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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Jun 15. 2023

인생의 절반은 식판에 밥


인생의 절반은 식판에 밥



1.



"고기는 딱 정해진 양만 줍니다."


'저기... 고기 조금 더 주세요'라고 간절히 말하는 내 친구는 더 이상의 말이 없이 주는 만큼의 반찬만 받는다. 내 앞에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는 친구를 바라보며 나는 허기진 배를 미리 달래고 있다. 물론 나도 식판에 밥과 반찬을 주는 식당 아주머니, 아저씨에 다시 한번 간절히 말하고 싶었지만 단념하고 주는 만큼의 밥과 반찬을 받았다.



내 앞 친구도 그리고 나도 까였다.

지금이 저녁 6시니까 오늘 밤도 야자 끝나갈 11시 즈음이 되면 배 안에서 꼬르륵 소리가 또 들릴 것이다.


정확히 28년 전 기억이다. 시골집을 떠나 기숙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기숙사 식당에서 일이 정확히 기억한다. 매번 반복되었기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기숙사 학생들에게 일정 비용을 받아 학생들에게 밥을 제공하고 이윤을 얻으려는 식당 주인과의 신경전이었다. 커다란 찜통에 짬밥을 만들고 지금처럼 영양사도 없었기에 필수 5대 영양소를 따질 필요도 없이 적당히 반찬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가끔씩은 고기반찬을 한 번씩은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단백질 반찬이 제공되는 날은 또다시 식당의 주인아주머니, 아저씨와 굶주린 학생들과의 신경전이 치열하였다. 지금처럼 쉽게 간식도 구하기 힘들고 모두 기숙사에 생활하기에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마칠 때까지 충분한 저녁식사를 먹어야 한다. 없어서 못 먹었다는 말이 맞는 시기이다. 간혹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소보르빵, 그리고 학교 앞에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 사치를 부릴 수는 있지만 그럴만한 용돈도 충분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의 절반을 식판에 밥을 먹는 것이 시작되었다.


고기반찬을 조금밖에 안 주었던 식당 아주머니의 원망과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밤 12시에 기숙사로 돌아오면  지난번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만들어준 미숫가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찬물에 미숫가루를 타서 먹으면 뱃속의 꼬르륵 소리와 허기짐이 잠시는 사라졌다. 지금도 엄마는 내 키가 고등학교 때 못 먹어서 크다가 말았다고 아쉬워한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 스퍼트를 내서 키가 커야 할 시기인 10대 후반 3년을 충분한 영양을 섭취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못 먹고 굶주린 것은 아니고 2% 부족하여 키가 5센티미터 더 커야 할 것이 못 큰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2.


 고등학교 식판과의 만남의 시작은 이제 뒤돌아보니 인생의 절반 이상 기간 동안 식판에 밥을 먹는 삶을 살아왔다. 이어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아닌 갓 생긴 대학병원 부속 의과대학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요즘 학생들이 말하는 병식, 병원 식당가의 시작이었다. 환자들의 식사와 거의 비슷한 반찬과 국이 나오는 식사이다. 다만 차이는 환자들은 각자 병실로 밥을 배달주지만 나는 지하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어쩌다 보니 처음 만난 병원의 영양사분은 영양과장님이 되어 가끔 병원에서 지나가다가 보게 된다. 만날 때마다 한번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아직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말하지 못한다.

'왜 이리 병원 밥은 맛이 없나요? 최근에는 반찬들이 더 짜진 것 같은데요?'



잠시 국방부에서 주는 식판 밥을 딱 4주간 먹은 적이 있다. 논산훈련소에서 구령 소리에 발을 맞추어 식당에 가서 먹는 밥이다. 남들은 훈련소 밥이 별로라고 하지만, 뭐든지 잘 먹고 훈련을 열심히 받았는지 나는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던 국방부 식판 밥으로 기억된다. 물론 다시는 그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정확히 계산해 보지 않았지만, 얼추 내 인생의 절반은 식판에 밥을 먹고살았다. 가끔은 반찬 그릇에 대여섯 개가 차려진 식탁의 밥상이 어색할 때도 있다. 반찬은 딱 서너 개, 그리고 국. 정해진 양. 그것이 익숙한 나의 한 끼 식사인 것이다. 식판에 밥이 익숙한 한 끼 양식이다.







3.

 

오랜만에 고향 집에 가면 말 그래도 상다리 휘어지게 반찬 가득한 밥상을 엄마가 차려주신다. 오랫동안 식판에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아들에게 지난 몇 개월간 먹이고 싶었던 것을 한 번에 차려주신다. 고향 집에 가면 나의 위 용량은 서너 배는 늘어나는 것 같다. 식판에 밥은 서너 숟가락만 들어도 배가 불러오지만 엄마가 해주신 밥상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고 기어코 밥상에 반찬이 다 없어질 즈음에서야 배가 불러온다.


최근 배달의민족, 배달 음식 전성시대이다. 딱 한 끼 알맞게 맛있는 음식을 손가락 몇 번으로 집 앞으로 배달이 온다. 식판이 아니라 이제 플라스틱 용기가 내가 밥을 먹는 또 다른 수단이 된 것이다. 맛깔나게 요리, 포장해서 집 앞으로 몇십 분 만에 뚝딱 온다는 것이 신기하고 편리하다. 하지만 이 또한 몇 차례 반복되다 보면 이내 질려버린다.



몇십 첩 반상이 아닌 뜨끈한 국에 반찬 서너 개, 이왕이면 양껏 먹을 수 있는 고기반찬 한 가지가 추가로 있으면 한 끼 든든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왕이면 같이 숟가락, 젓가락이 오가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라면 더 좋다.



나는 식판에 먹는 밥에 인이 박혔다. 그렇지만 식판에 밥은 내 자의로 먹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한 수단으로 먹는 것뿐이다. 그러나 계속 먹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 시절, 내 앞에서 기숙사 식당 밥을 먼저 받았던 친구가 생각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였던 친구. '아주머니 고기 조금 더 주시면 안 되나요?' 조만간 그 친구를 만나서 따뜻한 반찬, 맘껏 먹을 고기가 있는 밥상에서 만나고 싶다.


친구야 밥 한 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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