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사월 초파일이라고 부르던 공휴일이 있었다. 대개 5월 초중순 즈음에 있던 공휴일이다. 학창 시절 중간고사 지나고 따뜻한 봄날을 즐기기 위한 하루 휴가 같았다. 부처가 BC 624년 음력 4월 8일에 태어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공휴일로 이전에는 석가탄신일, 사월 초파일이라 부르다가 이제 공식 명칭을 '부처님 오신 날'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공휴일을 그리 썩 좋은 날은 아니다. 남들 쉬는 공휴일에 일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히 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만큼 정당한 대우, 보상이 되는도 의문이다. 그런 고민이 나에게 공휴일을 더 괴롭게 한다. 그에 더해 내가 남들 다 쉬는 이런 연휴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런 것을 쉽게 말해 '현타'라고 누구는 말한다.
5월 말, 누구나 다 환호할 황금 같은 3일 연휴다. 미리 몇 달 전에 이 연휴 동안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설레는 기쁨을 누군가는 느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예외다. 이미 이것이 숙명임을 알고 아예 달력에 연휴는 애써 외면하고 안 보려 한다. 수년 전, 아니 의사면허를 받은 후 외과를 선택하고 이어 외상외과를 시작한 후로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연휴, 명절이 아예 없는 달력을 항상 머릿속에 그려보곤 하였다.
그러나 운명처럼 다시 연휴가 왔다. 부처님이 토요일에 오셨다고 나라에서 불평불만이 사람들을 위해 대체공휴일이라 하여 월요일까지 3일 연휴를 만들어버렸다. 이 연휴 3일, 72시간 중 나는 50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즉 첫날,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에 병원에서 외박을 한 것이다.
2023년의 부처님 오신 날. 연휴가 시작하는 날이며 나는 이번 3일간 연휴 기간 중 첫째 날과 셋째 날 근무하는 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나에게 이번 달에 딱 열 번째 외박을 하는 날이다.
말이 외박이지 운 나쁘면 밤을 꼴딱 새는 것이고 당직실 침대에서 쪽잠을 잘해야 서너 시간밖에 못 자는 운명이다.
첫날부터 부처님이 자비가 나에게 오지 못하셨나 보다.
찌뿌둥한 날씨와 비. 덥고 습한 날씨. 몸은 두 배로 더 무거워지고 몸에 들어있는 피로는 전혀 빠져나갈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부처님의 자비를 바라고 병원에 출근하자마자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을 확인한 후 더 슬퍼졌다. 그러나 환자 상태가 썩 안 좋다는 것은 내가 더 긴장해야 하고 나의 에너지를 서너배 더 쏟아부어야 하는 상태인 것이다.
언젠가 누구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몸을 갈아서 환자를 살려내고 있구나!'
나는 애써 웃으며 그 말에 답을 피했다.
2.
부처님이 오신 다음날 아침. 위에 보이는 사진이 다음날 비 내리는 거리 모습이다. 역시나 내 몸과 마음처럼 무겁고 우울하다.
총 72시간의 연휴 시간 동안 병원에서 50여 시간, 나머지 약 20시간 집에서 보냈다.
그중 12시간은 잠. 깨어있는 시간은 8시간.
비가 오는 오전 시간,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아제부터 하루 종일 비와 습한 날씨에 온몸은 찌뿌둥하다. 집은 편한 안식과 휴식을 주는 공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나는 그리 행복하지 않다. 잠을 자고 또 잠시 비몽사몽 집안에서 보낸 후 다시 억지 잠을 청하고 다시 병원으로 와야 한다.
나는 일부러 커다란 사각형 모양의 길로 출근길과 퇴근길을 다르게 간다. 출근길은 최대한 단축하여 횡단보도 3개를 최소한의 시간으로 건너 출근한다. 퇴근길은 다르게 커다란 공공기관을 몇 개 지나는 길을 택한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길과 별다방을 지나치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이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휴일이기에 거리에, 별다방 근처도 사람도 없이 적막감이 흐르는 풍경이었다.
3.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 내 뒤에서 누가 소리치는 것이 들린다.
'누가 연휴에 쉬지 않고 일하라고 했나?'
환청이다.
혼자 한탄하는 소리에 애써 슬픔을 혼자 마음속으로 삭인다.
그렇다. 누가 나에게 일부러 시키고 강요한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나의 자유의지로 시작한 것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연휴에 일하지 않는 다른 업종, 직장을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또 길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숙명처럼 지금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그 시간이 언제까지 될지 아무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른다.
연휴 3일을 보내고 ( 이렇게 쓰고 보니 어느 방송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3일' 72시간 동안 기록을 방송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생각난다. 다시 찾아보니 지금은 종영된 프로그램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다행히(?) 연휴 동안 비 오고 흐린 날씨가 연휴가 끝나자마자 화창하게 변하였다. 작은 것에서 희망을 찾고 감사하는 것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어디서 들었다. 연휴 3일 동안 이런 화창한 날씨였더라면 나의 슬픔, 우울, 억울함은 더 심하였을 것이다. 아. 다행이다. 나의 작은 행복 하나 더 추가.
하나 더, 집에서 있는 시간 중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는 8시간 중 나름 보람, 의미 있는 일들을 하였다. 하나는 아들, 딸 둘만 데리고 새로 산 차를 타고 드라이브 겸 별다방에 다녀온 것. 별다방을 가면서 셋이 책을 하나씩 들고 가서 각자 좋아하는 음료와 케이크, 그리고 책과 잠시나마 시간을 보냈다. 나머지 하나는 아빠표 저녁식사. 집 냉장고 안 이것저것들 자르고 볶아 나름 맛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나름 72시간, 연휴 3일 동안의 일상, 나의 기록이다.
누군가 기록이라는 것, 글을 쓴 다는 것은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도 하며, 스스로에 대한 칭찬, 나아가 더 발전하는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2023년 남을 달력을 보니 또 연휴가 서너 개는 더 있어 보인다. 빨간색 날짜가 너무 많아 보이는 10월은 다시 애써 외면해버리고 나에게 10월은 없는 것이라 생각해야지 내 정신 건강에 좋다.
'누가 연휴에 쉬지 않고 일하라고 했나?'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무리하고 싶으나, 아직도 솔직히 자신 있게 대답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