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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Jan 27. 2022

우울증으로 노래 만든 썰 풀어본다

작사 작곡 이야기

항상 경험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곤 하는데, 그래서 뭘 그렇게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한 달이라도 배우러 다녔던 것들을 나열해보자면 재즈 피아노, 오보에, 일본어, 심리학 평생대학원, 방송댄스, 각종 쿠킹클래스, 와인, 광둥어, 각종 운동 등 참 대중없고 다양한 걸 부지런히도 시도하고 다녔다. 그중에 괜히 부끄러워서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다녔던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작사 수업이다. 첫 우울증을 자각하고 심리 상담을 시작했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뭔가를 너무 내뱉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고, 중학생 때부터 이십 년 가까이 앓아온 홍대병 말기 증상이 악화되어 내 노래를 만들고 싶어도 평소에 팔로우하던 독립서점의 작사 수업에 홀린 듯이 등록을 했다.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도 그 옛날 피씨통신에서 음악 관련 썰을 풀다가 결국 음악을 시작했듯이, 나도 그 오랜 기간의 파워 인디음악 팔로워로써 항상 마음속에 음악을 만들고 싶은 작은 열망의 불씨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이대 앞의 음악 서점인 초원 서점에서 인디 가수인 선생님이 주말마다 운영하는 작사 수업이었다. 이름은 작사 수업이지만, 작사한 곡의 멜로디도 직접 붙이고 녹음까지 해보는 자작곡 하나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추억의 이대 앞 초원서점. 음악서적 전문 서점이었다.


작사의 경우, 선생님이 가사 쓰는 방식을 예로 들어 배워본 다음 참가자들이 그 방법을 적용해 가사를 완성하는 방식이었고, 작곡의 경우 6주 과정 중 3주차 쯤에 대강의 가사 주제가 잡힌 후 선생님이 기타 코드로 연주된 파일을 보내주면, 거기에 각자 멜로디를 붙이는 식이었다. 인디 가수로 몇 개의 음반을 냈고 최근엔 에세이까지 출판한 작사 수업 선생님의 경우에는 산문 형식으로 쓰고 싶은 주제의 글을 쓴 다음 그 길이를 줄이고 다듬어 나가서 멜로디에 맞게 가사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작사를 한다고 했다.


수업 참가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노래로 만들고 싶은 주제로 하나의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노래 가사의 주제는 역시 나에 관한 것이었다. 내 인생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나의 이 성격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일이고 관계고 견디고 버티기만 하는 내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구구절절 이제 힘든 일 견디면서 하는 것, 안정된 관계를 위해서 참고 유지하는 거 그만하고, 이제는 다 말하고 표현해서 행복하게 살 거다! 라는 선언문을 한 장 작성했다.


다음 단계는 제일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단계였다. 선생님이 1분 정도로 된 기타 코드 녹음 파일을 보내줬다. 가사 형식으로 최대한 줄인 텍스트를 가지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붙이기 시작했다. 멜로디를 붙였다가 그 다음 번에 다시 부를 때엔 아까 부른 그 멜로디는 생각나지 않고 새로운 멜로디가 튀어나왔다. 결국 멜로디를 기록하기 위해 따로 녹음을 시작했다. 내 목소리를 내가 녹음해서, 심지어 노래 부르는 것을 녹음해서 듣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하이톤이었던가.. 찡그리며 멜로디를 이어나갔다. 멜로디를 이렇게 저렇게 붙여나가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이렇게 몇 곡 더 하다가 데뷔하는 거 아니야? 선생님이 나랑 같이 음원 내자고 하면 어떡하지? 이런 망상을 하며 노래 한 곡을 완성했고, 물론 상상했던 일들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자작곡 녹음은 상당히 떨렸다. 서점 안에 작은 마이크와 녹음기를 두고, 선생님의 기타 반주에 맞춰 두 번 정도 노래를 불렀다. 그중에 잘된 것을 선생님이 음원으로 만들어 보내주기로 했다. 남들 앞에서 자작곡을 부르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정을 액기스만 끄집어내어 내 목소리로 표현한다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훅 들었다. 사실 가사는 당시에는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대학생 때 새벽에 쓴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읽는 기분이다. 오히려 당시엔 내가 부른 노래를 듣는다는 게 너무 오그리 토그리라 선생님이 보내준 음원 mp3 파일도 며칠 동안 열어보지도 못했었고, 듣다가도 결국 중간에 꺼버렸었다. 오늘 오랜만에 그 음원을 찾아 다시 꺼내 들어보니 이제는 오글거리는 가사보다 멜로디가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의 우울증을 세상에 밝히고 글을 쓰고 있는 바, 수치심을 각오하고 당시에 쓴 가사를 공개한다.


제목 특기사항 없음. 작사 작곡 좋아나.


노래를 하나 완성하고 나니 내 감정을 소화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작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리라 늘 짐작한다. 나의 감정을 해소시키고 난 후의 해방감. 그것이 좋아서 사람들은 계속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리라.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나의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나면 우울증과 함께한 인생의 한 시기가 소화되어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덧. 혹시나 음원이 궁금하시다면 음원 공개에 따르는 제 수치심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 주신다면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수치심 맞교환). 수치심이 상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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