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에 떠 있다. 어젯밤, 새벽 그렇게 잠도 못 자고 일하였으니 대낮에 퇴근을 하고 쉬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쓰러지기 전에 퇴근해야 한다. 나도 사람이기에 내 몸이 온전해야 환자도 치료하고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말이 당직하고 다음 날 조기 퇴근한다지만 실제로 당직날, 그리고 다음날까지 이틀 연속으로 내 개인적인 것은 아무것도 못하고 날려버린다. 즉 병원과 환자들에 몸이 매인 상태이기에 병원을 떠나 대낮에 집으로 향하지만 무거운 몸과 지친 마음으로 멍한 정신이 하루 종일 가시지 않는다.
오늘따라 내 몸과 마음이 더 지치고 힘들다.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몇 시간 전, 지난 새벽 1시에 사망선언, 그리고 사망진단서 작성을 하였다.
터벅터벅 집으로 걸아가는 길이 절대로 흥겹지 않고 무겁고 슬프다.
머릿속으로 다시 리뷰를 해본다. 그 환자가 처음 온 순간부터 이것저것 처치, 수술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과정들을 그려본다. 역시나 아주 조금씩 후회되고 아쉬운 것들 투성이다. 환자의 신체적 나이, 체력 상태, 기존 가지고 있는 과거력 등을 감안하더라고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은 있었다. 그 희망이 나만의 욕심, 과욕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마음속에는 희망이라는 글자가 계속 맴돈다.
그러다가 내 머릿속에는 다시 환자가 수년 전 암수술하고 최근까지 항암치료하고 어제 찍은 씨티 검사상에서 여기저기 전이가 의심되는 덩어리들이 다시 생각났다. 내가 종양내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여러 전이 상태로 보아 추측 건데 수개월 가량 남은 여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여생이 수개월로 예상되는 말 그대로 말기암환자, 그리고 다친 정도는 말 그대로 중증외상환자. 모든 조건들이 최악이다.
최악의 조건들이 모두 모인 상태에서 희망이라는 글자를 바라보았다는 내 자신이 과욕이었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잡생각들이 계속 맴돈다.
터벅터벅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하면서 머릿속에 무언가 적어본다.
다음에 이 같은 환자, 아주 똑같은 상황, 나이, 손상정도가 똑같지 않겠지만 어떤 처치를 하고, 어떤 약물, 수액이나 혈액도 다시 머리에 적어본다. 이렇게 해야지 떠나간 환자, 내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환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가 되며 이는 곧 또다시 언제 내 앞으로 올 환자에 대한 준비가 된다.
2.
자다가 갑자기 깨어났다.
악몽을 꾸었는지 갑자기 어젯밤, 새벽 1시에 작성한 사망진단서가 잘 썼는지 생각이 들었다.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 그리고 그 원인을 순서대로 적는 칸들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대부분은 다발성 장기부전, 대량출혈 등으로 적었으나 어제 환자는 어떻게 잘 작성했는지 순간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미 사망진단서는 십여 장이 발부되어 내 서명이 찍혀 나갔을 것이다. 그 사망진단서는 장례식장, 동사무소, 교통사고 처리 등에 나누어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한 인생의 마지막을 한 장의 서류로 마무리하는 것이 사망진단서이다.
속이 쓰렸다. 사실 어제 늦은 오후에 혼술을 하였다.
괴로운 마음에 잠드는 것이 힘들어 지나가다 봐 둔 새로 생긴 해장국집에 혼자 들어갔다.
'국밥 하나에 소주 하나 주세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아직 해가 떠있는 밖을 쳐다보고 다시 나에게 물었다.
'소주요?'
'네~ 참이슬로 주세요!'
소주 한 병에 7잔 반이 나온다고 한다. 스스로 자작하는 소주는 역시나 7잔 반까지는 무리고
딱 5잔에서 끝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이 스르르 들었다.
3.
나도 사람이기에 슬픔을 꽉 눌러 적는 사망진단서가 아닌 환자를 건강히 퇴원시키는 서류에 서명하고 싶다. 아니면 건강과 더 효율적인 재활치료를 위해 전원의뢰서를 환자에게 쥐어주고 싶다.
숙명처럼 한 인생을 마감하는 선언, 말을 계속해야 한다. 언제까지 할지, 그리고 그것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어느 드라마, 영화처럼 마지막에 가족을 모두 모인 상태에 모두를 감동시키고, 남은 가족 모두에게 후회가 안되게 말하고 싶지만 너무 어렵다.
실제 언제나 무언가 도망가는 듯 말하면서 마지막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서류, 사망진단서에 직접사인 그리고 사망시간을 적기에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