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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Feb 14. 2022

해외이주와 코로나, 정신과 입성기

우울증에 환경변화가 준 영향

엄마로 향한 분노가 가득한 상태에서 또 한 번의 도망의 기회가 생겼다. 다니던 회사의 아시아 헤드쿼터가 있던 홍콩에서 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당시 나는 아시아 쪽으로 처음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의 초기 멤버로 이직해 일하고 있었는데, 외국계 특유의 일인당 ROI(Return on Investment)를 최대로 뽑아먹는 시스템 + 미국식 성과주의 + 초창기 회사의 시스템 셋업 + 회사 제품 세일즈의 활성화 에너지를 담당하는 부서 특성 + 가장 주목받는 품목 담당의 다섯 가지가 짬뽕된, 매운 짬뽕같이 숨 막히는 업무 환경에 더하여 특유의 쓸데없이 특출 난 참을성과 책임감 덕분에 삼 년간 뼈와 살, 장기까지 들들 갈려 있는 상황이었다.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고난 후 한국지사 내 다른 포지션의 제안도 있었지만,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당시의 우울감에 더하여 애인과의 이별, 결혼과 출산을 숙제처럼 강요하는 엄마와 주변 시선에 질려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기회에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외국에서 일하면 워라밸도 자연스레 맞춰질 것이라 기대했다.


인터뷰와 인수인계 등으로 홍콩과 한국을 바쁘게 오가며 2019년의 중반부가 흘러갔고, 드디어 2019년 9월 워킹비자가 나왔다. 2019년 하반기 당시 홍콩은 주요 도심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소심한사려깊은 호주 출신 할아버지 부서장이 혈혈단신 홍콩으로 일하게 오겠다는 삼십 대 동북아시아 여인의 안위에 대해 두 달간 장고하는 바람에 나는 11월에야 겨우 홍콩에 입성하게 되었다. 캐리어 두 개를 끌고 홍콩에 입성해 2주간 머물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집 계약을 마무리 지으러 가계약해 둔 아파트로 향했다. 기대와 달리 몰아치기 시작한 새로운 업무 때문에 많이 돌아보지도 못하고 처음 본 아파트를 그대로 계약해 버렸었다. 홍콩의 집들은 세 가지로 악명이 높은데, 그 좁은 크기와 높은 월세, 그리고 바퀴벌레이다. 세 가지 악명 높은 조건 중 월세를 상수로 두고 나머지 둘을 변수로 두었을 때, 크기는 좁지만 청결도가 높은 신축 아파트를 선택했다. 바퀴벌레만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불행히도 이후 나는 신축 아파트에서도 바퀴벌레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우울감을 느껴 심리상담을 받은 지 8개월쯤 후에 홍콩으로 이주한 셈이었는데, 아직 심리상담은 엄마에 대한 분노가 가득 남아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그중에 국제 이사라는 큰 환경 변화를 맞은 것이었다. Relocation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이혼으로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 혼자 해외여행도 잘 다니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외로움을 쉽게 봤다. 초반 적응기의 어려움에 대해 각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마는, 공기처럼 늘 함께 해서 소중함을 몰랐던 인간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얼마만큼의 고독감을 가져다주는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면 되지 싶지만, 새로운 환경에 놓인 나의 고충을 하나하나 설명해 가며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회사 사람 욕은 맥락을 아는 회사 사람과 하는 것이 제일 찰지고 공감이 잘되듯, 고통이란 같은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네이버 한인 카페의 정보에 의지하여, 집 계약을 하고, 인터넷을 설치하고, 통신사와 핸드폰 요금제를 선택하여 유심을 사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하고, 신용카드를 만들고, ID 카드를 만들어야 했고, 동시에 오전과 오후에는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와중에 생긴 크고 작은 고충들을 나눌 수 없는 것이 큰 고독감으로 다가왔다. 저녁은 늘 혼자 먹어야 했고, 그 와중에 시위는 예상할 수 없이 종종 발생해서 재택근무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이 정도는 순한 맛에 불과했다.


중국에서 코로나가 발생했고, 홍콩에도 확진자가 생겼다.


전면 재택근무가 결정되었다. 시위 때문에 사무실을 열 번도 나가보지 못한 채,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집은 홍콩섬의 북향으로 건너편 구룡반도와 홍콩섬 사이의 쬐깐한 바다가 보이는 나름 sea view의 아파트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벽 사이(홍콩은 습도가 높아 벽지를 붙이지 않아, 신축 아파트 벽들은 대체로 새하얀 페인트칠만 되어있다)의 좁은 공간에서 창문 밖 똑같이 보이는 쬐만한 바다를 바라보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자니, 새 하얀 벽들이 나를 향해 무너질 것만 같았고, 교토에서 느꼈던 폐쇄공포증이 되살아났다. 기대와 달리 업무강도도 대단해서 업무시간과 쉬는 시간은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고, 사스를 겪은 나라에서 창궐한 코로나는 엄청난 사회적 공포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재택근무를 한 지 2주가 되던 날, 이대로 더 이상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전한 한국으로(당시 한국엔 코로나가 퍼지기 전이었다) 잠시 돌아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장 주말 비행기를 끊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름 sea view 였던 창 밖 풍경. 지금보면 환하고 밝은데, 우울증은 이 풍경을 회색 빛으로 만들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니 살 것 같았다. 혼자 좁은 공간에 있다가 부모님 집에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고독감이 금방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국에도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 주 정도만 머물 계획으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비행기를 타는 것이 위험해 당분간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홍콩에 이어 한국에서도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여벌의 옷도 거의 가지고 오지 않아서 급하게 산 주황색 체크 남방을 늘 똑같이 입고, 답답한 마음을 잠재우려 아파트 단지와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기억이 난다. 3월, 봄은 오고 있어서 햇살이 환해졌고 꽃들은 새로 피고 있었으며, 응급처방같은 산책을 하며 한평생 관심도 없었던 아파트 단지 화단에 심어진 꽃들과 나무들을 살피고 만지고 다녔다. 밤이면 하늘이 깜깜해 마음도 같이 답답해져, 아파트 앞동의 라일락 나무 옆 가로등 빛을 바라보며 라일락 향을 폐 속 가득 집어넣곤 했다. 그러면 눈과 코가 조금 덜 답답해졌다.


아직도 볼 때 마다 마음이 욱신거리는 가로등 밑 라일락나무.


3,4월은 회사에서 앞으로 10년 치의 business forecasting을 하는 달이었다. 당시에도 그랬고, 회사를 그만둔 지금 돌이켜봐도 십 년 치를 예상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싶은데, 9월의 내년도 budgeting과 함께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십여 개 국가의 가격관리를 하고 있던 우리 팀(이라고 해봤자 상사와 나)의 업무강도도 더욱 심해졌다. 모든 국가와 모든 제품의 10년 치 가격 예측의 근거와 정확도를 validation 해야 했고, 업무 강도와 더불어 완벽주의 상사의 강박은 나의 상태를 더욱 안 좋게 만들었다. 나는 책상 앉아 전화회의를 하거나 엑셀과 씨름을 하고, 한 시간 벌어진 시차와 함께 애매해진 식사시간 때문에 밥도 대강 때우곤 했고, 저녁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일이 끝나면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산책하는 빈도도 줄어들었고, 나는 책상 앞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눈물이 잦아졌고, 잠도 늘었다. 새로운 업무라 늘 자신이 없었고, 백 퍼센트 영어로 일하는 환경은 더 자신감을 없게 만들었고, 없는 자신감에 자꾸 나 자신을 다그쳤다. 주말이 와도 남은 일을 해야 했다. 나의 주 7일은 거의 다르지 않게 책상 앞 또는 침대 위였다. 점점 더 무기력이 심해졌고, 마음은 더욱 괴로워져서 다시 상담치료를 시작한 일 년 전 상태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상담 선생님은 결국 나에게 약물 치료를 권유했다.


상담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다시 악화된 상태에 나는 좌절했다. 나는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나의 상태가 약물치료는 받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우울증 정도로 생각하며 상담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상담치료를 받으며 초반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 홍콩으로 이주하기 전에는 상당히 나아져 있었다. 그러나 상담치료의 중반부에 환경적 변화가 크게 발생하자 우울증이 다시 악화된 것이다.


생애 처음 정신과에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느릿느릿 나의 상태를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첫 상담치료 때와 달리 울지도 않았고, 역시 자살사고는 없었지만, 삶이고 죽음이고, 그보다 그냥 누워 있는 게 그나마 제일 낫다고 얘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약간의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며 우울증 검사를 권했다. Full battery test라고 부르는 7가지의 심리검사가 포함된 종합심리평가와 추가로 몇 가지의 심리검사를 더하여 총 13가지의 검사를 받았다. Full battery test는 검사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550개의 문항의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MPI-2)와 문장 완성검사 등은 임상심리사와의 1:1 검사 전에 숙제로 해가서 제출하게 된다. 임상심리사와의 1:1 검사 역시 검사 시간이 약 네 시간 정도 소요되어 가볍게 할 수 있는 검사는 아니었다.


일주일 뒤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 생각보다 심각한 중등도의 우울증이라고 알려주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깐 저용량의 약을 먹고 나아지면 되겠거니 했었는데, 생각보다 나는 많이 힘든 상태였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선 애써 거부하던 사실에 확인사살을 받은 느낌 었다. 점점 용량을 늘려나갈 것이라는 약물치료 계획을 들었고, 심리 상담과 병행하기 위해 검사 결과지를 복사해 집에 가져왔다. 집에 와서 검사결과지를 읽어보는데 나 자신이 이렇게 빤히 들여다 보이는구나 싶고, 검사 결과의 문장들 하나하나 마음에 콕콕 박혀 눈물이 왈칵 났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검사 결과지 복사본에서 일부를 발췌해 본다.


Behavioral Observation

환자는 깔끔한 옷차림에 흰 얼굴, 마스크를 착용하였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한 30대 초반 여성으로 혼자 내원하였다. 검사 시 환자는 차분하게 문제풀이를 이어나갔으며 수행의 질 또한 양호하였다. 다만, 정서가 유발되는 과제에서는 기분이 대체로 가라앉으며 말끝이 흐려지거나 말이 늘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환자는 모든 과제에 성의를 가지고 열심히 임하면서도 종종 헛웃음을 짓는 편이었다. 면담 시 환자는 최근 들어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적어진 것으로 보고하였으며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을 관리하는데 심신이 소진된 것으로 보였다. 이에 환자는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으나 직업적인 장면 및 검사상황에서의 어려움은 두드러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Summary and Recommendation

- 환자는 부적 정서를 원활하게 표현하고 해소하기보다 상황을 이성적으로 조망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임. 또한, 환자는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심리적 자원에 비하여 이상적인 포부 수준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이에 대한 괴리감을 경험할 가능성도 있겠음.

- 환자는 우울감과 분노감을 보이면서도 현실적인 틀 내에서 순응적으로 적응하기 위하여 애쓰는 상태로 나타남. 환자는 평소 정서적인 민감도가 높고 강렬한 정서를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는 미흡했던 것으로 여겨짐.

- 환자는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처리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들이는 반면,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는 데는 익숙지 않은 것으로 보임. 환자는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데 급급한 것으로 보이며, 이에 내면의 부적정 서가 왜곡되거나 해소되지 못한 채로 누적될 가능성이 있겠음.

- 환자는 이상적으로 여기는 가정 및 대인관계 형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들이는데 심신이 소진된 것으로 여겨짐. 현재 환자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지지자원이 다소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며, 제한적인 생활이 반복되면서 소외감 및 고립감이 심화될 우려가 있겠음.

- 환자는 현재 평온하고 여유로운 일상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임. 이에 환자는 휴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바꾸거나 변화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보임.

- 환자는 현재의 모습에 대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거나 막연한 긍정감을 가지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여겨져 정서적 불편감이 지속될 수 있겠음. 현자에게는 현재의 어려움을 정서적으로 수용하는 과정 및 치료적 개입이 도움이 될 수 있겠음.


그렇게 약물치료가 시작되었다.



덧.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정신과 방문과 심리검사가 예정된 분들은 심리검사 내용을 미리 검색해 보지 않는 것을 권한다. 검사 당시의 즉각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검사가 다수 있는데, 검색하다 보면 검사 내용이 스포일링 되어 제대로 된 검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는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을 망치고 말지만, 심리검사의 스포일링은 검사 결과 및 치료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조차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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