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폐쇄공포증
어찌어찌하던 일이 마무리되었다. 어떤 협상이든 막판은 다 엉덩이 싸움 같았다. 누가 더 오래오래 버티나 참을성 걸고 하는 내기 같았다. 지방 도시로 왕복 대여섯 시간을 삼 개월 동안 꾸준히도 왕복했다. 애인과 헤어진 다음 날 협상장 앞 커피숍에서 대기하다가 상사 앞에서 눈물을 쏟기도 하고, 누구보다 일에 마음을 많이 쓰는 상사 앞에서 일에 대한 나의 마음의 정도를 가늠해 보다 나의 마음이 더 작은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내가 안쓰러워 머리를 다시 내젓기도 했다.
그간 마음고생을 했다며 일주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모든 게 다 징그러워서 떠나야겠다 생각했는데 새로운 곳으로 멀리 떠날 에너지는 없었다. 그래서 가보았던 가까운 여행지 중 가장 마음에 들었었던 교토로 떠났다. 교토 근처 오하라라는 온천 마을의 료칸에서 하루 머문 뒤 교토로 다시 돌아와 며칠 더 머무는 일정이었다. 교토는 십 년 전쯤 동생과 함께 돌아봤었는데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조용한 옛 도시가 참 마음에 들어서 늘 가장 좋았던 여행지 중의 하나로 꼽는 곳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했던가. 십 년 내내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품고 있던 도시를 내 우울증이 회색 빛으로 칠해놓기 시작했다.
오하라에서의 여행 첫 날은 잘 지나갔다. 정갈하게 꾸며진 일본식 정원이 있는 료칸에서 별을 보며 노천욕을 하면서 오랜만의 마음의 여유를 느꼈던 것 같다. 인적이 드문 작은 온천마을의 자연은 참 여유롭고 아름다웠다. 문제는 다시 교토로 돌아왔을 때 발생했다. 혼자 한 여행이라 저렴한 가격에 혹해 호텔 1인실을 예약했는데 일본 호텔의 크기를 간과했던 것이다. 간과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그전까지 나는 폐쇄공포증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1인실 다다미 방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는데, 순간 '아, 많이 답답하다!' 싶었다. 다행히 창문이 하나 있어서 열어보았는데, 창문을 열자 바로 옆 건물의 벽돌벽이 나타났다. 답답한 마음이 한 겹 더 쌓였지만 참고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 아라시 멤버가 나왔던가.. 알아듣지 못하는 티비 속 대화들이 무슨 내용일까 상상해보며 답답함을 잊어보려고 했다. 조금 마음이 나아진 듯해서 잠을 자려고 불을 껐는데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누가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방이 탈출할 수 없이 꽉 막힌 큐브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어릴 적 봤던 큐브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불이 날 것만 같은 생각이 떠올랐고 숨이 더 막혀왔다. 창문을 열어도 바로 옆에 벽돌벽이 있을 것이고, 좁고 창문이 없는 복도가 떠올라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잠옷 바람으로 핸드폰만 들고 로비로 뛰어내려 갔다. 새벽시간이라 대학생으로 보이는 알바 한 명만 좁은 로비를 지키고 있었다. 알바생을 뒤에 두고 서성거리며 짐을 챙겨서 다른 호텔로 가야 할까 잠시 고민했던 것 같다. 일단 이 방엔 머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막막했다. 폐쇄공포증이 영어로 뭐더라? 핸드폰을 켜고 사전을 찾아봤다. 이 일본인 알바생이 이 어려운 단어를 알아들을까? 오만 생각을 하다가 쉬운 영어로 풀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폐쇄공포증을 한자로 검색했다. 핸드폰으로 한자를 들이미니 아르바이트생의 눈이 똥그래졌다. 그는 한 밤중에 호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추가 비용 더없이 더 넓은 방으로 옮겨 주었다. 십만 원 정도 더 비쌌던 것으로 기억하는 넓은 방은 한쪽 면이 통창으로 도로변을 향해있었고, 방도 훨씬 넓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의 까만 창은 까만 벽지같이 느껴져 답답했지만 그래도 선잠이라도 청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후에도 폐쇄공포증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며칠 뒤 옮겨간 더 넓은 호텔에서는 지하에 있는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딱딱한 돌로 된 타일들이 영화 여고괴담 학생처럼 불연속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서 서둘러 빠져나왔고,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지하에 있는 음식점들은 가기가 힘들었다. 특히 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지하 음식점이나 바들은 무덤으로 내려가는 길 같아 걸음을 뗄 수도 없었다.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암전 되었을 때에도 영화관의 어둠이 나를 조여 오는 것 같아서 차라리 내 눈을 질끈 감아버리곤 했다. 유럽의 성당들의 꼭대기로 향하는 좁은 계단은 엄두도 내지 못해서, 유럽 도시의 전경을 보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다.
이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교토에서 머물렀던 호텔방을 다시 찾아보았다. 1인실 다다미방의 크기는 215sqft로 평 수로 계산하면 약 6평 정도였다. 내 기억 속의 방의 크기보다 컸다. 내 기억 속의 방은 고시원보다 작은 2평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215sqft 라면 홍콩에서 처음 구했던 원베드룸 아파트의 크기가 298sqft였으니 약 2평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이었다.
폐쇄공포증의 원인을 찾아보면서 아래 영상을 발견했다. 폐쇄공포증 환자들은 평행 거리를 과소 측정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고소공포증 환자들은 수직 거리를 더 과도하게 느낀다.
https://www.youtube.com/watch?v=GMAzw_1VYQA
폐쇄공포증 또한 다른 질병들과 유사하게 유전적 요인, 어릴 적의 트라우마, 그리고 과도한 스트레스 등의 환경적 요인이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경우는 유전 및 어릴 때의 트라우마는 없었고 그 당시의 환경을 돌아보았을 때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폐쇄공포증이 오기 한 참 전, 어느 순간부터 나는 탁 트인 장소를 좋아하고, 여행도 웅장한 자연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평상시 나의 선호를 통해 역으로 정서적 불안이 어디로 표출될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최대한 좁은 장소를 피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터전을 고를 때엔 좁은 신식 오피스텔 대신 낡았더라도 넓은 공간을 선택한다. 창밖의 개방감을 주거공간 선택의 우선순위 기준으로 잡는다. 아직도 나의 불안은 내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밤 새 잠 못 들게 하여 새벽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려버리기도 한다. 나는 아마도 영원히 불안을 떨쳐내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나 자신이 불안을 조절해가며,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