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찬 Apr 11. 2021

해야 하는 것이라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화장실이다. 자꾸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소금기 가득한 물 때문에 참을 수가 없어 손을 씻고 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물이 튀지 않게 조심스럽게 양손을 비볐지만 소매 끝자락에 물이 묻었다. '제기랄 소매를 걷었어야 하는 건데' 신경질을 부려보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물이 소매자락을 적시고 있는데 말이다. '차라리 소매뿐만 아니라 온몸에 물이 튀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이 거추장스럽고 답답한 옷을 벗어버려도 될 텐데,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가 소파에 누워 엊그제 못 본 드라마나 보면 될 것인데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것이 나의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얼마 안 있어 나는 이곳을 벗어나 저기 밖에 괴물의 입처럼 크고 그의 이빨처럼 단단한 문을 지나 화려하고 넓은 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수도꼭지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수도꼭지에는 센서가 달려있는지 내가 손을 떼자 물이 나오지 않았다. 세면대 옆면에서 휴지 몇 장을 꺼내 손에 물기를 닦아내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정면에 거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 보였다. 머리는 투블럭 스타일에 앞머리를 2:8로 나눠 위로 올려버렸고, 그로 인해 훤하게 드러난 이마가 화장실 등에 비춰 더욱더 빛이 났다. 평소에는 작은 크기 때문에 놀림을 받던 눈이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보였고, 눈 크기와 반대로 크고 넓은 코는 오뚝하게 보였다. 립글로스를 바른 입술은 매력적이게 보여 수많은 여성들이 달려들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숙였던 허리를 폈다. 나는 검은색에 잘 다려진 투터치 양복을 입고 있었다.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몸 전체를 확인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좁은 화장실 크기 때문에 허벅지까지 만 보였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검은색의 말끔한 바지를 확인하고 얼굴도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한 검은색의 앞굽이 둥근 구두를 보았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전체적으로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갔다. 

 “여어 오늘따라 핸섬한데, 옷이 날개라더니. 맨날 츄리닝 차림만 보다가 양복 입은 모습 보니까 색다르다.”

 화장실을 나오자 젊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대략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딱 달라붙는 밝은 남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상체는 옷이 찢어지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두껍고 단단해 보였고,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쳐다보니 짧은 머리를 가운데로 몰아넣어 위로 치켜세웠고, 검은색의 둥근 테에 안경을 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얼굴크기에 맞게 적당한 크기였고 콧대가 세워져 있어 눈이 움푹 들어간듯했다. 그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잘생겼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남자가 나의 17년 지기 인 김환이다. 그리고 오늘 있을 행사를 도와주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멀리서 온 친구이다.

 “어...”

 “어? 이 새끼 왜 이렇게 얼어있어? 천하에 이철호가 왜 이러실까?”

 짐짓 의아하다는 듯 김환이 말했다. 또다시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라 진짜 긴장했네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네 이철호가 긴장하는 모습도 보고 말이야” 놀랍다는 표정으로 김환이 말했다. '팡' 어느새 다가온 김환이 그의 길쭉하고 커다란 손으로 나의 등을 쳤다. 나는 그의 기습적인 공격에 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뭐야! 이 새끼야 아프잖아!”

 “크크크 드디어 평소에 이철호로 돌아왔네”

 김환은 두툼한 팔을 나의 목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그리고 김환은 말없이 오른손을 들어 v자를 만들고 옆으로 기울였다. 오늘 같은 날 니코틴 냄새를 풍기면 그녀가 싫어하겠지만 나는 김환을 따라나섰다. 

 '치익'

 김환은 검지 손가락 만 한 길이의 하얀 종이에 쌓여있는 둥근 원통의 물체에 불을 붙여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길게 빨고 입에서 떼어 ‘후~우’ 소리가 나도록 불었다. 탁한 하얀색의 연기가 폐 속까지 들어갔다가, 나의 입에서 나오며 은은한 향기가 내뿜어져 코를 간지럽히고 연기는 한 대 뭉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마치 하늘의 구름을 연상케 했다. 한동안 참아왔기에 어지럼증이 느껴졌고 몇 번 더 그것을 흡입하자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철호야 뭐 이게 별거라고 긴장을 하고 그러냐?”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김환이 말했다.

 “그냥... 뭐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네”

 나는 먼산을 바라보듯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평소에는 튀고 싶어서 난리 피우던 놈이 왜 이러실까? 너 고등학교 때 기억 안 나냐?”

 김환은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렇지 않던 놈이 갑자기 위축이 되어 뭔가에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확실히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튀고 싶어 환장한 놈이 맞기는 했다. 공부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웃겨줄까? 어떻게 하면 분위기를 뛰울까? 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이다. 과장된 몸짓, 엉뚱한 행동, 쉴 새 없이 떠들어 되는 입 그로 인해 내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몰려있었고, 단번에 같은 학년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인이 되어있었다. 

 “그건 철없던 시절이고 지금은 또 다르잖아”

 “뭘 달라 사람 성격이 어디 가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라 너 인마 고3 야자 시간에 정전된 날 갑자기 바지 벗고 춤췄던 것 기억 안 나? 지 팬티가 야광 팬티라고 자랑하면서?”

 김환이 마치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는 듯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곰을 연상케 하는 덩치를 가진 놈이 진지한 표정으로 어깨를 흔드는 모습이 귀여워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인마 그렇게 웃어 그 힘든 시기도 다 견딘 놈이 뭘 무섭다고 쫄아서 그러냐? 네가 항상 안 그랬냐? 힘들수록 웃으라고!”

 김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인마!”

 나는 웃으며 말을 했고 그제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고맙다.”

 “사람이 말할 때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거다 철호야”

 등을 돌리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김환은 분명 웃고 있을 것이다. 

 “그래 고맙다.”

 나는 뜨거워지는 얼굴을 감추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나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입을 헹구었다. 담배의 쓰디쓴 잔향이 남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나는 오늘 행사가 있을 파라다이스 홀로 향했다. 파라다이스 홀 맞은편에는 아내의 사촌동생인 준성이와 그의 친구인 현성이가 축의금을 받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파라다이스 홀에 거대하고 화려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몇 번을 보는 곳이지만 질리지 않았다. 돔 형식의 높은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홀 안을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들었고 마치 중세시대에 성안에 화려한 파티장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버진로드를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는 원형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것은 실크로 된 검은색의 원단을 두르고 있어 한층 더 고급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각각의 테이블에는 다섯 개씩 의자가 놓여있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테이블의 중앙에는 하얗고 분홍색의 꽃들이 담긴 상아색의 유리 화분이 놓여있어 휑하던 테이블을 꾸며주는 역할을 했다. 버진로드의 양옆에는 주로 하얀 꽃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중간중간에 껴있는 다양한 색상의 꽃들로 인해 그 화려함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고 버진로드의 바닥은 다른 결혼식장과 달리 강화유리로 되어있었는데 그 밑에 또한 아름다운 꽃들이 즐비해있었다. 이곳을 걸을 때면 마치 앞날에 꽃길만 펼쳐지는 것 같았다. 버진로드 끝에 다다른 나는 단상에 올라 주변을 다시 흝어봤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저기 구석 쟁이에서 다른 사람에 결혼을 축하해줬는데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한 번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나의 의지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