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찬 Apr 11. 2021

행복한 하루

 우리는 고단했던 결혼식을 마치고 작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우리의 안식처에 누워있다. 방안은 전등불이 꺼져있고 암막커튼을 쳐놓아 달빛 한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연한 하얀색의 무드등이 켜져 있어 장롱과 책장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방안은 조용한 가운데 아이들의 작은 코골이 소리가 들렸다. '하긴 나도 피곤한데 아이들이라고 오죽하겠는가' 나는 가인에게 팔베개를 하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음색이 속삭이듯 들려왔고 지친 나의 육체를 보듬어줬다. 

 “오늘 참 힘들었어”

 “응... 두 번은 못하겠다.” 

 내가 말을 하자 가인이 눈을 옆으로 흘겨봤다. 

 “얼씨구 다른 사람이랑 또 하려고 하셨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는 달래 듯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춤을 했다. 그제야 그녀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줬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나저나 다리는 괜찮아?”

 “조금 욱신거리는데 괜찮아 아~주 못~된 남자 만나서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네” 그 못된 남자가 나라는 것을 알지만 혀를 내밀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래도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그나마 좀 괜찮았던 것 같아 거참 남들은 이쁜 구두 신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결혼식을 치르는데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얼마나 지웠기에 운동화 신고 결혼식을 치렀는지 하~아”

 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 후회스러워?”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큰 결심을 했다는 듯 이어서 말했다. “다시 할까?”

 “아니 아니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된 거지 아니야!”

 가인이 질린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녀도 오늘의 결혼식이 힘들었나 보다. 결혼식 때는 시종일관 웃고 있길래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과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시달렸다는 것이 떠올랐다.

 “다시 결혼식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요. 안 하려고 했던 결혼식을 해서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결혼식이라는 것이 사랑의 증표라고 생각지는 않아 솔직히 결혼식 크게 하고서도 이혼하는 사람들 많잖아 그리고 우리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 살고 있었고 결혼식이라는 거 그냥 어른들의 욕심인 것 같아 그리고 보여지기 식이고” 

 가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등 떠밀리듯 하는 게 아니라 다음에 더 뜻깊게 하고 싶어 그래도 기분은 좋네 빚도 다 갚고 미루고 미루던 결혼식도 끝내고 지금 나는 너어무 행복하답니다.”

 가인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스럭’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쟤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잠버릇 심한 건지 모르겠네”

 아들 우진이가 이불을 걷어차고 딸내미 발밑에서 자고 있었다.

 “누구겠어 자기 아니면 나겠지?”

 “자. 기. 겠. 지.”

 가인이 우진이를 바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다가 나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우웅’ 우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자 옆에서 자고 있던 딸 수진이가 뒤척이며 잠을 깨려고 했다. 가인은 익숙하다는 듯 수진이의 옆에 누우며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준다. 

 “엄마가 섬그늘에~”

 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련한 음색에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자기야”

 가인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우진이 태어나기 전에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의 생명이 사라질 뻔했는데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커튼 사이로 간간히 비친 달빛이 오늘 밤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우리가 이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8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 만큼     

이전 02화 특별한 결혼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