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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Apr 25. 2022

홍콩에서 정신과 다녀보기

해외에서 우울증 치료 이어가는 법

한국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한 후, 홍콩으로 돌아가기 전 가장 걱정한 것은 우울증 치료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문제였다. 약물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후에 출국을 하게 되었는데, 우울증의 경우 증세에 따라 약물의 용량을 계속 조절하여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정신건강의학과를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우울증의 증세라는 것이 감정적인 내용을 담당 의사에게 많이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네이티브가 아닌 나로서는 영어로 소통을 하였을 때 과연 내 상태를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있었고, 두 번째로는 진료비와 약값에 대한 걱정이었다.


제약회사에서 약값의 전략을 검토하는 일을 했었던 나는 홍콩의 살인적인 의료비를 이미  알고 있었다. 보통 같은 약을 기준으로 가격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와 홍콩의 가격차이는 평균적으로  10배가 난다. 물론 홍콩이  비싸다. 우리나라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홍콩은 정부에서 커버해주는 의료비는 매우 일부이기 때문에 직장인의 경우 거의 대부분 회사에서 가입해주는 직장보험을 통해 의료비를 커버한다. 이용이 제한적인 public hostital(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 경우 한화로 만원 정도로 어떤 진료도  받을  있지만, 대기가 무진장 길고 국가보험으로 커버해주는 약은 매우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 사립 종합병원이나 로컬 클리닉(우리나라의 의원급) 경우에는 public hospital 비해 진료비와 약값이 매우 비싸며, 우리나라처럼 의약분업이 이루어져 있지 않아 병원에서도 약을 파는 경우가 있고, 이경우 병원에서 마음대로 마진을 붙일  있기 때문에 약값은 정말로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pulbic hospital에서 아기를 낳는 경우 1 2 과정으로 한화로 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나온다고 알고 있으며, 사립병원의 경우 2,000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런 걱정 때문에 우선 한국에서 최대한 많이 처방받을 수 있는 3개월치의 약을 받아 들고 홍콩으로 향했다. 그리고 3개월이 흘러 약을 다 먹어갈 즈음 괜찮은 정신과 선생님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병원이나 의사를 검색할 때엔 주로 포털에서 검색을 해보거나, 병원 후기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들을 이용할 수 있다. 홍콩에서도 마찬가지로 구글과 구글 지도에서 psychaitry clinic을 검색하여 평점이 높은 곳들을 찾아보았다. 홍콩섬에는 외국인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영어로 쓰인 후기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중에서 센트럴에 위치한 친절하다는 한 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지정하여 whatsapp을 통해 예약했다(홍콩은 whatsapp을 카톡처럼 사용한다).


나의 선생님은 Dr. Cheung Wai Him


내가 다녔던 우리나라로 치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인 'Dimensions Centre'는 심리상담가와 정신과 의사가 모두 있는 곳이었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의사만이 약을 처방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가서 첫 번째로 가장 놀랐던 것은 대기실에서 진료실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의 경험으로 진료 접수를 받은 간호사 선생님이 'OOO환자분, 진료실로 들어가세요.'라는 말을 듣고 환자가 직접 진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었는데, 홍콩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마중 나왔다.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인자한 인상의 홍콩의 중년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로 나타나더니, "Miss Park(만면의 미소), here comes with me" 라며 나를 모시고(?) 진료실로 함께 들어갔다. 미국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소파에 누워서 쿠션 하나를 끌어안고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은 의사 선생님에게 주절주절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상상했었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의사 선생님의 책상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구조였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보통 우울증의 정신과 초진의 경우, 의사 선생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험으론 약 20분 정도의 상담을 하고 나왔었다. 그리고 재진부터는 진료시간이 길면 10분, 짧으면 3분 안쪽으로까지 줄어들어 간략한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 약의 용량 조절이 이루어졌다. 반면 홍콩에서 내가 다녔던 정신과는 초진은 1시간, 재진은 30분이라는 기준을 홈페이지에 적어놓았고, 그대로 약속한 1시간과 30분을 꽉꽉 채워 진료를 해주었다. 1시간의 기간 동안 1:1 영어회화시간과 같은 대화를 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제스처를 표현해 주었고, 내가 먹는 약에 대한 설명과 약의 부작용이 있을 경우 어떤 약들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영어도 완벽히 네이티브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잘하는 편이셨다. 만약 영어로 소통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영어를 잘하는 나의 세세한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가서 통역사로 삼으며 충분히 진료를 받을 수 있을 법한 분위기였다.


나는 렉사프로(escitalopram)라는 약물로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약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많이 나누었다. 나는 약을 복용하는 중에 몸무게가 6개월 만에 약 7kg 정도 늘었고, 멍이 자주 드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이런 부작용을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면 보통 같은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내에서의 약물 전환을 고려하는데, 홍콩의 정신과 선생님의 경우 다른 계열의 약물까지 다 펼쳐놓고 다양한 치료 옵션을 제시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다양한 옵션에 놀라 치료제 전환에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여 약물 용량을 조금 줄여보는 옵션을 제시하였다. 의사 선생님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내 의견을 존중하여 받아들여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의 가장 놀라운 경험은 바로 진료비였다. 진료를 마치며 '약을 병원에서 받을래, 약국에서 받을래?'라고 묻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편한 방법으로 병원에서 약을 받는다고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로컬 의원에서는 약값에 마진을 상당히 붙이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초진 진료비가 2,000 HKD 였고, 나머지 한 달 치 약값을 합하여 총 3,440 HKD 가 청구되었다. 한화로 환산해보면 약 52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한 시간 진료에 50만 원이 넘다니... 과연 진료실까지 환자를 데리러 나올만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회사 보험에서 커버를 해주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회사에서 이용하는 보험사에 처방전과 영수증을 첨부하였더니, 나의 보험에서는 진료비의 경우 1회 당 금액이 약 1,000 HKD 정도로 제한이 있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보험대상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약을 어디서 받아갈지 물었을 때, 약국이라고 이야기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첫 정신과 방문에서 생돈 35만 원 정도를 out of pocket, 내 주머니에서 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진비와 약값 합하면 약 3만 5천 원 정도 나오는 것으로 대략 계산이 되니 정말 딱 10배 차이다. 다행히 재진부터는 약국에서 약을 받아 약 1,000 HKD 정도의 약값은 전부 회사 보험으로 처리했고, 재진 진찰비는 1,200 HKD 수준이라 회사 보험으로 처리하고 나면, 한국과 환자부담금은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회사 보험이 좋은 편이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직장보험이 아니었다면 홍콩에서의 우울증 치료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홍콩의 정신과 처방전과 약국 영수증


그리고 홍콩은 처방전을 들고 가도 약이 약국에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홍콩은 Watsons나 Mannings와 같이 우리나라의 올리브영 같은 드럭스토어에 약국(pharmacy)이 함께 있는데, 정기로 타가는 환자들의 약 정도만 구비를 해놓고 우리나라처럼 약국 위 병원에서 자주 처방하는 약을 갖다 놓는 개념은 강하지 않아 보였다. 대신 약값과 진료비가 워낙 비싸다 보니, 홍콩 사람들은 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고 드럭스토어에 딸리지 않은 단골 로컬 약국에 가서 어찌저찌 숭구리당당 얘기해서 정가보다 싼 값에 약을 받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정신과 외에는 다리에 멍이 크게 들었을 때 집 근처의 내과에 간 적과 미간에 보톡스를 맞으러 간 적이 한 번씩 있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처럼 영어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상태나 원인에 대한 설명은 더 친절하게 잘해준다는 것이 나의 전반적인 느낌이었다. 어느 나라에서 살든,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삶의 질을 많이 좌우한다. 같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상황을 홍콩에서 평균적인 직장보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와 우리나라에서의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로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수가와 약가가 워낙 낮고 비교적 쉽게 의료전문가들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가 가격과 접근성에 있어서 월등히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반비례해서 정성과 친절도에 있어서는 홍콩이 훨씬 앞선다는 생각이다. 다 시간과 돈이 있는 곳에서 친절이 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해외에서 생활해 나간다는 것, 특히 코로나의 시대에 해외에서 홀로 거주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상당한 일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제한적이고, 모든 절차들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매 순간 게임 속 퀘스트를 깨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만큼 마음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질 확률도 높아진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환경으로 인해 마음이 아파도 발걸음을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고 나면 두려움의 벽이 살짝 낮아지는 느낌이 든다. 정신과를 찾고 진료를 받고, 약을 타는 과정까지 간접경험을 하였으니, 타지에 살며 마음이 아파올 때 용기를 내서 치료를 받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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