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한국에 호감을 가진 젊은 여성이 많다. 한류는 십 년이 넘는 과거부터 흐르고 있었고, 케이팝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 다만, 지금 일본에서 케이팝은 젊은 여성 계층에게 좀 더 특화된 형태로 소비된다. 한국이란 나라의 각종 문화적 기호와 나란히 묶여서 세련된 것, 동경할만한 것으로 향유된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한국인들 말을 들어 보면, 현지 케이팝 팬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은 상상 이상으로 체감된다고 한다.
미야와키 사쿠라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일본 아이돌 그룹 HKT48 멤버로 활동하다가 <프로듀스 48>을 통해 한국에서 아이즈원으로 데뷔했고 얼마 전 2년 6개월의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프로듀스 48>이 제작되기도 전, 그 스스로 일본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을 때부터 케이팝에 관심을 갖고 팬이 되었다. SNS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레드벨벳을 좋아한다고 밝혔고, 한국에 다녀 간 여행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았다. 사쿠라는 작년 일본 잡지 ‘ELLE’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시절을 회상했다.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블랙핑크, 레드벨벳, 트와이스를 보고 이런 아이돌도 있구나!” 생각한 것이 관심을 가진 계기였다. "노래의 퀄리티, 세계관, 콘셉트 구성 등 동경할 만한 것이 많았"으며, “자신의 장점과 매력을 가사로 표현해 부르는 멋진 모습”에 반했다고 설명한다. 일본 아이돌로 활동하며 품게 된 아이돌에 대한 전형적 관념을 멤버 개개인의 개성을 보여주는 케이팝 그룹이 해소해 주었고,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것, 머리카락 염색을 처음 해본 것 역시 그 영향이었다. 말하자면, 사쿠라는 동시대 일본에서 유행하는 젊은 문화에 다른 젊은이들처럼 이끌렸고, 아이돌이란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열의를 북돋은 채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자극으로 이어진 셈이다.
미야와키 사쿠라처럼 특이한 커리어를 가진 아이돌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흔치 않다. 한국 아이돌이 일본에 진출하는 일은 흔하고, 일본인이 한국 기획사에 캐스팅돼 한국에서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던 아이돌이 한국에서 아이돌로 다시 데뷔한 경우는 아이즈원으로 활동한 사쿠라와 나코, 히토미, 로켓펀치의 쥬리가 처음이다. 케이팝의 팬이었던 일본 아이돌이 동경하던 케이팝 신에 소속된 채 활동한 시간은 남다른 여정이었음에 틀림없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활동 환경, 음악 색채와 무대 구성 등을 숨 가쁘게 가로지르면서 사쿠라는 한국과 케이팝 신에 적응해 갔고 이런저런 발도장을 남겼다. 방송 촬영장에서 응원하던 케이팝 그룹을 만났고, 육회와 산 낙지, 김치찌개를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말로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어 소속사에 직접 한국말 과외를 요청했다. 특히, 몇몇 일본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케이팝 아이돌 활동에 대한 진지한 회고를 세밀하게 들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ELLE’ 인터뷰에는 아이즈원으로 활동하며 생애 처음 자작곡을 쓴 소감, 케이팝과 한국 문화에 관한 생각이 실려 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BTS가 미국에서 이룬 성과에 “대단하다”, “아시아에서도 이런 그룹이 나왔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고, “감동적”이라고 기뻐한다. 자작곡 ‘야미 서머’를 만들 때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미권 팝 음악을 접하며 귀를 넓혔다. 한국어 발음이 일본어보다 리듬을 분절하기 쉽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양국의 언어 특성이 어떻게 음악 특성으로 연결되는지 설명한다. 한편 아이즈원으로 다시 데뷔하게 된 경험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서왔던 무대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정말로 소중하고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최근 진행한 잡지 vivi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접한 한국 또래 여성들이 일본 또래 여성들보다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전보다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비판적이었던 관점을 벗고 자신감과 함께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가짐을 얻었다.
사쿠라가 한국에서 활동한 시간이 늘 즐겁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다. 한국어도 잘 모르는 상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가득 찬 스케줄과 합숙 생활을 소화해 내는 일들에 어떻게 우여곡절이 없었을까. 다만, 사쿠라 자신의 말을 통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그 경험들이 새로운 취향,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세계와 만나는 기폭제요, 아이돌로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계기였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귀한 인연이 되었을 거라고. 그는 한국과 일본, 케이팝 신과 제이팝 신을 넘나드는 진귀한 이력으로 얻은 긍정적 느낌과 체험을 갈무리했고 그것을 일본으로 돌아 간 후 사회에 알리고 있다. 일본으로 돌아간 지금도 종종 SNS에 한국어로 글을 쓰고 순두부찌개를 먹은 사진을 올리곤 한다.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 먼 나라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문화와 관습이 다르다 보니, 익숙한 면이 있는 만큼 괴리감이 드는 면모도 많다. 예컨대 한국을 좋아하는 평범한 일본인이라 해도 그 사람에 관한 단편들을 어떤 프레임으로 편집해 보여주느냐에 따라 인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직접 말하고 행동한, 눈에 보이는 알기 쉬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 타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존중을 말이다. 이것은 국적 같은 라벨링에 대한 편견 없이, 우리에게 호의를 품은 타인들을 알아보고 환영하는 연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