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동기를 만나야겠다 _고민 중인 외상외과의사 II

by 경첩의사



정신과 동기를 만나야겠다 _ 고민 중인 외상외과의사 II



그래도 의사인 나 스스로 진단명, 예상되는 가능한 진단명을 붙였으니 이제 정신과 동기에게 연락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카톡을 켜고 정신과 동기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적기 시작하였다.




"잘 지내시나?

나 우울증이라고 스스로 잠정 진단했음. 상담, 약물 치료 부탁드리오!"


"내가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언제 병원으로 상담, 진료받으러 가도 될까? "


"우울증에 요즘 어떤 약을 많이 쓰나요?"




사실은 위 여러 문장들 중 하나도 적지 못하였다. 내 마음속에 혼자서만 내뱉은 말들이다. [ 이 또한 우울증의 진단 기준에 들어갈까?]







다시 카톡을 보니 얼마 전 정신과 동기가 나에게 화상 입은 아이 사진을 보낸 것이 보인다. 주말 저녁 갑작스럽게 아이들이 라면 끓여먹는 도중에 다리에 화상을 입은 사진을 보내며 조언을 구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미 답정녀.

'어디 어디 화상전문병원이 있지. 야간에는 한 곳 거기가 있고 주간에는 여기저기 몇 곳 더 있지.'





가만, 핸드폰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무턱대고 혼자서 얼렁뚱땅 진단을 내려버린 것이 아닌가부터 시작해서 과연 나 스스로 이렇게 진단을 덥석 내려버린 이유가 무엇 일지부터 생각하기로 하자.


"몸이 건강하지, 튼튼하지 않으면 일을 하면서 짜증을 내기 쉽다."

누군가 말이다.

맞는 말이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해당하는 말이다.

상대적 박탈감. 자존감 상실. 그보다 더 문제는 체력의 한계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진료 중, 환자를 보는 중간에 나도 모르게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가 온다. 그럴 때면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카페인을 듬뿍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벌컥 마신다. 하지만 그때 잠시뿐이다.

역시나 나도 인간이고 내가 며칠을 밤새워 환자 보고 수술을 해도 끄떡없는 30대 외과의사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나는 70년대 태어난 40대 중반인 어디 길가에서 아저씨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우선은 동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난다면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체력적 한계. 곧 야간, 새벽 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중증외상환자를 보는 업무에 대한 과도함이 나의 신체적 나이와 동시에 실제 나이를 능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첫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으로서 지위 결정 요인으로 누군가는 경제력, 명예, 만족감을 말한다. 그렇기 위해서 그 직업은 희소성, 전문성,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내가 의대를 선택하였을 1990년대 후반에는 지금과 같은 의대 광풍이 아니었다. 나 또한 공대 지망생이었기에 우연한 기회에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꾸었다. 이 직업을 20년 넘게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직업이 직업으로서 경제력, 명예, 만족감을 모두 제대로 갖추었는지 다시 나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잠시 한눈팔고 샛길 경험도 하였지만 결국 내가 먹고살아야 하는 송충이 길은 결국 외상외과, 권역외상센터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제까지 지속할지, 계속할지는 미지수이다. 나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나의 경제력, 명예, 만족감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지 한번 다시 묻고 싶다.







정신과 동기에게 연락을 주저하는 사이 나 스스로에게 문답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정리하고 정신과 전문의선생님을 만난다면 정신과 선생님께서 훓륭한 환자로서 와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다^^



그럼 지금 나의 문제는


1. 체력. 나이 듦.


2. 내 직업에 대한 정체성.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이 직업이 나에게 경제력과 명예, 자존감을 주고 있는가?


3. 그다음은 또 뭐가 있을까?



아. 어렵구나.

역시 나에게 정신과는 20년 전에도 지금도 역시 어려운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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