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아나 Jan 22. 2022

역마 다짐

나의 이사 이야기

 2년 동안 두 번의 국제이사를 포함한 총 네 번의 이사를 했다. 네 번째 이사가 이렇게 빨리 닥칠지는 몰랐다. 이 주 전까지만 해도 이 주 뒤의 나는 제주 사려니숲 근처의 에어비엔비에서 따끈한 바닥에 배 깔고 친구와 노지 귤이나 까먹으며 꺄르르 수다나 떨고 있을 줄 알았었는데, 끝나지 않은 2021년도 인생의 짓궂은 장난에 휘말려 어찌어찌 혼란의 며칠을 겪은 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끝자락으로 올해의 세 번째 이사를 급하게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짐을 싸서 새로 이사 온 곳은 몇 백 미터 걸어가면 다른 도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 신기한, 동네 산책을 할 때마다 이게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스위스에 살면서 독일로 장 보러 가는 그런 느낌인 걸까 생각하게 되는, 정말 도시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곳이다. 개발된 지 오래지 않은 지역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계획적이다. 도로도 일직선으로 가로세로 바둑판 모양으로 깔려있고 상가마다 달린 간판들도 다 똑같은 크기와 글씨체에 색깔과 내용만 다르다. 상가에 들어와 있는 것도 프랜차이즈 아니면 어딘가에서 유명한 맛집의 분점뿐이다. 첫날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예측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신도시의 모습에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게다가 급한 이사 때문에 침대를 아직 사지 못하여 며칠 땅바닥에서 허리가 베기며 자면서, '나에게 좌식 생활하던 한민족의 피는 다 사라졌구나' 생각하던 와중에 나와 같이 일련의 악재 속을 고군분투하며 헤엄쳐 나가고 있는 친구가 비어있는 본인의 집에서 며칠간 지내라는 달콤한 제안을 해주었다. 그 친구 또한 나와 같이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살아야 하는 맥시멀리스트인 것을 알기에 나의 마음은 금방 흔들려버렸고, 새로 이사 간 집의 청소와 정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들의 구비를 완료한 후에 커다란 장바구니에 하지 못한 빨랫감과 샴푸와 로션, 노트북 따위를 대강 담고 친구의 집이 있는 망원동으로 향했다.


마, 이게 망원동 힙이다!

 망원동에 도착했다고 연락하자 친구는 마치 에어비앤비 호스트처럼 집안의 생필품의 위치와 근처의 혼밥 하기 좋은 맛집들과 빵집, 와인샵까지 리스트를  보내주었다.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집에 들어오자 처음  시간의 낯섦과 탐방 이후에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왔다. 며칠간 허리가 배기게 잤던 나에게 적당한 강도의 매트리스와 커다란 침대 쿠션은 너무나 반가운 물건들이었고, 침대에서 쉬다가 조금 춥다 싶어서 눈을 돌리니 바로 옆엔 전기난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침대 바로 앞엔 커다란 티비가 있어서 오랜만에 핸드폰의 작은 화면을 벗어나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바로 옆에 책장에는 취향저격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밀린 빨랫감을 세탁기에 돌려두고 동네 탐방에 나섰다.  걸음 지나지 않아 금세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개성 가득한 작은 가게들과 식당들이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게 만들었고, 복닥 복닥  시장 안의 과일집, 야채 , 튀김집, 해산물 집의 신선도와 가격을 비교해보기 시작했고, 출입문을   없는 칼국수집의 입구를 찾아보려 가게 주위를 서성거렸다. 예측할  없는 새로운 것을 만나는 기쁨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망원동에서 제일 맛있었던 황금룡 능이버섯짬뽕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고 무언갈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이 코로나 시대에 지난 이 년간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질병이 잘 통제되고 있는 외국에 살면서 여행하듯 살 수 있어서 답답함이 덜했다. 어딜 가든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모두 새로웠다. 그러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몇 주간 느꼈던 안락함도 잠시, 30여 년간 살아온 동네에 다시 싫증이 나기 시작했었다. 다시 새로운 걸 찾아보고 탈출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 코로나 덕에 다시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을 시작했고, 비록 현재 머무는 곳에는 정을 붙이기 어렵겠지만, 내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체력이 닿는 안에서 여행하듯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며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창작할 수 있게. 여행이 뭐 거창한 건가. 다들 현생이 지겨워서 떠나는 것이 여행 아니던가. 현생이 여행 같다면 인생이 지겨울 일도 없겠지. 아무래도 앞으로의 이사 횟수는 더 잦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당근에 판 티파니 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