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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l 26. 2018

긍정의 얼굴을 한 부정

자기계발 담론이 된 힙합

현재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 담론을 가장 강력하게 생산하는 담론장은 힙합 신이다. 자기계발 담론은 00년대 말 신자유주의 체제가 금융위기를 맞고 저성장이 일상화되면서 전면에서 후퇴했다. 10년대 초반, 그 빈자리에 나타난 것이 힐링-멘토 담론이었다. 스스로에게 채찍을 때리지만 결승점은 다가오지 않는 현실에서, 날 보듬고 이끌어주는 치유와 스승을 갈구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계발 담론은 종말했는가? 아니다. 10년대 초반 이후 자기계발 담론은 양태가 바뀐 채 살아남아 있다. 00년대 자기계발 담론이 개인들이 스스로를 기업가처럼 경영하는 “부자 되세요”의 희망을 전파하는 긍정성의 담론이었다면, 10년대 자기계발 담론은 부정성의 담론이다. "나도 노력을 하자"가 아니라 "노력 안 하는 너"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식이다. 노력에 의한 상승 가능성이 단절된 사회에서 절망에 찬 '헬조선' 담론이 퍼졌다. 이것의 짝패와도 같이 '무임승차 혐오'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노력은 안 하고 대가만 요구하는 미개인들 때문에 내가 헬조선에서 이 모양 이 꼴로 산다”.


이 와중 실러캔스처럼 긍정성의 문법이 개체 보존돼있으면서, 그것으로 부정성의 문법을 '윤리화'하는 담론장이 바로 힙합 신이다. 힙합 신의 급격한 상업화(힙합의 상업화가 아니라)와 함께, 래퍼들은 이런 시대에도 "바닥에서 정상으로" 가는 삶을 현존으로 증명하는 백악기 생물이 되었다. 현재 한국 힙합에선 부단한 음악작업을 뜻하는 ‘허슬’과 자수성가의 다른 표현 ‘셀프메이드’가 장르적 관습을 과잉 대표하고 있다. 이 관습들이 래퍼들의 자기계발 서사를 위인전기화하며 퍼트린다. 이런 성공서사가 현존하기에 "나는 했잖아. 너는 왜 안 해? 노력할 시간에 성공한 사람 질투하는 루저들"이란 문법이 배틀 랩 가사의 절대적 지분을 차지한다. 노력과 같은 생산적 가치가 곧 긍정성으로 등치되며, 불평하는 자들을 경멸하는 부정적 감정 양태를 긍정성의 맥락으로 뒤틀어준다. “부정적 기운을 멀리하고 긍적적 기운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과연 래퍼들은 자력으로 삶을 엎은 인생극장의 주인공일까? 그 많은 자수성가 가사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사실 돈 잘 버는 래퍼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래퍼 개인과 레이블에 따라 빈부격차가 있는 것도 물론이다. 래퍼들 수익에서 가장 큰 변수는 <쇼미더머니> 출연이다. 한국 래퍼들의 허슬-셀프 메이드 서사가 얼마나 허구적이냐면, <쇼미더머니>에 출연해야 돈을 벌 수 있는데 <쇼미더머니>에 출연할수록 작업물이 적다. 작업할 시간에 방송 나가고 행사 뛰며 ‘연예인 놀이’하니까 당연하다. 그 바깥에서 아무리 ‘허슬’ 해 봐야 듣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사회 계층을 대표할 수 없는 예체능의 영역에서 작성되는 성공서사가 사회 환경과 조응하는 이데올로기로 성장했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그 안에서도 노력의 효과를 차별적으로 증폭해주는, 기회를 독과점하는 불평등의 구조가 돌이킬 수 없이 종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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