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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r 07. 2019

세계화의 이원화

걸그룹 ITZY와 기획사 JYP의 해외 진출 전략

포스트 박진영 체제 JYP는 기획사 회심의 역작 트와이스를 통해 시장 패러다임을 주도했다. 다인조-다국적 걸그룹 포맷, 소위 컬러팝 운운의 ‘케미스트리’로 운용되는 캐릭터형 아이돌, 브이 라이브와 팬 사인회를 적극 활용하는 팬덤형 걸그룹, 일본인 멤버 발탁을 통한 단절된 한류 재개 등 여타 기획사에 어떤 답안을 제시하는 선구자였다. 이렇듯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나는 트와이스가 단순히 한 시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걸 그룹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JYP는 최근 걸그룹 ITZY를 론칭하며 트와이스와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ITZY는 한국인 멤버로만 구성된 5인조 그룹인 데다 팬덤 산업의 밑거름인 앨범도 내지 않고 디지털 싱글로 데뷔했다. 아이돌 산업에서 해외 시장, 특히 일본 시장의 중요성이 확고해진 시대에, 외국인 멤버 없이 그룹을 론칭했다는 사실은 한국 팬들은 물론 일본 케이팝 팬들에게도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대신 JYP는 일본 음반사와 합작해 일본 현지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열고 일본인으로 결성된 그룹을 데뷔시키는 장기적 플랜을 발표했다. 이건 내수 시장과 수출 시장의 이원화 전략, 더 정확하게는 한국 시장 및 그를 통해 연결되는 글로벌 시장 네트워크와 별개로 현지화를 통해 일본 시장에 사업 기반을 박아두는 전략이다.


케이팝 그룹의 해외 활동은 국내 활동 실적을 기반으로 삼기에 한국 활동과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트와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영해를 넘나들며 활동하기엔 현실적으로 시간이 충분치 않고 가수들에게 혹사를 강요해야 한다. 무엇보다 동북아 외교 정세는 경직돼있고 불안정하다. 중국은 박근혜 정부 시기 외교 마찰로 한한령을 내려 한국 연예인들의 시장 진출이 봉쇄당한 상태다. 작년 연말엔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의 갈등으로 한일 관계가 유례없이 악화됐다.


트와이스는 데뷔 직후 마리텔에 출연한 대만인 쯔위가 소품으로 제공된 대만 국기를 들었다 중국 관제 언론에 사상 비판을 당했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쯔위는 유튜브 영상에 나타나 머리를 조아렸다. 최근 방탄소년단 멤버가 과거 원폭 티셔츠를 입었던 일이 폭로돼 일본 공중파 음악 방송 출연을 취소당한 사건을 되새겨도 동북아 외교 정세의 특수성 및 국제정치와 엔터테인먼트의 긴밀한 연동을 알 수 있다. JYP의 이원화 전략은 완전히 현지화한 그룹으로 해외 시장을 경영하며 외교적 요인에 의한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회피하는 효과를 낸다. 반대로 한국에서도 '현지화'가 강화되는 셈인데, 자국인 멤버로만 그룹을 구성하면 근래 국내에서 고조된 반일, 반중 여론에 외국인 멤버가 희생양이 되는 리스크를 없애는 효과도 있다.


JYP는 이미 중국 엔터 회사와의 합작으로 한한령을 우회해 현지화한 그룹을 제작한 전례가 있다. 작년부터 올해 초 까지, CJ E&M은 AKS와 한일 합작 걸그룹을 만들었고, 울림 엔터테인먼트는 AKB48 유명 멤버 다카하시 쥬리를 영입했고, FNC는 멤버 국적까지 트와이스와 동일한 10인조 걸 그룹 체리블렛을 데뷔시켰다.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트와이스가 닦은 길을 앞 다투어 쫓아갈 때, JYP는 ‘제2의 트와이스’를 기대하는 여론을 실망시키며 자신이 세운 패러다임을 또다시 건너뛰었다. 이 연예 기획사의 두뇌들이 얼마나 시장을 앞서가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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