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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ug 24. 2021

유럽 축구의 극지들

리오넬 메시 PSG 이적

평소에 말하고 다니진 않지만, 유럽 축구즐겨 본다. 그중에서 주로 바르셀로나 경기를 본다. 리오넬 메시 때문이었다. 메시는 내가 본 축구 선수 중 가장 축구공을 잘 다루는 선수다. 내가 보지 못한 선수를 다 합쳐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다. 메시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고 바르셀로나 역사에선 정점에 있다.  

    

바르셀로나는 왜 이런 선수를 떠나보냈을까. 보내고 싶어 보낸 건 아니다. 팬데믹으로 재정이 악화돼 샐러리캡을 유지할 수 없었고, 자유계약 신분이 된 메시와 재계약하지 못했다. 같은 이유에서, 메시는 작년에 바르셀로나를 떠났어야 하는 선수다. 지난여름 구단에 이적 요청을 했고 그때부터 재정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메시는 일 년 사이에 마음을 돌려 재계약을 희망했지만 일 년 더 작별이 유예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유예된 시간 안에 바르셀로나가 품은 구조적 균열이 웅크려 있다. 그건 곧 강렬하고 독특한 지역주의에 절은 이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시민 구단이 직면한 모순과 혼돈이다.      


카탈루냐는 전통적으로 자치 색이 강한 지역이다. 20세기 초반 두 차례나 독립 공화국 선포를 강행했다 저지당했고, 전간기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진영에 패배한 후 수십 년 동안 카탈루냐어와 깃발 사용 등을 금지당했다. 2017년에도 카탈루냐 의회는 독립을 선언했고 스페인 정부는 지도부를 연행하며 저지했다.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를 표상하는 역할을 해왔다. 로컬 기반의 조합원들, 소시오들이 참여하는 의결 구조의 시민 구단이고, 임기를 정해두고 의장을 선출한다. 축구 구단을 넘어 시민들을 결속하고 대변하는 시민 단체, 나아가 정치 기구의 성격을 가진다. 이것이 바르셀로나의 슬로건, ‘클럽 그 이상의 클럽’(mes que un club)의 뜻이다.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출신 구성원들, 보드진과 선수 중엔 카탈루냐 독립주의자들이 있다. 전임 의장 바르토메우, 바르셀로나 레전드로 유명한 사비, 현역 최고참 피케는 카탈루냐 독립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코리안 메시’ 이승우가 몸 담아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바르셀로나 유스 팀, 라마시아는 저들의 축구적·지역적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요람이다. 지역 유소년들이 입단해 축구를 배우고 성인 팀에 발탁되는 선수는 ‘라마시아 성골’로서 팀 내 입지를 얻고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카탈루냐의 지역주의가 라마시아를 거쳐 바르셀로나 특유의 축구 색깔로 전치되고, 라마시아는 바르셀로나의 두 가지 성질, 축구팀과 시민 단체를 융합하는 역할을 한다. 바르셀로나 관계자들은 ‘DNA’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쓰는데, 바르셀로나 DNA는 곧 라마시아 스타일인 한편 수백 년 전부터 전래된 카탈루냐의 지역 색인 것이다.
 
 현재 바르셀로나가 품은 모순은 카탈루냐란 정체성 안에 외부에서 유래한 이질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서로 다른 축구적·사회적 체제가 양립하며 ‘이중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파도가 70년대에 영입된 네덜란드인 감독 리누스 미헬스와 선수 요한 크루이프로 대표되는 더치 커넥션이다. 이들은 토털 풋볼의 창시 집단으로 유명하고 이들이 가져온 전술 사조가 스페인 식 패스 축구와 결합해 바르셀로나 특유의 점유율 축구를 낳았다. 카탈루냐의 뿌리를 뜻하는 ‘DNA‘의 모체가 더치 커넥션으로 수혈된 네덜란드 스타일이라는 아이러니다.
 
 두 번째 파도는 90년대 이후 밀어닥친 세계화다.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 리가를 대표하는 빅클럽이 되었고, 해외 자금과 슈퍼스타가 대거 유입됐다. 조합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의 성격을 초월하는 구조적 변화다. 시민구단 형식이지만 글로벌 대기업 스폰서로 운영되는 구단, 카탈루냐의 자치성을 추구하지만 세계에서 첫째 둘째 가는 글로벌 구단이 된 현실. 이것이 바르셀로나가 직면한 정체성의 분열이다. 리오넬 메시는 Cule(바르셀로나 팬을 뜻하는 애칭)들의 자부심을 이루는 6관왕 황금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라마시아가 키워 낸 아르헨티나 선수, 바르셀로나의 신이 된 글로벌 축구 아이콘이다. 저 두 번째 파도, 카탈루냐적인 것과 글로벌적인 것의 혼종을 자신의 존재로 집약한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그저 아이콘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존재다. 바르셀로나, 나아가 카탈루냐 지역의 문화적 랜드마크이며, 구단 스폰서 유입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메시는 전 세계에 바르셀로나를 알리고, 유입된 팬들에게 카탈루냐란 지역과 그들의 정치적 입장도 소개될 수 있다. 이것이 리오넬 메시와 카탈루냐가 동행하는 모습이었다.
 
 메시가 지난여름 떠나려 한 계기는 챔피언스 리그 뮌헨 전에서 2:8로 대패한 참사였다. 그는 구단에 스포츠적 비전이 없다고 절망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 의장 바르토메우를 향한 환멸감이 있었다. 바르토메우는 거대 이권을 쥔 폐쇄형 조직과 계파 논리가 어떻게 지대 추구 행위로 이어지는지, 한국적 어휘로 쓰면 ‘정치질’의 폐해를 보여주는 산 표본이다.      


10년 전, 바르토메우와 같은 계파에 속하는 산드로 로셀 의장은 카타르 항공과 계약을 체결했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기업 이름을 유니폼에 박으며 글로벌 자본을 맞아 들였다. 바르토메우는 더 본격적으로 ‘DNA’에 역행했다. 라마시아 육성을 등한시한 채 슈퍼스타를 무차별 영입하고 고 주급 체계를 만들어 수익을 탕진했다. 스포츠 플랜 없이 네임 밸루만 쫓은 영입은 하나같이 실패했다. 임기 내에 치적을 만들어 지역 사회에서 정치적 입지를 쌓으려는 야욕이 구단도 망치고 지역사회마저 배신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바르토메우가 떠나려는 메시를 억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펼친 빚더미 때문에 메시의 천문학적 주급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메시는 일 년 후면 자유 계약으로 풀리는 신세였다. 하지만 자신의 임기 내에 카탈루냐의 아이콘을 잃는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 후임 의장에게 폭탄을 떠넘겼다. 만약 한 명의 오너가 연속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구단주 체제였다면, 틀림없이 작년에 메시를 팔고 이적료라도 건졌을 거다. 후임 라포르타 의장은 메시 재계약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돼 수차례 자신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바르토메우에게 비난을 전가하고 있다.  

    

문제는 바르토메우 개인이나 DNA 등한시 같은 논점을 넘어선다. 소시오들이 주장하는 대로 라마시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실적주의가 아닌 연고주의로 선수를 쓰는 폐해가 생긴다. 실제로 그런 적폐도 바르토메우의 실정과 병렬된 채 나타났고 현재 진행형이다. 소시오들과 현지 언론의 지독한 배타성 역시 잇따른 이적생 적응 실패의 원인 중 하나다. 세계화의 물살이 몰아치는 가운데 현지의 정서적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는, 양 극단이 충돌하고 불화하는 상태가 이 부조리극의 무대다. 시민 구단의 정체성이 정치판 계파 싸움이란 가장 부정적인 양태로 나타나고, 의장들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소시오들 민심을 얻는 한편 글로벌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동안 이 분열을 봉합해준 게 클럽이 거둬 온 화려한 트로피였다면, 바르토메우 체제를 거쳐 스포츠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곪은 문제가 폭발한 것이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건이 작년부터 올해에 걸친 리오넬 메시 사가다.      


축구를 잘하려면 축구만 해야 한다. 바르셀로나는 염불보다 제삿밥에 관심을 가질 유인, 라커룸 구성원들이 축구에 전념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이 고착돼 있다. 이건 하루아침에 해소될 성질이 아니기에 재정난이 사라진다고 해도 스포츠적으로 반등하기는 쉽지 않다.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는 윤리적이지 않으면서 유능하지도 않은, 타락한 민주주의를 우화처럼 재현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를 떠난 메시의 행선지가 파리란 사실은 또 다른 아이러니다. 파리 생제르망은 십 년 전 카타르 왕가가 인수해 자금 공습을 퍼부으며 성장시킨 클럽이다. 파리는 스페인 중심부에 대해 분리주의 성향인 바르셀로나와 달리 프랑스 프로리그 리그 앙 측과 공조해 왔으며 마크롱 대통령은 켈라피 회장에게 “메시를 영입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메시의 재계약이 불발되자마자 발 빠르게 영입한 것도 바르셀로나와 정반대의 운영 구조 덕이기도 하다. 카타르 왕가로 통일된 일사불란한 의사결정 체계와 내년 카타르 월드컵을 흥행시키겠다는 왕가의 야심이다. 한쪽에는 자족적인 지역사회 시민 구단에서 글로벌 구단이 된 클럽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프랑스 수도 한가운데 오일 자본이 들어가 아랍 왕족의 위세를 과시하는 선전 수단이 된 클럽이 있다. 바르셀로나의 신화 속에서 파리로 강림한 리오넬 메시의 노정이자, 글로벌화된 유럽 축구의 서로 다른 극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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