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함께 병원서 근무하는 20년 지기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비도 오는 날이라 둘 다 짬뽕을 시켜서 맛있게 먹으면서 이런 저런 지난 일들을 이야기 했다. 얼큰할 짬뽕 국물을 먹다보니 칼칼한 맛을 내는 고춧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고춧가루를 보고 있으니 어렸을 적 집안 구석구석, 비닐하우스 등에서 코를 찌르는 고추 말리는 냄새가 그리 좋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벌써 이삼십년 전의 기억들이다. 한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이며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서 그 고추를 말리기 위해 햇볕이 잘 드는 곳, 때로는 비가 오면 집안 구석구석까지 고추를 말리는 냄새로 여기 저기 나의 코를 찔끔 눈물 나게 하는 기억들이 있다. 지금도 태안이라는 시골에서 이런 저런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으면 지나간 시골에서 농사를 거들던 어릴 적 기억들이 새삼 떠오른다. 벼농사를 비롯하여 여름에는 고추며 이런 저런 밭농사들, 늦가을에서 겨울동안은 마늘을 심고 이어서 바로 비닐하우스에서 달래를 키우며 힘들게 버는 돈으로 아들딸 키우시기 위해 노력해주신 부모님의 생각이 난다.
그 중에서 고추농사는 어찌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힘이 세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손을 빌릴 수 있는 농사 중에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고추 농사는 마치 자식을 키우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처음에 고추 씨앗을 따뜻한 비닐하우스에서 싹을 틔워서 모종이 어느 정도 크면 넓은 바깥세상인 밭으로 옮겨서 키우는 것은 엄마 품에 있는 아이를 키워 본격적으로 학교나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어 무럭무럭 자라나는 고추 모종이 커서 꽃을 피우고 열매인 고추가 열려 초록색의 고추가 어느덧 빨간 고추로 변해가는 것은 지금의 나처럼 사회의 한 축으로서 커가는 과정이라고 생각 든다. 빨간 고추를 따서 말리는 과정을 거치고 고춧가루로서 음식에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역경을 거쳐서 자신만의 자리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인생의 황금기에 사회에 핵심 역할을 하는 모습과 같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비춰진 매년 반복되는 고추 농사는 힘들게 다가오는 노동의 시간이었지만 부모님에게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었다. 초봄에 비닐하우스 한 구석에 고추 모종을 키우기 시작하고 그 모종이 어느 정도 자라나는 5월초면 그 고추 모종이 본격적으로 자라날 밭으로 옮겨 심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때가 어린 아들의 작은 손을 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점이다. 기계를 이용하여 밭을 고르고 이랑을 만든 다음 여름 한철 고추가 잘 자랄 수 있는 비닐을 씌우는 것을 시작한다. 지금이야 비닐 씌우는 기계까지 나와서 쉽게 한다지만 당시에는 비닐이 감긴 통을 막대에 끼고 이랑위에서 멀찌감치 당긴 다음 양쪽에서 고랑의 흙을 쌓아 덮는 것을 반복하였다. 길고 긴 고랑을 어렵게 끝내고 나면 다시 또 옆에 또 다른 긴 고랑이 있고……. 길고 긴 일이었다.
하지만 비닐은 시작에 불과했고 또 다른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튼튼히 자란 고추 모종을 본격적으로 바깥세상의 넓은 밭으로 옮겨 심어야한다. 어렵게끔 씌어놓은 비닐위로 아버지께서 고추 모종이 자리 잡고 자라나갈 자리에 구멍을 일정한 간격으로 하나둘씩 뚫어 놓으시면 그 다음의 나의 본격적인 차례이다. 어린 아이에게 힘에 부칠만한 커다란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그 구멍 하나하나에 일정량의 물을 넣어줘서 어린 고추모종들이 처음에 뿌리를 쉽게 내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 다음을 모종판을 조심스레 들고 모종 하나하나를 물을 흠뻑 갖은 구멍마다 사뿐히 넣어준다. 물을 넣어줄 때나 모종을 하나씩 구멍에 넣어줄 때마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는 반복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어지간히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음은 어머니 차례로 고추 모종이 구멍속의 밭에 잘 자리 잡게 흙을 듬뿍 덮어주는 복주 것을 마지막으로 고추 모종 하나 하나가 한 해를 커나갈 자리를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 힘에 부치고 허리와 팔과 다리가 아파올 때쯤이면 어머니가 가져오시는 새참이 힘을 다시 북돋게 해주신다. 힘들지만 밭에서 온가족이 모여앉아 먹는 새참의 맛은 지금도 아련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어린 아들의 손이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넓은 밭에 고추 모종이 하나 둘씩 심어져 해가 뉘어질 때면 어느덧 온 밭 가득 모종들이 각자 제 자리를 꼿꼿이 자리를 잡았다. 무럭무럭 자라는 고추들은 한여름을 지나면서 쑥쑥 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하나둘 씩 맺어간다. 때로는 비료가 힘을 보태주고 나쁜 병균이 자라면 농약도 뿌려준다. 그때마다 조금은 나의 어린 손이지만 부모님께 도움을 드렸다. 커가는 고추나무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고춧대를 세우고 줄을 얼기설기 엮어준다. 멀리 타지로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보낸 부모님이 나를 사랑과 걱정으로 감싸주시던 기억은 방황하던 나에게 고춧대였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따서 말리는 마지막 과정이 남았다. 어머니께서는 허리를 굽히고 큰 고추나무 사이사이를 다니며 하나씩 따서 모아 여기 저기 고추를 말리셨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추는 곱게 빻아서 우리네 식탁으로 올라갔고 대부분은 어디론가 팔게 되어 그렇게 얻은 돈으로 내가 크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가 첫 중간고사를 앞둔 일요일이었다. 건강하게 자란 고추 모종, 그리고 미리 전날 부모님께서 비닐을 다 씌워놓은 고추밭. 나도 마음속으로는 중간고사가 걱정이 되었지만 고추 모종을 심는 나의 역할이 있었기에 밭으로 가야할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내일이 시험이니 오늘 고추는 엄마, 아빠가 알아서 심을 것이다.
집에서 내일 시험공부 열심히 하렴.”
집에 고추를 심은 다음 날부터 삼일에 걸쳐 나는 중학교 첫 중간고사를 봤다. 시골 조그마한 초등학교에서 읍내의 한 학년이 300명이 넘는 중학교로 진학해서 첫 중간고사에서 나는 전교 1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우리 집 고추 농사는 어느 때보다 풍년이 되었다.
친구와 점심 식사 이후 계속 고춧가루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후 회진에 몇 일전 수술하고 많이 좋아진 환자의 이빨 사이로 고춧가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으로 저 고춧가루는 우리 부모님이 작년에 농사지은 고추에서 나온 고춧가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