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튼튼하시네요!
환자는 이제 조금 기운이 생겨 보인다.
어제부터 죽을 몇 숟가락 먹기 시작하였다.
중환자실을 거쳐 며칠 전 일반 병실로 와 가족과 함께 있다. 본인이 어떻게 사고가 나고 죽을 고비를 넘겨 여기까지 온 지 전혀 모른다. 다만 여기저기 깁스로 감겨있고 배에 길게 상처, 몸에 주렁주렁 관이 달릴 것들이 누가 봐도 딱 중증외상환자임이 분명하다.
환자는 일주일 가까이 매일 나를 봐서 내가 누군지 아는 눈치다.
이런 환자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을 오늘도 한다.
조금 정신도 들고 기운이 날 듯한 환자에게 하는 말이다.
" OO 환자분! 차는 어떻게 되었어요"
매번 같은 질문이고 역시나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환자 몸이 저리 부서지고 피가 나는 상황이기에 차가 멀쩡하다는 것이 이상하다. 물론 처음 응급실에 환자가 오는 당시, 119 구급대원을 통해 사고 상황, 차량 상태 등을 들었기에 대략 알고 있었다. 환자도 기운도 조금 나기에 사고 상황, 본인 차량에 대한 걱정을 슬슬하던 찰나이다.
"폐차했어요..."
역시나 오늘도 예상했던 대답이다. 차량 종류가 뭐던지 차량이 폐차할 정도라면 살짝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아쉬움을 환자가 느낄 틈도 없이 바로 맞받아쳐서 말해준다.
"차보다 튼튼하시네요!"
"차야 뭐 다시 사면 되죠! 몸이 더 중요하죠! "
"차가 박살 날 정도인데 이만하면 천만다행입니다!"
구급차를 통해 응급실로 급하게 들어오는 순간부터 환자는 심각했다. 역시나 뱃속에 장이 터져 피범벅에, 팔다리 네 개 중에서 하나만 멀쩡하게 남아있고 뼈들도 부서졌다. 지난 일주일간 환자에게 들어간 피의 양만 이미 2,000 cc 이상이다. 몸 안에 피의 절반이 빠져나가고 다른 사람의 피로 보충된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버텨주었다.
여러 차례 수술도 잘 견뎌주고 회복하고, 힘을 내고 있다.
나는 다시 환자에게 말한다.
바로 옆에 환자를 지켜주는 가족에게도 함께 말해준다.
차보다 튼튼하시네요!
차는 다시 사면 되지요!
목숨은 하나입니다!
속으로 한마디 더 해드린다. 조용히, 나만 들리게.
'다음부터는 에어백 많이 달린 튼튼한 차를 타고 다니세요!'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경력 12년 차.
별 모양, 동그라미 네 개가 연속된, 바둑판 모양 등 차를 타고 사고가 나서 큰 중증외상환자를 아주 드물었다. 아주 드물게 있었지만, 대부분은 경차, 트럭 등 사고가 큰 중증외상환자로 이어진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경차, 트럭 운전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난 환자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사람인지라 그런 환자들에 더 잘 치료해주려 노력한다.
역시 차 종류, 튼튼함은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