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단층집 1.

: 살아봐야만 아는 우리 집 이야기

by Auntie J

어느 순간,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 하지도, 다른 사람의 집을 애써 방문하려 들지 않는다.


솔직히 요즘의 나는 그렇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지더니 딱히 집 밥을 해 먹이며

다독일만한 관계의 친분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나 사는걸 허물없이 봐줄 사람이야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누구라도 온다면 청소라도 해야 하고, 마실 거라도 갖춰야 하는데,..

솔직하자.

그런 분주함이 문제가 아니다.

그 집은 사는 게 이렇더라, 저렇더라 쓸데없이 돌아다닐 말 거리 제공을 원천 봉쇄하려는 소심함이 문제다.

나이 든 아줌마라고 모두 대범할 수는 없지 않나. 하여 대부분, 누군가를 만날 때는 적당히 분위기 좋은 곳에서, 부담 없이 만나 헤어지는 쪽을 선택하고 만다. 하물며 집에서 숙박까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으니 이해를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구시대적 센스를 갖춘 민폐 캐릭터를 탓하며 며칠 고생을 참아내야지 별 수 있나.

물론 나, 스스로는 절대 누군가에게 민폐 캐릭터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한다.


그런데,... 초대를 받았다. 그것도 5세 된 아이까지 대동, 국경을 넘어 잠을 자러 오란다.


아…. 잠까지 안 자도 되는데… 국경까지 넘어가며 만날 사이로 지내온 것 같진 않은데…

역시 솔직하자.

낯선 손님맞이에 고생될까 상대편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내가 힘들어서다.

어색한 사이, 낯선 공간, 5세 유아까지 동반.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거지.

우선 민폐 방지를 위해 호텔 예약을 넌지시 흘려본다. 턱도 없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차도 없고, 어린애를 대동한 여자가 호텔에서 숙박하다 혹 문제라도 생겨 당황하느니 집에서 같이 먹고 자는 게 호스트 분들께서 훨씬 수월하시겠단다.


그러니 따르란다.


당시 남편의 일 문제로 미국의 시애틀에 잠시 머물던 나는 캐나다에 거주 중인 큰 아버지의 부름을 이렇게 받고 승용차로 2시간 30분, 익스프레스 버스로 4시간 이면 거뜬히 도착한다는 밴쿠버를 향해 떠났다.


큰아버지로 말하자면, 철들기 전부터 결혼한 뒤, 그 당시까지 친가 쪽 사촌 이내에선 단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부잣집 친척으로, 어릴 적 내 손에 (말도 안 되게 구하기 힘들었던) 바나나를 쥐어주셨고, 영창 피아노까지 선물해 주신 갑부 중에 갑부, 부호 친척이라 하겠다. 물론 당시 내 인생 35년이 넘도록 도합 열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바나나와 피아노 선물은(더해서 각종 미제, 외제 생활용품 포함(때론 헌 옷, 사용하던 물건 등도 보내와 엄마의 자존심을 제대로 상하게 했지만)) 큰아버지를 집안의 자랑이요, 어린 시절 유치한 집안 자랑만 등장했다 하면 대표 주자로 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로 만들었다.

허나 세월이 흘러 나는 더 이상 바나나와 미제 선물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나이가 돼버렸고,

그러자 큰아버지의 인생 역경 스토리 - 16세에 일본으로 밀항, 다시 캐나다로 건너가 사업을 크게 일구어 내셨다 더라.. - 는 너무 스펙터클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몇 번 뵙지 못한 중에도 한국말은 어눌하게 구사하시면서 일본말과 영어는 유창한 모습이 어딘가 아이러니한 데다, 뵐 때마다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 사람들의 치부와 단점을 그것도 일본 사람들, 미국 사람들과 번갈아 비교하면서 조목조목 지적하시는 모습은 묘한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해서 공식적인 사업 이름으로 일본인 이름을 사용하고 계셨으니,. 당시 때려잡자! 김일성 다음으로 친일파 숙청이 민족적 염원임에 어지간히 동감하며 자란 나로서는 철이 들면 들수록 간간히 등장하던 큰아버지의 존재가 딱히 자랑스럽지 않아 졌다.

뭐 그래도 자주 얼굴 부딪힐 일 없고 피해 주는 거 없으니 무슨 상관인가. 큰 의미 없는 친척이 어디 한둘 인가. 그냥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던 거다. 이렇게 자주 보지 못했고 큰 관심 갈 일이 없었으니 당연히 큰 아버지 얼굴도 가물가물 해졌기 마련인데, 당신의 외아들이라는 M, 사촌동생이야 오죽하랴. 어린 시절 사진 한 장 얼핏 들여다본 기억 말고는 일면식도 없던 사촌이었다. 즉, 말이 친척이지 굳이 따지자면 간간이 받는 선물로 존재를 인식할 뿐, 감정적 교류나 일상적 교류는 전무한 친척 정도 되겠다.


그런데 가서, 만나고, 자고 오라니!

가는데 고생, 도착해 어색한 것도 오로지 내 문제일 뿐이었으니!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친척 사이라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결국 애까지 데리고 국경을 넘었다.


이왕지사 일은 이렇게 되었고, 지내는 동안 실수나 없어야 할 텐데..

아마도 아주 큰 집이겠지. 미국도 아니고 그 살기 좋다는 캐나다에, 게다가 그렇게 큰 부자라니 얼마나 좋은 집에 살고 있겠어. 늘 한국 사람들이 불쌍하다던 큰아버지께 한국 사람들도 이제 먹고살만하고 다들 잘 산다 고 좀 뻐겨야 할 것 같은데 큰 집에 기가 눌리면 어쩌나. 나 역시 큰 아버지가 기억하는 촌스럽고 매너 없는 그 시절 한국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나..

겨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밴쿠버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로 마중 나온 얼굴은, 한국 사람이나 한국말이라곤 알아듣지도하지도 못하고, 오직 영어로만 대화 가능하다는 M. 마뜩지 않지만 못한다는데 도리가 있나. 만나자마자 손짓 발짓 총출동이다.

밑천 다 까 보였다.

한 마디로 창피했다.

말이 안 통하니 뭘 물어보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그렇다고 누나라는 사람이 입 꾹 다물고 말 한마디 없이 있을 순 없지!

우선 이미 대충은 알고 나왔겠지만 너와 내가 어떻게 친척 인가부터 정리하고, 우리 형제, 자매부터 시작해 고모네 자식들까지 고만고만한 일가 사촌들을 나이 순으로 줄 세우고 나니 거의 집에 도착해 간단다.


헌데 어느 순간 꼬불꼬불 골목으로 접어든 차가 서서히 멈춰 서는데 어쩐지 이건 좀 이상하다.

보통 서양 부자들은 큰 대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대문 앞에서도 한참을 차를 타고 들어가야 짠! 하고 나타나는 그런 집에서 살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 베버리힐즈 형 부호의 집까진 아니어도 시애틀에서 보던 충분히 넓은 정원을 가진 2층짜리 서양식 주택? 그 정도는 기대했고, 또 그 기대는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잘 사는, 부잣집! 큰 부자라 했으니!!! 그런데,.. 이건 뭔가? 참 작고 아담한 거라지 도어 앞에 차는 멈춰 섰고, 문이 열리더니 M은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차 한 대 주차하니 더 이상 공간도 없는 거라지를 나와 대 여섯 걸음 정도 들어가니 작은 뒷문이 달린 집이 있다. 문 앞엔 댓돌처럼 계단 두서너 개가 나란하고, 그 위로 올라가 문을 열자 바로 집 안이다. 이건 현관도 아니고 그냥 밖으로 통하는 작은 문 정도다. 신발을 벗는 M. 그런데 신발을 들고 들어가는 것도, 어디에 두고 뭐 고도 없이 그냥 계단에 벗어두곤 쑥 들어간다. 별 말 없는 것 보니 나도 그렇게 하라는 건데,. 요즘 세상에 신발을 하늘 아래, 밖에 그냥 벗어두고 들어가라니. 기대보다 너무 작은 집만큼 갑작스러운 여름 비로 신발이 젖지 않을까 문득 걱정이 됐다.


쪽문 정도 되는 문을 허리를 살짝 구부려 통과하니 바로 부엌. 아마도 현관문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문 바로 옆으로 싱크대 두 짝이 나란한데 딱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와 도마 하나 놓으면 끝날 정도의 준비 싱크대가 전부. 그리고 그 옆으로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의 냉장고가 있고, 거기서 바로 뒤로 돌면 2구짜리 가스레인지가 놓여 있다. 나머지 공간은 2인용보다 크고 4인용보다 작은, 좁은 부엌에 기막히게 맞는 사이즈의 식탁과 의자가 차지하고 있다. 동선이고 뭐고 고려할 것도 없이 곳곳에 필요한 주방 살림을 채우고 놓으니 끝.

전반적으로 작고 낮다. 그리고 좁다.

대체 여기서 어떻게 살림을 했을까. 식구 세 명이 먹고 지내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는 갖춰야 수월할 텐데, 딱 혼자 먹고살기에 적당하다.

어느 집이든 주방이 좁으면 고생은 여자 몫. 뭐라도 할라치면 늘어놔야 하고, 다양하다 못해 잡다한 주방 도구나 용기, 물건들을 수납하지 못하면 지저분해지기 딱 좋은 곳이 주방인데.. 좁다고 투덜거리기 딱 좋을 사이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좁고 낡은 이 주방이 놀랍게도 깔끔히 정리가 돼 있는 거다.

좁아도 복잡해 보이거나 지저분해 보이질 않는다. 그저 모든 게 낡았을 뿐. 여자가 여자 살림 볼 줄 안다고 얼핏 둘러봐도 야무진 솜씨를 가진 사람의 살림이다. 쓸데없고 너저분하게 많지도 않고, 있어야 할 것도 과하게 호화로운 물건들이 아니다.


이쯤 지나자 마음속에서 탄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게 잘 산다면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든지, 여의치 않으면 살림 살기 편하게 주방이라도 리 모델링을 좀 하지. 이런 살림을 할라치면 평생 단정하게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어야 했을 텐데, 갑자기 생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큰 엄마가 측은해지면서 큰 아버지를 탓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말이 통해야 탓이라도 통하지. 울컥 실망인지, 불만인지 표정을 못 속이는 나를 M은 ‘많이 좁지, 좁지’ 멋 적게 말하며 부엌에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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