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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Mar 03. 2022

아파트 화단의 마지막 잎새

생명을 이어가기

페트병을 잘라 꽃병을 만들었던 건 이사 온 집에 친구가 카모마일 꽃을 사들고 놀러 온 날이었다. 급하게 이사한 터라 집에 꽃병이 있을 리 만무했고, 통장도 텅 비어있는 상태라 전자레인지도, 밥솥도 없는 판에 꽃병을 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다 먹은 평창수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페트병 꽃병을 만들었다. 페트병만 두기 좀 심심해서 금색 리본 하나를 둘러주니 나름 보기 괜찮았다. 그렇게 평창수 페트병은 우리 집 첫 꽃병이 되었다.


페트꽃병도 나름 괜찮쥬?


꽃 선물은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꽃이 시들어갈 때마다 그 짧은 생명에 마음이 아파온다. 유통되는 꽃들의 삶이란 그저 인간의 유희를 위해 길러져서 싹둑싹둑 줄기가 잘라지고, 짧으면 사나흘 길어봤자 몇 주의 시간 동안 좁은 꽃병에 복닥복닥 꽂혀서 겨드랑이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옆 꽃과 먹이(물) 배틀을 뜨다가 다 함께 시들어 가는 것일 텐데, 인간의 삶에 빗대어 보자면 영화 패황별희에서 어릴 때부터 스승에게 맞아가며 경극을 배우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젊은 나이에 스러져버리는 중국 아이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쓰려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꽃들이 주는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꽃집을 지날 때면 한 두 종류 정도의 꽃들을 세네 줄기 정도 사서 평창수 페트병 꽃병에 꽃아 두곤 했다. 가장 최근에 꽃을 샀던 건 대학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오던 날, 바지락 술찜을 해 먹겠다며 바지락을 사러 마트에 가는 길이었다. 새로 연 듯한 꽃집을 지나다 걸음을 멈추었다. 한껏 고데기를 한 갈색 머리에 어깨에 메는 베이지색 레이스 앞치마를 입은 꽃집 주인이 아닌, 까만 단발머리를 질끈 묵고 거북목을 하고 노트북으로 회계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한 꽃집 주인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 바라보자니 선뜻 꽃집 문을 열 마음이 생겼다. 마음에 드는 분홍색과 하얀색 꽃을 각각 두 가닥씩 사들고 집에 와 꽃아 두었다. 이름이 어려워 잊어버린 분홍색 꽃은 며칠 만에 꽃 머리가 전체가 송 떨어져 버려 마음이 살짝 아려왔다. 그런데 이 하얀색 마아가렛(생명력이 기니 마가렛이 아닌 마아가렛이라고 부르겠다)은 꽃망울도 매우 많았을뿐더러 정말 오랫동안 생생했다. 쑥갓과 같은 이파리가 덥수룩해서 정리를 많이 해줘야 했는데, 그렇게 많은 이파리를 잃었음에도 생명력이 아주 길었다.


물을 갈아주는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분홍꽃이 살아있을 땐 꽃병의 물을 매일 갈아주었는데 그 간격이 점점 이틀, 삼일로 늘어나더니, '꽃이 눈에 띄었을 때 어쩌다'로 랜덤 해졌다. 결국 마아가렛 한 줄기만 남았을 무렵엔 물 갈아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마아가렛의 존재를 다시 인지한 것은 꽃을 사 온 지 한 달 반여가 지난 며칠 전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시원한 물로 갈아주려 페트꽃병에 있던 누레진 물을 버렸는데, 맙소사, 마아가렛의 줄기에 뿌리가 나있었다. 양파도 아니고 물에서 뿌리를 내리다니.. 마아가렛 너 뭐야.. 마아가렛의 생명력을 보니 그대로 물에 두지 말고 흙에 심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내가 볼 수 있는 곳으로.


마아가렛, 너의 생명력 칭찬해~


이사 온 지 이제 세 달 정도 된 우리 집은 2층이다. 낮은 층에 살아 본 것은 처음인데, 저층에 대한 괜한 오해와 달리 창 밖 풍경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 재미있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 다니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나무들이 바로 앞에 보여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다. 거실 창 밖을 내다보며 마아가렛의 새 삶의 둥지가 될 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큰 나무 옆 햇살이 잘 드는 공간이 보였다. 마아가렛이 잘 정착하여 후손을 만들 것을 생각하여서도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새 둥지를 점지한 후, 페트꽃병에 담긴 마아가렛과 숟가락 하나를 들고 아파트 화단으로 내려갔다. 숟가락으로 흙을 파서 마아가렛을 새 보금자리로 옮겨주었다. 마아가렛이 뿌리를 넓히고 씨를 뿌려서 하얀색 마아가렛 군락이 아파트 화단에 생길 상상을 하니 마음이 설렜다. 괜히 창 밖을 더 내다보고, 좀 돌아가더라도 마아가렛을 보러 아파트 뒷 화단 쪽으로 걸어 다녔다.


여기다, 너의 새 보금자리!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삽이 없으면 숟가락으로!


어젯밤 넥슨 김정주 대표가 하와이에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고 하니 사인은 알 듯했다. 마음이 나아지려고 햇살도 좋고 바다도 아름다운 하와이로 간 것일 텐데, 하와이의 좋은 환경도 도움을 주지 못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슬퍼졌다.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강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면 경외심이 든다. 마아가렛, 흙에서도 꼭 살아남아서 나에게도 힘을 줘.


마아가렛이 잘 살아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나도 올봄을 설레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무지개 보호막이 지켜주는거야, 뭐야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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