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암물질을 온몸으로 받는다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발암물질을 온몸으로 받는다

by 경첩의사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발암물질을 온몸으로 받는다




0.

소위 중학교에서 한 손가락에 드는 학생들만 모아놓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런 집단에서 중간, 기말고사 시험 기간에는 소위 박 터지는 싸움이 시작된다. 결국 내신 점수를 남들 보다 더 높게 받기 위한 싸움이기에 친구를 타고 올라서야 내가 더 높은 곳, 더 좋은 내신을 받는 것이다.


결국 시험기간에 한 일주일, 길게는 이주 가까이 밤샘을 하면서 피 터지는 결투가 이루어진다. 너무 거창하게 써놓았지만 정말 초능력을 발휘에 일주일 넘게 밤새는 친구들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 아니 안타깝게 나는 그렇게 밤을 새울 수 있는 체력적 뒷받침이 안되었는지, 아니면 의지가 부족해서였는지 밤 12시가 넘어가면 서서히 졸린 눈을 비볐고 새벽 1,2시 즈음 살짝 책상에 머리를 박고 5분만 잔다는 것이 눈을 떠보면 아침 6,7시다. 깜짝 놀라서 부랴부랴 서두르고 애꿎은 내 머리를 스스로 한대 쥐어박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과 심호흡 그리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나는 평상시 수업 시간에 열심히 잘 들었기에 평상시 실력만 충분히 발휘하면 시험을 잘 볼 것이다!'



밤새우기, 특히 새벽이면 졸음에 맥을 못 추던 10대를 보냈던 내가 어언 30년 가까지 지난 지금 피가 뿜어 나오면, 혈압 떨어지는 상태가 안 좋아지는 환자 옆에서 서면 시곗바늘이 2 이건 3 이건 에너지가 불쑥 더 솟아난다.


참 아이러니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내신점수가 달린 시험 전날에도 꾸벅 잠병에 걸렸던 내가 맞나 싶다.


sticker sticker




1.

발암물질은 말 그대로 암 발생에 직접적 원인이 되는 물질, 세균, 바이러스 등을 말한다. 희귀하고 보기 힘든 석면, 카드늄, 비소 등이 대표적이나 쉽게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연히 ' 오늘도 못 끊는 발암물질 식품 4가지' 기사를 보았다. 술, 육가공품, 담배, 민물고기 회에 간흡충에 관한 기사이다. 기사를 보면서 순간 움찔하였다. 어제도 집에서 햄을 이용해 요리를 하였고, 며칠 전에 거하게 알코올과 함께 회식을 하였다. 다행히 나는 흡연자가 아니라 이중 하나는 빼놨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미 머릿속에서 알면서도 나는 발암물질을 자주 만나고 맞이한다.

국제 암연구소에서는 발암물질을 분리하여 말한다. 1군은 발암성이 충분히 입증된 것을 말하고, 2A 군은 발암성이 있다는 개연성이 있는 물질, 2B 군은 발암성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2.

나는 알면서도 또 다른 발암물질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어제도 하였고, 며칠 쉬고 다시 또 맞이한다. 내 선택에 의해서 반복되게 만난다. 바로 야간노동이다.


나는 어젯밤 2급 발암물질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날이다.


국제 암연구소에서는 야간노동을 납이나 자외선과 같은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였다. 여러 연구에서 야간 교대 근무를 장기간 시행한 사람에게서 암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생체시계 리듬이 깨지면서 일주기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변형을 가져온다고 알려져 있다. 생체리듬 조절 유전자 중 'HPer2', 'p53' 등이 암 발병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젯밤, 본격 발암물질을 맞이하기 전에 크게 심호흡하였다.

'오늘은 어떻게 무사히 넘길까?'

'오늘도 카페인, 커피 힘을 빌려서 넘길 것인지? 아니면 오늘은 환자들이 무사하기를 기도의 힘으로 넘길지를 고민하였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맡은 이 밤을 환자들이 아프지 말고, 다치지도 말고 무탈하게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순간에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닥치는 환자를 해결하고 살리는 것이 임무이다.




나의 바람은 무참히도 깨지는 그날 밤이다. 여기저기 피가 나고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이 몰려든다. 시계의 작은 바늘도 12를 훌쩍 넘겨 2,3 언저리를 가고 있다. 방금 수술한 환자 상태를 보며, 안도의 한숨과 앞으로 넘어갈 여러 고비들을 생각한다. 아직 갈 길도 많고 여기저기 부러지고 피가는 것을 해결해야 할 생각에 한숨부터 나온다. 그래도 수술 들어가기 직전보다 혈압도 오르고 혈액 검사 등이 좋아져서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아주 순간 눈을 감으려도 등을 당직실 침대에 붙이려는 순간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저쪽 중환자실에서 나를 찾는다고 한다.


무작정 뛰어갔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이미 심장이 멎은 환자를 가운데 두고 심장마사지하고 있고 혈관에 주사를 머리맡에 관을 넣는 의사.



가장 중요한 기관삽관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없고 단 일분일초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향해야할 곳은 저곳이다. 뛰어 날아갔다.


관을 꽂아 넣는다.

환자에게 산소를 넣어준다.

내가 방금 꽂아 넣은 관을 통해서 기계의 산소가 들어간다.


그날 밤. 나는 또 온몸으로 발암물질을 받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