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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23. 2019

'인성'이 삼키는 가치들

아이돌 산업에서의 '인성'

아이돌 연습생│① 연습생의 인성,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죠?

요즘 아이돌 산업에서 '인성'이 키워드인가요? 설령 팬들과 관계자들이 인성을 중요하게 보는 게 사실이라 쳐도 그걸 보도하는 입장에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할 텐데 말이죠. 너무 근본이 없는 개념이거든요. 구체성을 갖고 사회적으로 논할 문제들이 저마다의 성품으로 개인화되며 기준이 사라집니다.     


한국은 사람에 관계된 모든 사안을 '인성'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요. 뒤집으면 개인과 개인을 잇는 네트워크, 사회적인 것은 약하다는 뜻이죠. 인성 좋다고 평가 받는 사람은 대체로 '책 잡힐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반듯하고 모서리 없는 캐릭터, 이승기와 유재석이 그렇죠. 반대로 어떤 가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인물로 혹평 받습니다. '인성'이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은 대개 캐릭터가 강한 사람이에요. 인성이 강조될 수록, 인성으로 싸잡히는 각각의 사회적 가치는 추구되지 않고 현상을 덮는 보수성이 남습니다.


버닝썬 사건 때 YG의 방임형 운영과 대비되며 인성 교육을 중시하는 JYP가 상종가를 쳤는데, 그게 무슨 인성의 문제입니까. 준법의식과 도덕의식, 나아가 시민 의식의 문제지. 술 담배 안 하고 인사성 좋고 성실한 사람도 범법을 저질 수 있어요. 여성혐오를 내면화할 수 있고요. 학교 폭력은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니 가해자로 지목된 연습생과 계약 해지하는 게 이상하진 않죠. 근데 그건 인성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관념과 감수성이 문제인 겁니다. 학교 폭력의 책임은 인성 나쁜 개인을 넘어 교사와 가정, 나아가 교실 문화에 있고요. 반대로 미성년자는 술 담배가 금지돼 있긴 합니다만, 당사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훈육 차원에서 막는 거죠. 그걸 어긴다고 자기 자신 말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나요. 그런 게 정말로 계약을 해지할 명분이 될까요? 어떤 아이돌이 연습을 게을리하고 팬서비스에 불성실하다면 그것도 인성이 아니라 직업의식의 문제고요.     


인성을 강조하다 보면 잘못된 평가 기준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 기준에 맞춰 현실을 미봉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 개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돼요. 트와이스 멤버가 선발된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에서 박진영이 자신은 실력보다 인성을 중시하고 인성이 된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 장면이 호응을 얻으며 공유되곤 하는데요. 직업인을 뽑으면서 직업에 관한 기능이 아니라 성품을 우선순위에 두는 건 근대화가 덜 된 사고방식입니다. 일만 잘하면 된다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의 사회성과 가치관, 성실함, 협동심을 평가할 수 있겠죠. 그걸 인성으로 싸잡으니까 오히려 각각의 가치를 제대로 따지지 못한다는 거죠. 저런 가치들은 타고나는 부분 이상으로 사회화를 통해 길러지는 것이고, 그걸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타인에 의해 평가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생활은 아이돌에게 고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기획사가 보호해주는 게 맞습니다. 인성 논란이라는 게 가수의 인격까지 소비하길 원하는 팬덤의 욕심, 혹은 안티 팬들의 이슈 몰이, 무분별한 잣대로 유명인을 헐뜯는 군중의 가학 심리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고요. 이 모든 이야기가 누군가의 인격 결함으로 박약하고 단순하게 정리됩니다. 어린 나이에 인품이 완성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춤 노래 배우기도 벅찰 텐데 막연히 인격자가 되라는 건 과중한 요구죠.     


인성 논란이 일어나면 기획사는 무슨 책임을 지나요? 가수를 잘라 버리고 동방예의지국 청교도 기획사 이미지나 방어하면 끝인가요? 사회적으로 바꿔 갈 부분, 기획사가 책임 질 리스크 관리, 팬들이 소비 심리를 고쳐먹어야 할 부분까지 개판으로 뒤섞인 게 ‘인성’이에요. 사람의 성품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겠죠. 인성이란 말이 남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행동을 트집 잡고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해 들먹여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성을 요구하는데 정작 인성과 관계가 없는 내용이에요. 이게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SNS 활동이 그룹의 성패를 좌우하고 모든 기획사가 SNS를 운영하는 시대가 왔지만 아이돌의 개인 계정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여론과 안티 팬에게 '책 잡힐 빌미'를 주니까요. 논란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안은 기획사 차원에서 아예 언급을 피하죠. 개인의 인격 노출이 강박적으로 검열되는 부담이 아이돌에게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격은 대상화해서 팔아야 하는 이중 구속에 걸린 위태로운 줄타기죠. 아무리 눈이 시뻘개 져서 꼭꼭 싸매도 '인성' 논란을 막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SNS와 팬덤 세일즈 시대에 아이돌 산업의 현황이자,  '인성'이 상품 목록에 올라 온 결과입니다.

 

아이돌 산업은 고도화될수록 아이돌의 인간성을 전면적으로 상품화하고 있고 그럴수록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산업이 되어 갑니다. 이런 현실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건 산업 관계자들은 물론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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