판타지, 새 인물 증후군, 기성 정치판을 혐오하면서도 결국 체제의 정상화를 원하는 보수성 등의 혼란스러운 정동은 이런 역사적 집단 경험의 구조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점이 역사를 관류하며 내려온 순교자적 영웅을 향한 애착으로 표현돼 온 것은 아닐까? 가령 미륵신앙이 전파된 동아시아 3국 중 유독 한국에서 미륵불의 강림과 구원을 기다리는 미륵 하생 신앙이 발달해 사회사상과 결합한 것은 과연 우연일까? 미륵불의 자리에 새 인물 증후군을 가리키는 관용어가 된 ‘백마 탄 초인’을 대입한다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현대 정치사에도 영웅 서사의 구도는 전승되고 있다. 이승만이 외세와 결탁한 정통성 없는 가짜 국부라면, 김구는 남북 분단의 철조망을 베고 죽은 진짜 국부다. 박정희와 노무현 역시 이 구도에서 마주 보는 상징적 대적자다. 흥미로운 것은 두 명의 지도자가 공히 한국사에 결핍된 위인 유형과 조응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는 전쟁 이후 환란에 빠진 조국을 세우고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 속의 한국을 마련한 창업 군주형 위인이다. 노무현은 "한 번도 정의가 승리하지 못한 역사"를 바꾸려다 문자 그대로 순교한 인물이며 실패한 혁명가다. 이들이 사후에도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도자로 국론을 양분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는 견제없는 정치권력, 지도자 중심의 사회구조를 현재에도 재현하며 이러한 구도를 강화한다. 그러나 정말로 흥미로운 것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은 순교자적 영웅의 코드를 간파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진 임금이 강림해 단칼에 매듭을 잘라내주길 원하는 성군 판타지를 국민 청원 제도로 수렴해 놓았고, ‘타락한 기득권 대 영웅적 개인’ 구도의 수혜를 입는 걸 넘어 야당과 언론을 적폐로 지목하며 대통령 개인과 맞세워 그 구도를 작위적으로 구축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노무현의 현신이라는 입지를 통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더 이상 우리의 영웅을 순교하게 버려둘 수 없다”는 강력한 여론의 보위를 받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권력 운용은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된다. 노무현이 가망 없는 의제에 정치 생명을 던지며 진정성을 호소하는 순교자의 제의를 전략적으로 치렀다면, 문재인은 남북 회담 등 가시적 정책성과를 보여주며 혹은 이미지 정치를 통해 가시적 성과가 나왔다는 착시를 보여주며 승리자의 노회함을 어필한다. 최근까지 이어진 문재인 정부의 당파를 아우르는 높은 지지율은 국민적 심성 구조 속에 있는 미망의 영웅을 현실화한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늘 잃어버렸던, 늘 기다리던 영웅이 드디어 나타났다”에 가까울까.     


정치비평을 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사회 전 방위에서부터 선출 권력에 도달하는 뿌리 깊은 사회 인식이 있고, 그것이 특정한 시기의 역사 교육에서부터 재생산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던지려 쓴 글이다. 나는 장영실의 위인전을 읽었지만, 요즘 아이들이 읽는 위인전은 어떨지 궁금하다. 교실에서 역사 교육이 어떤 프레임으로 이루어지는 지도 궁금하다. 교육 일선과 괴리된 사람의 넘겨짚기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사회에 역사와 위인에 관한 상투화된 관점이 있고, 꼭 교실 안이 아니더라도 상투적 관점이 투영된 콘텐츠가 보급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즉, 위인들에 대한 편집된 관점을 넘어 객관화된 전기를 학습하는 것은 그를 통해 구축된 사회 인식을 구조 조정하는 기반 공사다. 장영실은 왜 미스테리한 퇴장을 맞이해야 했을까. 그에 관한 이설들, 가령 세종이 천문의 사업이 끝나자 쓸모없어진 장영실을 퇴출한 것이란 주장을 접한다면, 꼭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더라도 낭만적 드라마가 아닌 차가운 권력관계를 통해 역사를 곱씹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 역사의 페이지엔 공백이 많아 한 가지 프레임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웅이라 믿는 이들의 과오와 치부 또한 직면하며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교훈을 얻는 과정이다.     


왜 사람들은 김구가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면 분노하고, 노무현의 비위 사실을 금기로 봉인하는가. 성군의 신민, 순교자의 추종자에서 독립된 인식 주체가 되는 길은 죽은 위인을 다시 한번 죽여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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