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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13. 2019

선행과 정치

유명인의 사회 참여

나는 기부 문화를 달갑게 평가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돈을 덜어 돈을 나누는 것이 밑 빠진 가난에 물 붓기 거니와, 기부자의 평판을 세탁하고 사회 참여에 서열을 매기는 효과가 따른다. 거액의 기부를 베푸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평소 공적 가치를 일관되게 지향하는 게 시민으로서 더 중요한 평가 요소고 공동체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후자가 결여됐다고 비판하면, "너는 돈 내고 남 도운 적 있느냐" 선의의 가격을 저울질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어떤 사회에 불행이 존재한다면 사람들에게 돈이 없어서 라기보다 돈을 벌 권리가 불평등하게 분배돼있기 때문이다. 극단적 예를 들어 어느 재력가가 모든 사람이 불행을 청산할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기부했다 쳐도, 그건 저마다 사회의 주인으로 자립할 권리를 갑부의 배포에 종속시키는 시혜 행위다. 타인의 권리를 뺏어가며 부를 쌓았거나 권리 실현을 부정하던 사람이 그들에게 기부를 베푼 들 고도의 기만이다.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발언을 뿌리던 사람이 연말에 달동네에 연탄을 배달한다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고 칭송해야 할까.    

 

한국은 사회 참여의 정당성에서 '선행'이 정치를 압도하는 사회다. 선행이 도덕적 자기애의 배경화면으로서 선량하고 불우한 타인만 있는 행위라면, 정치는 권리를 주장하고 세상과 갈등하며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주체로서 타자가 출현하는 네트워크다. 선행은 불행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베푼다는 미담이 왜 누군가는 불행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따뜻하게 제거하지만, 정치는 불행과 행복을 가르는 권력을 향한 물음을 제기하는 데서 시작한다. 전자는 불행을 낳는 세상이 존속해야 성립하고, 후자는 그것을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돈 많은 래퍼, 가수가 몇 천만 원씩 기부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로 힘든 건 내 가치관 및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주장을 보편적 가치체계에 비추어 정직하게 이해하고 나아가 연대하는 것이다. 후자가 훨씬 시급한 사회적 행위고 실존적 결단이다.     


이상은 한국 유명인들의 사회 참여가 권력관계가 멸균 처리된 도덕 행위, 공중도덕 준수와 봉사활동 불우 이웃 돕기, 혹은 적어도 국민 절반이 지지하는 가치관에 소속감을 밝히거나 국민 절반이 나머지 절반과 대결하는 진영 싸움의 스피커를 맡는 것으로 실천되어 온 까닭이다. 역사의식도 좋고 순국열사도 좋지만,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그 무엇에도 앞서는 사회 정의다. 예컨대, 영화배우 정우성의 예멘 난민 연대 활동은 최근 내가 접한 가장 존경할만한 유명인의 사회 참여였다. 비록 기부를 하고 백범 김구를 말한 연예인들처럼 대중에게 환대받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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