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뱃속에서 피가 나는 것은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다. 이미 환자 배안에서 침대, 수술실 바닥까지 피로 흥건하다. 내 수술복과 신발까지 붉은색으로 범벅이 되었다. 복부 대동맥의 가장 가까운 부위 큰 동맥과 그 옆에 정맥이 터져 피가 솟구쳤다. 일 년이면 한번 있을까 하는 환자이다. 그런 소위 대박 환자가 내가 근무하는 날 와서 마음이 좋지는 않다. 내 몸속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동시에 주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의 모든 의료진, 그리고 구할 수 있는 피를 모조리 쏟아부어도 불가항력적이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였다는 허무함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런 치료조차, 수술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중증외상환자들보다 이 환자는 그리고 이 환자의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였다.
나와 함께 수술을 들어온 학생은 어떨까?
멋모르고 따라와 피를 실컷 보고 갔다. 그 학생에게는 평생 볼 피를 그날 다 보고도 넘칠 정도였을 것이다. 의과대학 실습기간 동안 여러 과목들의 실습 과정이 있다. 그 필수 과정 중 외과도 있으나 딱히 정해진 외상외과 과정은 없다. 그렇기에 외과 실습 과정 중 외상외과 응급수술이 있는 경우 당일 당직 학생을 수술에 함께 참여할 기회를 준다. 물론 요즘 학생들 중에서 어느 학생이 이렇게 힘들고 피가 쏟아지는 외상외과에 관심 있는 학생이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날 나와 함께 한 학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수술에 참여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이며 그날 수술에 학생 참관과 동시에 수술 어시스트를 하는 기회를 줌과 동시에 수술에 두 손을 더 참가시켜 어떻게든 환자에 도움 되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학생! 오늘 당직이지? 빨리 응급실로 오세요! 중증외상 환자 복부 수술 곧 들어갑니다! "
내 전화를 받고 학생은 잽싸게 응급실부터 수술실까지 나와 그 환자의 최후를 함께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 Table Death "
[ 쉽게 말해 수술실 침대에서 수술 중 사망한 것을 말한다. 즉 살 방법을 찾고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 해보려는 집도의가 환자에 칼을 대고 헤집고 결찰과 봉합 등 모두 동원해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환자의 심장은 멈추고 우리는 그것을 Table Death라고 부른다. ]
참으로 허탈하고 기운 빠지고 슬픈 상황이다.
땅이 꺼져라 푹 한숨을 쉬고 붉게 물든 수술복과 수술실 신발을 보고 있으면 마지막 남아있는 기운 또한 모조리 빠져나가버린다. 옆에 있는 학생이 보고 있기에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말한다.
'학생도 옆에서 수고 많았네. 우리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
2.
몇 개월이 지난 후 그 학생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나를 보더니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하며 그동안의 근황을 전한다. 의과대학 학생이 뭔가를 해봤자 다 거기가 거기이지만 그래도 그날 나와 함께 고생한 후배 학생이기에 잠시 시간을 내어 들었다.
" 엄마! 나 외상외과, 외상, 트라우마 너무 재미있어요! Dog (ㄱ ㅐ ) 재미있어요!"
[ 이 표현이 표준문법에 당연히 맞지는 않겠지만 이 대목에서는 당시 흥분해서 말하는 후배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그 말을 들은 학생 어머니 반응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지만, 엄마에게 그 말을 하였던 학생은 흥분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25년여를 제도권 안에 학생, 의대생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이제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았다고 엄마에게 말하였다.
너무 흥분하고 기쁜 나머지 Dog라는 강한 강조 표현도 한 것이다.
이 말은 그날 나와 함께 수술을 들어가고 이후 나와 기회가 되어 환자를 여러 번 함께 볼 기회가 있었던 것을 종합해서 어머니께 말했던 것이다.
나를 만나 어머니께 했던 말을 다시 하면서 급 흥분하는 학생. 이 학생을 앞에 두고 나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순간 고민되었다.
'어? 이 후배, 학생이 나를 보고 외상에 관심을 갖고 하고 싶다고 말한다. 말려야 하는지? 더 격려를 해줘야 하는지? '
3.
이 학생과의 인연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역시 피로 이어진 인연은 질기고 멋있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도원결의를 하면서 동물의 피를 어찌하였다를 말이 나오는 것처럼, 그날 수술실 안에서 수십 리터의 피바다에서 한 몸이 되었던 나와 후배 학생은 긴 인연이 되었다.
학생이 졸업반이 되어 오랜만에 학생과 식사를 하였다.
'졸업 후 계획들은 어떤가? 남은 의과대학 6개월의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토익 공부할 것이에요. 여행도 갈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사시험을 준비해서 미국에서 의사를 할 생각입니다. 미국에서 외상외과를 할 계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