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동기를 만나야겠다_고민 중인 외상외과의사 III

by 경첩의사



정신과 동기를 만나야겠다 _ 고민 중인 외상외과의사 III




1.

새벽 3시.

반쯤 감긴 눈을 뜨게 하고 잠을 확 깨고 정신 드는 방법은 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새빨간 피.

혈압이 뚝뚝 떨어지는 모니터 소리.

그리고 찐한 커피.

추가로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배 속에서 피가 솟구치는 그림도 있다.


오늘도 새벽 3시. 아주 잠시 꿀잠을 자고 싶었지만, 단 몇 시간이라도 그러나 나의 그런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후회, 한탄할 시간도 없이 일부러 어금니를 꽉 깨물어 본다. 방금 들이킨 커피 향이 찌릿한 혓바닥과 입안 사이에 아직 남아있다.


이제부터 여정, 긴 여행이자 고통과 순간순간 기쁨, 슬픔이 범벅된 고난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암담한 심정이다. 딱 한 시간, 아니 세 시간에 이 여정이 끝나고 홀가분하게 뒤도 안 보고 떠난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리고 매일, 아니 매시간이라도 할 수 있겠다. 이미 이 환자가 내 근무 중에 들어와서 나와 마주친 순간 환자는 내가 책임지고 치료해야 할 환자라를 꼬리표가 달려 항상 나와 한배를 타게 된 것이다.

환자와 내가 같은 배를 탔지만 결국 이 배는 무동력 배이고 누군가와 함께 노를 저어야 하고 때로는 스스로 부는 바람결을 타고 가야 하기에 돛을 바람 방향을 따라 잘 펼쳐야 한다.


하지만 편안하게 배가 앞으로 나가야 하나 환자는 제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때마다 배가 뒤뚱하고 내 가슴도 순간적으로 출렁거린다. 그 순간 더 중요한 것은 함께 타고 노를 저어줘야 할 동료, 함께하는 직원들이 더 긴장하고 노를 꽉 쥐어 앞으로 바로 나아가게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아니다.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그들만의 주관을 따라 움직인다. 모두 다 배 안에 환자를 태운 후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도 건너 결국 건강을 회복하는 목적지를 향하는 공통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든 그 목적지를 향해 가려는 나 자신만 애간장이 탄다.

이 모든 것이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한다.

일. 그리고 사람. 마지막에 환자.


새벽 3시. 그 순간의 힘듦은 커피. 그리고 혀를 살짝 깨무는 것으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2.

잠들기 전, 가끔 상상을 해본다.

나는 3년 뒤, 5년 뒤에도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을지?



직업이자 가지고 있는 면허증이 이것 하나이기에 어디에선가 환자를 보는 직업을 하고 있을 것이 확실하다. 그 이유는 내가 경제적으로 먹고살아야 하고 동시에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게 때문이다. 슬프지만 나도 이 세대의 가장이자 아버지, 남편, 자식이기에 운명이다. 그러나 솔직히 계속하여 3년, 5년 뒤에도 권역외상센터 일을 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솔직한 심정은 이제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래전 어느 노트에 혼자 적어보았다.


"나를 만나서 살아난 환자. 내가 살릴 환자 100명"


물론 하루에도 여러 명의 환자들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 많은 환자들이 아닌, 정말 생명의 낭떠러지 끝자락에서 외상외과 의사가 손을 잡아주어 살아난 환자라는 기준을 삼았다. 100명이란 숫자는 그래도 그 정도 숫자 환자를 살려야 어느 정도 가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그래서 그 명단을 나름 적어보다 몇십 명 적어보다 멈추었다. 바쁘다는 핑계지만 100명을 금세 채워버리면 어떻게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그 숫자들을 헤아려보고 싶다. 이름과 성별 그리고 가장 많이 다친 부위들을 적어 내려가보면 머릿속에서는 피가 한가득, 그리고 그 가족들의 눈물도 함께 보인다. 100 숫자를 채우고 여기를 그만두고 싶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래 후배가 그리고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없다는 말보다 매우 부족하다는 말이 정확하다.



아주 초창기에 함께 하는 동료가 두 손으로 헤아릴 정도가 잠시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한 손으로 헤아리기가 한참 부족한 실정이다. 언젠가 당직 일정을 정할 때 A-B-C-D 순서였으나 지금은 A-B-C 이렇게 나간다. 한숨만 나올 뿐이다.





3.

이렇게 적고 보니 신세 한탄뿐이다.


이렇게 정리해서 정신과 동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을 만나러 가야겠다. 기준표에 나오는 1,2,3 순서가 아닌 내 현실을 알려야지 그에 맞추어 상담, 약물 처방을 잘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전에 나 스스로 내린 우울증이란 진단이 맞는 것인지도 알려주실 것이다.

갑자기 생각이 든다.

혹시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내 직업에 대한 만족 하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한 번 더 그 직업, 외상외과,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체성, 경제력과 명예, 자존감이 있는지 물은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아마도......

나는 아직 자존감을 갖는 외상외과 의사라고 대답할 것이다.

구글링에서 어디 조금이라도 이름 석 자가 나오는 외상외과 의사. 환자들에게 생명을 살려주었다고 감사하다고 92도 인사를 받는 외상외과 의사. 가족들에게 삼시 세끼 따뜻한 밥과 편안하게 쉴 집을 갖게 해 줄 경제력을 가져다준 이 직업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오늘도...

정신과 동기를 만나러, 카톡으로 연락하기 전에 나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였다.

다음에는 꼭 연락해서 상담, 진료를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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