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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10. 2016

사이비 리얼리즘

팩트 폭력이란 유행어

1.


팩트는 사실관계란 뜻이지만,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팩트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팩트의 용례에서 두 가지를 주목할 수 있다. 팩트의 반대말이 선동으로 통하며, 무언가를 그 자체로 제기하는 주장의 근거 보다는 상대 주장에 대한 반례의 형식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팩트 폭력’도 그렇다. 사실을 왜곡해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는 예민한 사람은 그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을 폭력으로 받아들인다는 비아냥이다.


팩트에 사로잡힌 이들은 현실에 대한 ‘과도한 가치판단’을 거부하고, ‘사실’이 아닌 ‘사실이란 형식’에 집착한다. 팩트란 말이 08년 광우병 사태나 이번 넥슨 사태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주장에 반발하거나 정치적 올바름을 논파하는 형식으로 호출되는 것이 증거다. 현실에 대한 이념적 미사여구는 선동, ‘감성팔이’다. 이들은 선동의 대립항으로서의 다른 태도를 지향하는 것이지, 내용으로서의 사실관계의 탐색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사실과 논리와 관점의 종합으로 현실을 파악하는 체계성 보다 몇 장의 ‘캡쳐 사진’이란 형식이 우월하다고 믿는다. 물론 그 캡쳐 사진의 진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팩트 물신은 가치판단에 입각한 현실에 대한 서술을 사실의 기술로 대체하려는 사이비 리얼리즘이다.


현실에 대한 이런 몰가치한 태도는 지금-여기 있는 현실의 질서를 자연화하는 동물적 태도와 통한다. 팩트란 말을 선호하는 건 왼쪽 보다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 보다는 바꾸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팩트 좋아하는 가장 저명한 집단이 일베 아니던가. 저 멘탈리티 속에서 불평등이 넘치는 사회 현실은 회의하지 않는 '팩트'가 된다.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자는 가치판단을 버릴 때 '팩트'는 바꿀 수 없는, 바꿔선 안 되는 진실이 된다. 이 진실을 거부하는 자들은 선동꾼이고 무임승차자로 보일지 모르겠다.


2.


차별은 옳다고 논증하기 쉽고 평등은 논증하기 어렵다.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힘과 힘, 지위와 지위로 구획돼 있어 항거할 수 없는 자연적 사실, '팩트'처럼 느껴진다. 차별의 논증은 '팩트'를 거론하는 것으로 간단히 수행된다.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공적 나눔이 필요하다는 말에 “남들 노력할 때 논 사람은 그만큼 사는 게 공평한 거 아닌가요? 왜 노력한 사람들이 자기 걸 줘야 하죠?”라고 할 때 이 논리는 다수의 직관에 매끄럽게 부합한다. 평등의 논증은 이 주어진 사실을 우회해서 옳고 그름을 설득해야 하기에 말이 길어진다.


근대의 역사는, 수 천 년 간 전승된 이 자연적 사실을 뒤엎고, 거추장스러운 입씨름 없이 단 한 마디 말로 상대를 입 다물게 하는 공리, 새로운 자연적 사실을 개발한 역사다. 그것의 총아가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동등하게 가지는 권리, 바로 천부인권이란 개념이다. 단적으로, "평등" "자유" "인권" 같은 말이 설득이 필요없는, 얼마나 자명한 것으로 통용되느냐에 따라 그 사회 의식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은 자명한 것들 앞에서 점점 더 많은 말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지역갈등, 이념갈등, 노사갈등, 남녀갈등을 떠나, 또는 그 모든 소통불능을 일으키는 근본 갈등은 근대적 자명성에 대한 합의의 부재다.


3.


정확한 사실로 건축된 주장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간 진보진영은 사회운동의 중요한 국면에서 불붙은 여론을 더 키우기 급급해 사실관계 검증을 뒤로 물린 적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발생적 정황이 세상에 대한 가치판단을 사실관계로 대치하는 반지성주의를 정당화할 수 없다. 팩트니 통계니, 과학적 논증이니 “진보진영의 나쁜 버릇” 운운하며 통계를 왜곡하고 단편적 사실을 일반화하는 ‘선동꾼’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는 사람들이 사실의 형식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편향을 웅변해주는 존재다. ‘팩트 폭력' 같은 말 뱉으며 너무 킥킥거리지 말기를 바란다. “메갈리아는 남녀평등주의가 아니라 여성우월주의자” 같은 주장을 ’팩트화‘하는 건 너무나 쉽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사실의 낱장 너머를 방기한, 그렇게 해도 현실을 구가하는 데 불만이 없는 사람이란 뜻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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