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과 강형욱, 백종원은 요즘 가장 존경을 받는 저명인사일 것 같다. 달리 말하면, 2010년대 초반 멘토 열풍 이후 새롭게 멘토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전 시기 각광받던 멘토는 안철수, 김난도, 혜민이었다. 이들은 보편적 권위에 기반해 사회의 험난함과 맞닥뜨린 20대 청춘들에게 위안과 충고를 건넸다. 반면오은영, 강형욱, 백종원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사람들에게 구체적 설루션을 주는 존재다. 미디어에 출연해 문제를 겪는 의뢰인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지도하며 스타가 되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차례로 주목받은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지만 사실상 사람들에게 동일한 방면에서 추앙받고 있다. 바로 '인간 개조'다. 백종원은 요식업 자영업자, 강형욱은 반려 견 보호자, 오은영은 심리적·사회적 문제에 빠진 내담자들, 그중에서도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과 상담하는 경우가 많다. 오은영이 상담하는 주제는 그 자체로 한 인간의 삶과 직결된 것이지만, 백종원과 강형욱 역시 관련 분야에 조언을 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이 관찰하고 지적하는 의뢰인들의 태도는 거의 인간성이라 부를 만한 뿌리 깊은 마음가짐과 행동 방식에 닿아 있다. <골목식당>은 백종원이 갖가지 행태의 업주들을 다그치며 씨름하는 과정이 줄거리였고, 강형욱의 지론은 “나는 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일을 한다”이다.
하지만 결론은 사람을 변화시켜 나가는 휴먼 스토리보다는 인간 개조의 실패에 가깝다. 저들이 출연하는 방송에는 그만큼 문제가 극단적인 사례가 많다. 여론이 반응하는 포인트도 해결책의 내용 이상으로 개선 가능성이 안 보이는 의뢰인을 성토하는 것에 쏠려 있다. 이건 많은 사람이 유행어로 공유하는 통속적 믿음의 확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유관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조차 사람을 고칠 수는 없었다. 이것이 그들의 공인된 권위로 입증되는 것이다. 자연히 설루션은 설명과 교육을 지나 탄식과 호통을 전시하는 것으로 빠진다. 백종원의 임무는 <골목식당> 중반부터 자영업자 정신 재무장처럼 보였고, 강형욱은 골칫거리 강아지와 멱살잡이를 하다가 불현듯 고뇌에 빠져 견주들에게 노성을 토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이들이 뉴미디어 시대의 멘토가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 우러름을 받을 만하고, 사람들의 실용적 니즈를 해소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오프에선 비싸서 구매할 수도 없는 전문가의 설루션을 온라인을 통해 배포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이 종사하는 분야는 현재 보편화된 생활양식과 밀접하다. 비혼 가구가 증가하며 과제가 된 집 밥 해 먹기와 취업을 대신하는 생계 수단이 된 요식업 / 가족 구성원 감소에 따라 성장한 반려 견 산업 / 출산율 감소로 무언가 의미심장한 존재가 되어 가는 외동 자녀들이다. 이처럼 사회적 일상의 화두로 등극한 테마에 생생한 시추에이션을 통해 개입하고 지침을 내려 준다.
무엇보다 이들은 영웅적 개인이자 굴지의 전문가로서 사회 기능의 실패와 사회 환경의 미비를 받아 안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용 시장이 흡수하지 못하는 노동 인구가 창업으로 몰리고, 인구 과밀 사회에서 반려 견이 증가하며 갈등이 증폭되고, 보육 시스템과 공교육 제도의 결함으로 인해 그 바깥에서 전문가의 개입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 구조와 여러 분야의 현실이 복합된 현상이기 때문에 개인의 설루션으로 근치 할 수 없다. 특히, 아동 훈육의 경우 심리 상담을 넘어서는 제도적 문제가 결부돼 있어 해당 분야 종사자들로부터 오은영이 ‘현실과 유리된 해결책을 말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대로 백종원과 강형욱이 궁극적으로 견지하는 입장은 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을 넘어 문제가 잠복해 있는 현실로 섣불리 진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수준에서 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백종원은 ‘식당 창업을 만만히 보지 말라’ ‘한국엔 자영업자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고 경고해 왔으며 강형욱은 ‘당신은 개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방송에서 '준비가 되지 않은' 업자와 견주들을 신랄하게 꾸짖고시청자들에게 ‘사이다’ 콘텐츠로 소비된 것이 방송의 흥행 비결이기도 하다.
백종원, 강형욱, 오은영의 의뢰인들은 타인에게 이해심을 발휘할 여유와 공동체 의식이 꺼져 가는 시대에 많은 사람의 원성을 사는 ‘공공의 적’이다. 아파트에서 개 짖는 소리를 초래하는 반려견주, 노키즈 존이 등장할 만큼 기피 대상이 된 '잼민이들'(어린 학생들을 일컫는 인터넷 속어), 불친절하고 맛없는 음식을 파는 자영업자들. 이들의 지지자 역시 견주와 자영업자, 학부모들보다는 오히려 그 바깥의 대척점에 있는 여론으로 보인다. 일례로 강형욱은 반려 견주들을 대변하는 포지션이 아니다. 그들을 문제의 원인으로 강경하게 비판하는 입장에 가깝다. 강형욱의 주장을 퍼 나르는 것도 반려 견 문화에 적대적인 네티즌들이다.
저마다의 삶의 양식이 갈수록 개인화된다. 그것은 개인의 권익이 집단에 앞 서는 의미의 개인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실존을 대하는 관점이 사회 구조에서 분리되는 원자화이며 개인의 안녕이 또 다른 개인에게 침해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위해 공중의 영역에서 개인을 규제하는 강한 억지력이 요구되고 있으며 특정 개인에게 우선하는 존재로서 개인들의 총합인 집단의 존재가 강조된다.라이프스타일로서의 개인주의가 퍼져 가고 있지만집단주의로 전치되는 왜곡된 개인주의다.
사람들을 중재할 공적 영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개인의 삶, 개인의 문제는 뿌리부터 그 자신의 몫으로 짊어져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와 공적 규범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에티켓’이란 이름의 공중도덕과 각자도생의 윤리다. 제 삶을 건사하지 못하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이들은 사회의 조화를 깨트리는 악당, '빌런'으로 지목 돼 징벌 받을 것이 요구된다. 미디어를 통해 그 징벌의 서사를 관람하며 각자의 삶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보상받는다.
저 전문가들이 멘토로 추앙받는 숨은 맥락이 있다면 시대의 공통의식을 관통해 사람들 마음속 밑창을 '속 시원하게' 정화하는 '치유'를 제공하기 때문 아닐까. 다른 이름은 '사회적 빌런 참 교육' 전문가 정도일까. 그 뒤편에 있는 건 서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단념과 사회 환경에서 이어지는 문제의 한없는 개인화, 이제는 모색할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각자도생 사회의 창백한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