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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K pop Critic

케이팝의 재주술화

민희진, 케이팝을 주술화하는 기획자

by MC 워너비


뉴진스가 꿈꾸는 ‘혁명’은 또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작년 4월 시작된 하이브와 민희진의 분쟁은 그 해 11월 뉴진스가 어도어와의 전속계약 해지를 선언하며 클라이맥스로 갔다. 어도어는 전속 계약 유효확인 소송으로 대응했고 드디어 결과가 1년 만인 지난 30일에 나왔다. 1심 법원은 전속 계약이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뉴진스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미지수다. 본안 소송 전에도 어도어의 활동 중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 됐고 뉴진스의 이의신청과 항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판결 자체가 승소할 확률이 낮았다고 봐야 한다. 3심까지 재판이 완료되려면 또 긴 시간이 걸린다. 모든 상황이 뉴진스에게 우호적이지가 않다. 애당초 전속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부터 무모했다.


그렇기에 궁금한 건 뉴진스 멤버들과 부모들의 의중이다. 민희진은 어도어에서 축출당했기에 하이브와 대결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왜 저들은 남들 눈에는 패배가 훤히 보이는 가시밭길로 걸어 들어갔을까. 아마도 민희진과의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멤버구성부터 콘셉트 하나까지 뉴진스의 모든 것에 민희진이 개입했다. 그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인 한편 하이브와의 신뢰는 파탄 났으니 민희진 없는 어도어에서 활동하는 건 생각하지도 않았을 수 있다. 그런 인식이 사실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그룹의 존속이 걸린 선택에서 기꺼이 자멸을 감수할 만큼 기획자 개인과 떼어낼 수 없게 된 사실 말이다. 이건 서로의 입장에 따른 합리적 동반자 관계가 아니라 기획자의 앞날에 운명이 종속돼 있는 유착 관계다. 이런 왜곡된 관계가 빚어진 건 양자의 사적인 관계를 떠나 케이팝 산업의 근대화와 그에 역행하는 주체의 등장이라는 구조적 맥락이 있다.


케이팝의 탈주술화, 민희진의 재주술화


90년대까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는 합리적 시스템이 세워지지 않았다.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가 미분화 돼 있었다. 그런 한편 조잡한 시스템에서 벗어난 아티스트 개인의 영향력이 지배적으로 행사되기도 했다. 자신의 영감으로 자작곡을 만들고 카리스마를 통해 대중을 휘어잡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전형이다. 이를테면 제도와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아우라와 신비주의가 팬들의 집단적 열정을 소환하던 주술적 세계였다.


백 년 전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세계가 근대화 과정에서 종교적이고 마법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성에 의해 규율되는 현상을 '탈주술화'라고 불렀다. 서태지 이후의 시대에는 그를 벤치마킹한 아이돌들이 데뷔하고 기획사가 설립돼 프로듀싱과 트레이닝 시스템이 마련됐다. 말하자면 주술적 세계가 합리화되고 탈주술화되는 과정이었다. 무대 위 아이돌은 더 이상 군중의 광적인 열기를 일으키는 신비한 선동가가 아니다. 철저히 기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며 아우라가 탈색된 소비와 애착의 대상에 가깝다.


민희진이란 기획자는 이런 맥락에서 다시금 읽어낼 필요가 있다. 그는 탈주술화된 아이돌, 시스템의 부품일 뿐인 아이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것에 염증을 표현해 왔다. 그에게 아이돌은 “배우는 학생”이며 저 고도화된 매니지먼트 시스템에서 그것이 그들의 온당하고 진실된 자리이다. 주술적 존재가 사라진 시스템에선 작가적 의미가 부재했고, 민희진은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돌을 만드는 사람이 그 무의미를 채워야 한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민희진이 어도어 대표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피력해 온 작가주의적 기획자 모델이다.


그는 뉴진스 데뷔 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면에 나서며 인터뷰에 임했다. 뉴진스라는 ‘작품’을 만든 주체는 멤버들이 아니라 뉴진스를 기획한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기획자로서의 영향력을 자신이 속한 시스템 보다 윗자리에 놓으며 하이브와 보이지 않는 충돌이 발생했고, 돌이켜 보면 현재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전주곡이었던 것 같다. 민희진이 카리스마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례는 바로 작년 4월에 있었던 기자회견이다. 마치 한 편의 퍼포먼스를 펼치듯이 날것의 말과 감정을 폭격하며 현장을 휘저었고, 군중은 민희진에게 감응해 삽시간에 숭배자로 포섭되었다. 이 장면이 일으킨 선동의 열기는 그야말로 주술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문제는 주술적 주체가 아티스트에서 기획자로 바뀌면서 그가 관장해 온 기획과 매니지먼트의 영역 또한 재주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속 계약 소송에서 충돌하는 건 단순히 뉴진스의 자유와 어도어의 권리가 아니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이탈하려는 민희진의 소유권과 거기에 자본을 투여한 하이브의 소유권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구속적 효력을 가지는 계약 관계와 그를 뒷받침하는 법률을 뛰어넘기 위해 추상적 정의 관념과 뉴진스와 민희진의 가족적 유대관계, ‘팥쥐(르세라핌/아일릿)를 끼고돌며 콩쥐(뉴진스)를 핍박하는 계부(방시혁)’ 같은 전근대적 서사가 동원되며 여론전이 진행된 것이다.


케이팝 산업의 표준 계약서는 과거부터 수차례 법적 분쟁을 거치며 7년 계약과 5:5 정산이라는 나름의 균형점이 관행으로 도출된 합의서다. 이는 아티스트와 기획사의 권리를 아울러 고려하는 동시에 절충하는 내용이다. 그 안에는 여전히 허점도 존재하지만 케이팝 산업의 체계화, 탈주술화를 반영하는 성격도 있다. 그럼에도 분쟁이 진행되는 와중 언론에서는 표준 계약이 아티스트를 구속하는 악습처럼 성토되는 기괴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번 판결이 중요한 이유도 그런 것이었다. 저 현상이 일회성 여론전을 넘어 보편적 관념으로 뒤바뀌며 아이돌과 기획사의 계약에 관한 합리성이 있는 개념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이것은 케이팝이 다다른 현재를 역진시키려는 시도였다.


소송이 남긴 질문들


이번 소송은 단순히 사건 자체를 넘어 케이팝 산업의 구조와 시스템을 시험대에 올렸다. 민희진의 사례는 산업의 근대화의 성취를 위협하는 동시에 하이브의 문어발 식 확장에 숨은 권력 분쟁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실 민희진 같은 인물은 하이브뿐 아니라 어떤 기획사에 속하든 시스템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자신의 영향력을 시스템보다 과대평가하고 아이돌을 독점적 창작물로 여기는 ‘작가적’ 지향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흥미로운 일은 그가 뉴진스 이외의 다른 아이돌을 론칭하는 장래에 일어날 것이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채 기획자와 회사와 아이돌의 주체가 하나로 통합되는 상태가 나올 것이고 그것은 지금껏 케이팝 산업에 존재한 적 없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자적인 행보를 꾸려 갈 때 산업의 다른 주체들이 폭넓게 영향받을 수 있는 공간이 창출될지도 모른다. 판결이 나기 며칠 전, 민희진이 자신의 회사 ‘오케이’를 설립했다는 뉴스가 인상적인 이유다.


케이팝 산업은 오직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시스템을 지휘하는 작가를 통해 진화할 수 있는가? 혹은 그 작가가 손을 뗀 상황에선 아이돌의 정체성도 더 유지될 수 없는 것인가? 시스템의 합리성과 작가의 자유는 어떻게 절충될 수 있을까. 이상은 케이팝 산업에 그저 잠재 돼 있을 뿐인 주제였지만, 이번 사건은 그를 가시화한 의미가 있다. 아티스트와 기획자, 시스템과 개인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이 기나긴 분쟁을 돌이키며 생각할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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