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서 있는 젊은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분명 무슨 소리가 들리기는 한다. '웅얼웅얼' 그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녀의 입 모양이 마치 조개가 입을 벌리듯 아주 천천히 천천히 움직였다. 도대체 왜 이러지 주먹 사이로 불쾌한 물이 흘러나왔다.
“... 신랑분은 사회자가 신랑 이름을 부르면 그때 입장하시면 돼요. 아시겠죠?”
“아... 네... ”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놀래서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평소에는 느끼지 못할 어지럼증이 일어났고, 속에 있는 무언가가 입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왁스를 바르고 강력 스프레이로 고정시킨 머리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면 안 되는데' 나는 고개를 숙여 살짝 흔들렸던 머리카락 부분에 조심히 손을 대보았다. 다행히 처음 상태 그대로인 듯했다. 고개를 들어 몇십 번은 봤던 원형 테이블과 의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의자에 앉아있고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양 복도 끝에 있거나 뒤편에 공터에 서있었다. 그들은 마치 나를 중심으로 서있는 듯했다. 나는 두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가렸다. 이렇게라도 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을 듯했다.
"톡톡"
갑자기 사방에 스피커에서 무언가를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마에 댔던 손을 내리고 천장 꼭지마다 교묘하게 숨겨진 검은색의 스피커를 봤다. 그렇게 끝에서 끝에 스피커를 확인하다가 사회자석에서 김환이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환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양 손가락을 입꼬리 대더니 위로 올려버렸다. '나보고 웃으라고?' 갑자기 밖에서 김환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힘들수록 웃으라고!', '그래 웃자 웃어' 나는 입을 꾹 다문 체 천천히 천천히 양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힘을 줘 들어 올렸는지 코 평수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분명 넓어졌을 거야'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을 하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환이 멀리서 엄지와 검지에 서 있는 젊은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분명 무슨 소리가 들리기는 한다. '웅얼웅얼' 그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녀의 입 모양이 마치 조개가 입을 벌리듯 아주 천천히 천천히 움직였다. 도대체 왜 이러지 주먹 사이로 불쾌한 물이 흘러나왔다.
“... 신랑분은 사회자가 신랑 이름을 부르면 그때 입장하시면 돼요. 아시겠죠?”
“아... 네... ”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놀래서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평소에는 느끼지 못할 어지럼증이 일어났고, 속에 있는 무언가가 입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왁스를 바르고 강력 스프레이로 고정시킨 머리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면 안 되는데' 나는 고개를 숙여 살짝 흔들렸던 머리카락 부분에 조심히 손을 대보았다. 다행히 처음 상태 그대로인 듯했다. 고개를 들어 몇십 번은 봤던 원형 테이블과 의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의자에 앉아있고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양 복도 끝에 있거나 뒤편에 공터에 서있었다. 그들은 마치 나를 중심으로 서있는 듯했다. 나는 두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가렸다. 이렇게라도 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을 듯했다.
"톡톡"
갑자기 사방에 스피커에서 무언가를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마에 댔던 손을 내리고 천장 꼭지마다 교묘하게 숨겨진 검은색의 스피커를 봤다. 그렇게 끝에서 끝에 스피커를 확인하다가 사회자석에서 김환이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환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양 손가락을 입꼬리 대더니 위로 올려버렸다. '나보고 웃으라고?' 갑자기 밖에서 김환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힘들수록 웃으라고!', '그래 웃자 웃어' 나는 입을 꾹 다문 체 천천히 천천히 양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힘을 줘 들어 올렸는지 코 평수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분명 넓어졌을 거야'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을 하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환이 멀리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둥글게 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환은 몇 번의 마이크 테스트를 거치고 오늘의 결혼식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결혼식의 사회를 맞게 된 김환이라고 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양가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결혼식은 하객 여러분께서 예식의 증인이 되는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진행됩니다. 신랑 신부의 특별한 결혼식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하객 여러분의 큰 협조가 필요합니다! 작은 실수가 있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라며, 두 사람에게 더없이 소중한 날이니 만큼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서 식 중 많은 박수와 축하를 아낌없이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신랑 이철호 군과 신부 김가인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김환의 말을 하자 하객들이 웅성거림이 사라지고 이제는 고요하고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김환의 말만 들렸다. “우선 양가 어머니께서는 화촉을 밝혀주세요”
김환의 말이 끝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들은 화촉을 밝히고 서로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이제 내 차례구나’
나는 찌릿찌릿하고 자꾸만 흘러나오는 땀에 주먹을 꽉 쥐어봤다. 이대로 조금만 더 쥐어짜면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 주먹 사이로 찝찝하고 불쾌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또한 6기통의 엔진이 나의 몸 곳곳에 놓여있는지 수시로 펌프질을 하는 통에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중에서도 심장의 엔진은 나의 귀에 들릴 정로로 우렁찬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기를 반복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나는 고개를 빳빳이 세워 턱을 앞으로 당기고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하얀 이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웃어 보였다.
“지금 현재 저 다음으로 떨릴 듯한데요.”김환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그 어느 연예인보다 잘생긴 신랑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정면만을 응시한 채 애써 무시했다. 주먹을 더 꽉 쥐고 가슴을 더욱더 치켜세웠다.
“다 같이 신랑이 입장하며 큰 박수와 함성으로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 신랑 이철호 군 입장!”
... 랑... 호군... 입장! 다른 말을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입장이라는 소리만이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한 발을 떼자 성격이 급한 누군가 박수를 쳤다. 활은 이미 시위를 떠났고, 나에게는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정면을 주시하고 보폭에 신경을 쓰고 일정하게 팔이 흔들리는지 신경을 썼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했다. 마치 지금 입고 있는 정장처럼 말이다. 하객들의 함성과 박수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단상에 도착하고 나서야 멈췄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하객들을 향해 돌아섰다. 나의 눈이 이상해진 것일까 버진로드에 즐비해있던 화려한 꽃들이 시들어 있고 검붉은색의 날카로운 가시들로 탈바꿈해있었다. 양옆에 하객석은 짙고 음습한 안개가 뿌려져 있었고 어두운 밤색의 나무들이 뼈만 남은 체 즐비해있었다. 나무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비치는 붉은 눈동자는 나를 옥죄어오고 두렵게 했다. 마치 늦은 밤에 큰 아들과 집 밖에 나왔을 때 우리를 바라보던 고양이의 눈빛처럼 말이다. 나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단상 뒤로 숨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안다. 만약 내가 숨어버리면 누군가가 “신랑 나와!”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아내에게 쓴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 이제는 오늘의 주인공이자 오늘은 세상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운 분을 소개할 건데요. 신랑분은 벌써 흥분되는지 벌써 얼굴이 빨개졌네요. 이따가 놀려야겠습니다.” 김환의 입답에 하객 쪽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났다. “신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신부 김가인 양 입장!”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동시에 입장했다. 남자아이의 손에는 무언가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고,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옷자락을 꼬옥 쥐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나와 비슷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오늘따라 유난히 나를 닮아있었다. 여자아이는 큰 눈망울을 떼구루루 굴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무언가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사리 같은 손을 더욱더 꼭 쥐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두 아이가 걷던 걸음을 멈추자 뒤편에서 ‘스르륵스르륵’ 옷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고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들어섰다. 여자는 남자의 팔을 살며시 잡고 있다. 어깨를 드러나는 눈보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비추어 더욱더 화사하게 보였고 그녀의 큰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오뚝 솟은 코는 그녀의 미모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고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의 발에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우에 엥 엄마”
젊은 여자가 걷기 시작하자 여자아이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젊은 여자에게 뛰어갔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여자아이의 모습에 하객들이 여기저기서 박장대소를 했다. 젊은 여자가 당황해하며 허리를 굽혀 아이를 살며시 안아줬다. 그러자 아이는 더욱더 크게 울며 눈물과 콧물을 흘렸고 얼굴을 드레스 파묻고 비비기 시작했다. 한편에 있던 안내인 여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펴며 작은 한숨을 내셨다. '번쩍' 갑자기 중년의 남자가 아이를 들어 올리고 자신의 품에 안아 아이의 등을 살며시 두들겼다. 그제야 아이는 진정이 되는지 울음을 그치고 중년의 남자에게 푹 안겼다.
“우리 공주님이 무서웠나 보네요. 그래도 아버님이 잘 달래주셔서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신랑분은 이따가 식장에 세탁비 좀 두둑이 챙겨드려야 하겠네요 하하하”
김환은 주위를 환기시키고자 농담을 했다. 마지막 말에는 나와 가인의 살벌한 눈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안중에 없다는 듯 김환은 재차 말했다.
“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큐! 신부 입장!”
김환에 말이 끝나자 사방의 스피커를 통해 결혼 행진곡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들고 있던 바구니의 손을 넣고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아이를 중심으로 꽃들이 휘날렸다. 아이는 천천히 꽃을 뿌리며 앞으로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그러자 신부의 아버지와 신부는 아이의 발에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여자아이가 꽃 바구니를 향해 발버둥을 쳤다. 신부의 아버지는 손녀의 행동에 조심히 아이를 내려줬다. 여자아이는 그제야 꽃을 휘날리는 남자아이에게 달려가 양손을 바구니에 넣고 꽃을 주변에 뿌리기 시작했다. 남자아이와 달리 힘이 적은 여자아이가 뿌리는 꽃은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마치 자신에게 꽃을 뿌리는 형태였지만 그로 인해 한 두 개의 꽃잎이 아이의 드레스와 머리에 안착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아름다워 보였다. 두 아이가 나에게 다다르자 “우리 왕자님 공주님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가세요” 김환이 말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우측에 앉아있는 두 중년 부부에게로 갔다. “자 신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님을 맞아주세요”
나는 단상 앞에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향기가 느껴졌다. 너무나 익숙하고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맡았던 그 향기는 어둡고 칙칙한 곳에 있던 나의 자아를 자극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그녀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녀와 단상 앞에 섰다.
“오늘의 두 주인공이 한자리에 섰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로서 첫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신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주시기 바랍니다. 양가 부모님과 일가친척 그리고 내빈 여러분을 모신 가운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김환이 엄숙하게 말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어둡고 음습하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버진로드의 밝은 빛이 하객석을 비추고 있었고 내가 아는 사람 그녀가 아는 사람들이 보였다. 버진로드 꽃밭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워있고 색색의 다양한 꽃들이 서로 향기를 내뿜는 듯했다. 마치 깊고 깊은 한적한 산속에 그녀와 둘이 푸르른 녹색의 향연에 초대되어 온갖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고 새들의 지저귐을 감상하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다음은 신랑 신부의 혼인서약서 낭독이 있겠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사랑의 서약을 하겠습니다.”
안내인이 나에게 케이스에 담겨있는 한 페이지에 혼인서약서와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케이스를 열어 그녀와 한쪽씩 나눠 잡았다. 그리고 남는 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어제 그녀와 열심히 준비한 혼인서약서를 바라봤다.
“저희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는 이 자리에서 더없이 소중한 여러분께 다음을 서약합니다.
봄날의 따스한 마음가짐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하고 아껴주겠습니다.
여름철에 무더위에도 서로를 보듬어주고 서로의 땀을 씻어주겠습니다.
가을철에 숙이는 벼처럼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존중하겠습니다.
겨울철에 한파가 몰려와도 흔들리지는 않는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지금의 이 마음을 평생 잊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할 것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 앞에서 진심으로 서약합니다.”
첫 구절은 함께 읽고 두 번째 구절부터 그녀가 읽었다. 작지만 또렷한 그녀의 목소리가 꼭지마다 놓여있는 스피커를 통해 홀 안을 가득 메웠다. 부드럽고 몽환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이어서 내가 읽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면 그녀가 읽었고 마지막은 함께 읽었다.
“다음 순서는 축가입니다” 김환이 말을 하고 단상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김환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축가는 신랑의 17년 지기 인 저 김환이 부르겠습니다. 많은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환은 마이크를 들고 음악 반주에 맞춰 몸을 흔들거린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고마운 표정으로 김환을 바라봤다.
‘녀석 고맙다. 바쁠 텐데 이렇게 시간 내줘서 사회자며, 축가까지 불러주고 고맙다 친구야’
어느덧 노래가 끝났다. 몇 초간의 적막감 그리고 터져 나오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 김환은 하객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다시 자신의 자리 인 사회자석으로 돌아갔다. 자리에 돌아온 김환은 손부채를 부치며 말을 했다.
“너무 감동적인 축가였던 것 같네요. 이로서 오늘 준비한 모든 순서가 마무리가 됐습니다. 이것으로 이철호 군과 김가인 양의 결혼식을 마치면... 섭섭하겠죠? 하하하” 하객들은 마지막까지 농담을 하는 김환을 보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지인짜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부님 한마디 씩 해주시죠”
김환의 말에 나는 당황하며 김환을 흘겨봤다. 나는 한쪽 손으로 가린 반대 주먹을 김환을 향하고 ‘죽을래?’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김환은 그것에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오히려 어서 말하라는 듯 부추겼다. 그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방문해주신 하객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살 것을 여러분 앞에서 다짐합니다. 다시 한번 부족한 저희 결혼식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먼저 말을 했다. 하객들이 박수를 쳤다. '김환 빌어먹을 자식 계획에 없던 것을 하고 있어 아 이 박수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박수소리가 잦아들었고 한순가에 적막이 찾아왔다. 그녀가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때 무언가가 나의 손을 덮쳐온다. 그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것의 주인을 바라봤다. 8년을 잡아온 그녀의 손, 그녀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녀가 조용히 읅조리는 말에 다시 앞을 바라보고 천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에... 음... 거참 갑자기 말을 하려고 하니 당황스럽네요. 일단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저의 17년 지기 인 김. 환. 군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방문해주신 하객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런 젠장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그 내용이 점점 그녀가 말했던 것과 같아졌다.
“... 여러분 앞에서 다짐합니다.”
내가 말을 멈추자 다시 한번 적막감이 흘렀다.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은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괜히 겁이 났다.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고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내기 싫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을 했다.
“옛날 옛날에 철없고 바보 같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낙이라고 생각하듯 그는 그런 행각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큰 눈망울과 오뚝한 코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그녀는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처음 그녀는 행실이 바르지 못한 그 남자를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행동이 변해가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뭄에 논바닥이 마르고 갈라지듯 입안에 액체가 증발하고 목소리가 쉬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 사랑하여 결혼식을 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아이는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질책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는 그런 것에 신경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서 혼인신고까지 하고 잘살고 있어. 결혼식은 형식적인 것인데. 굳이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둘째 딸을 낳았고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하객들을 쭈욱 둘러보고 어느 한 곳을 바라봤다. “남자와 여자는 또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식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에는 결혼식을 합니다. 본인들이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좋아하는 모습에 남자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생각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더 이상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남 눈치 안 보고 살겠다고 말입니다.” 나는 말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봤다. 그녀가 웃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하객들의 시선을 두고 말했다 “음... 제가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말을 못 하는 성격이다 보니 횡설수설했네요. 어쨌든 저희 부부를 축하해주기 위해 방문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고요하고 조용했다.
'짝'
누군가의 손바닥 마주치는 소리가 울리고 그 소리를 기점으로 전염된 듯 하나둘 박수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홀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럽게 저의 제안을 따라 주신 신랑과 신부님께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신랑님 말씀 잘하셔서 놀랬습니다. 그리고 하객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주신 신랑과 신부에게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객들이 다시 한번 박수를 쳤다. “이것으로 이철호 군과 김가인 양의 결혼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사진 촬영이 남아있으니 배고프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어... 어 거기! 사진 찍고 가요!”
김환은 자신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문을 나서는 젊은 남자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외친다. 젊은 남자는 김환에 말에 걷던 걸음을 멈추며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김환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식은 가족, 친척, 지인들과 사진을 찍고, 나와 그녀가 폐백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안내인을 통해 알게 된 사실로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웨딩홀 사상 최초로 8분 만에 결혼식이 종료가 됐다고 했다. 아마도 나만 길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의 8년 만의 특별한 결혼식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