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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13. 2019

불량배들의 조국

요즘 내가  딱하게 여기는 부류는 일본을 향한 혐오감을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사람들이다. 어째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런 부류가 많다. 나이 스물 정도 먹은 사람들이 일제 시대 잔재를 뭘 겪어봤다고 저러겠나. 그럴싸한 명분으로 멸시하고 패싸움  상대가 필요한 거지. 그 증거로 저런 사람들이 쓰는 말은 죄 수준 이하의 저급한 언어다. '좆본' '원숭이' '중세 잽 랜드' '일번인들' 그리고 원자 폭탄 조롱. 역사에 관한 비판 의식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태도고, 그런 걸 갖고 있는 사람이면 저런 말투를 쓰지도 않는다. 저들은 일본을 욕하는 걸 넘어 내국인 중 '일뽕'('친일파'의 하위문화적 번역)을 가려내 몰매를 때린다. 일본에 우호적 태도를 취하거나 일본의 어떤 부분을 좋게 평가하거나 일본을 더 선명하게 비난하지 않았다는 빌미를 잡으면서. 이게 인터넷 문화의 한 주소지다. 한일 관계를 파탄 내며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정부의 외교 포퓰리즘과 맞물려 악화되는 추세다.


자꾸만 역사관이니 역사교육이니 떠드는데, 역사를 공부할 이유가 있다면 문명의 어제를 이해하고 자국의 역사와 세계사를 아우르는 관점을 갖추는 것이다. 내가 자란 사회를 가꾸는 동시에 그 잣대를 나와 같은 존엄을 지닌 인류에게 가닿게 하는 것. 일제 식민 지배를 기억하는 만큼 국군이 월남에서 저지른 학살도 기억하고 원폭 당한 민간인들 또한 추모하는 지성과 감수성을 갖추는 일 말이다. 얼마 전엔 트와이스 사나가 봉변을 당했는데, 피해자란 명분을 우격다짐으로 내세우며 타국의 관습에 대한 무지를 정당화하고 합리적 사고 역시 포기한 채 피값으로 속죄할 희생양을 요구하는 건 역사관 따위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가학 심리에 도취해 날뛰는 중우들의 집단 폭력, 이지메일 따름이다. 정말로 가소로운 건 사나를 비난하는 이들이 미개하다고 조소하는 사람 중에도 평소 '일뽕' 같은 말을 버젓이 뱉는 치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편 가르기 없이는 세상을 더듬을 교양이 없는 사람들, 누군가를 따돌리지 않고는 내 삶의 삭막함을 버텨낼 수 없는 사람들. 이런 레미제라블들이 몇 더미의 여론을 이루는 건 언제나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다. 올바른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어렵고 정확하게 이해하려 노력하기도 싫은 사람들에게 "나 보다 큰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공적 환상을 판매하는 자판기가 '역사관'이다. 내가 이래서 '역사의식'을 '인증'하며 '개념' 국민으로 거명되는 서사는 거르고 본다. 그것이 누구의, 어떤 역사이든 간에.


일본 열심히 욕하면 '애국'하는 거 같아 뿌듯한가? 이 나라 공동체를 가꾸는 실천은 서로 다른 이들이 이 땅 부근에서 자유롭게 어울려 살도록 차이를 존중하고 같음을 긍정하는 일이다. 역사 문제의 해결과 일본인을 향한 증오심을 구분 못하는 사람은 그냥 머리 나쁜 불량배다. 새뮤얼 존슨이 말했다고 했나? 애국심은 불량배들의 마지막 도피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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