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봐야만 아는 우리 집 이야기
미닫이 문이 있었는지, 문이 아예 없었는지 부엌을 나서자 바로 작은 복도보단 넓고 마루라 하기엔 좁은 애매한 통로가 나왔다. 그리고 그 끝엔 거실. 거실과 마주하는 다른 끝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큰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작은 방이 있고 복도 통로를 사이에 두고 부엌 맞은편으로 진짜 현관문이 보인다. 그렇지. 그래도 주택인데 집으로 들어오는 정식 문이 있기 마련이지. 현관을 거쳐 문을 여니 작은 정원이 바로 보이는데, 역시 잔디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고 지저분한 나무나 꽃은 전혀 없다. 오래돼 보이는 나무 한 그루만 정원 한편에서 쓸쓸하다. 나무가 어쩌고 저쩌고 누가 듣는지 마는지 상관없이 M 혼자 설명이 바쁘다. 뭐라 뭐라 길고 빠르고. 애당초 포기다. 현관문을 닫으니 그나마 집으로 들어오던 빛이 아예 없다. 해가 질 즈음이었으니 서향은 아닌 듯하고, 집이 어느 방향으로 앉았나 물을까 하다가 말았다. 집 도착 전까지 이 나이가 돼서 팬터마임에 재능이 있었나 싶게 손가락에, 표정에 잘도 표현한다 했더니만 갑자기 의지가 뚝 떨어졌다.
작아도 너무 작은 거라지에, 부엌에, 정원까지. 앞으로 둘러봐도 뻔하게 작을 집에 실망해서였을까..
현관 문도 부엌 뒷문보다 썩 낫을 게 없었다.
현관문과 신발장 모두 마호가니 색이었는지, 검은 고동 색이었는지 매우 어두웠다. 현관 자체가 좁고, 문은 작다. 그리고 어둡다. 대부분 부엌문을 통해 집을 드나드는지 현관엔 가볍게 신을 슬리퍼 한 켤레 조차 없었다.
현관에서 바로 옆 거실 쪽으로 이어진 큰 아버지 방 역시 작고 소박했는데 작은 침대와 스탠드를 놓은 협탁, 그리고 옷장이 전부다. 아마도 취침만 하는 용도의 방인 듯. 이쯤 둘러보자 이 곳에 정말 사람이 사는 걸까..
묘한 생각이 스쳤다. 과하다 싶을 만큼 정리정돈이 잘 돼 있고 깨끗하지만, 어울려 사는 ‘집’이 주는 따스함이 느껴지질 않는다. 누군가 함께 살고는 있다지만 그게 누구든 잠만 자는 곳으로 기능하는 공간 정도의 분위기.
쌀쌀하다 못해 스산하다.
그나마 거실이 이 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티가 났는데, 전화기에, TV 리모컨, 잡지며 책까지 거실 탁자에 딱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널 부려 있는 모습이 오히려 반가울 정도였다. 거실 한쪽 벽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벽난로인지 대충 막아놓은 공간이 있고 그 위로 작은 액자들이 두 어 개 놓여 있었다. 어색한 남의 집 구경에 가장 좋은 대화 소재는 역시 액자 속 사진. 어디 보자..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나도 이미 본 듯한, 20년도 훨씬 전에 찍은 이 집 가족사진. 그리고 보니 액자 바로 옆에 향을 꽂는 작은 단지와 물이 담긴 컵이 하나 놓여있다. 직감적으로 돌아가신 큰 어머니를 위한 것이구나… 싶었는데, 역시 M이 돌아가신 엄마를 위해 매일 물을 새로 뜨고 향을 피운단다. 아.. 이럴 땐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가.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겼을 때인데도 왜 나는 시기적절한 대화에 능숙하지 못했던 걸까. 한국말로든 영어로든 순간 뭐라도 위로가 되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어영부영 따뜻한 말 한마디 못 건네고 거실 구경 끝.
보통 남의 집을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집의 좋은 점을 찾아내 대화의 소재로 삼기 마련이다.
작더라도 집주인의 센스가 돋보이는 인테리어나 그 집 식구들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공간, 하다못해 동네 주변 분위기라도 말이다. 집에서 시작해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렇게, 특출 난 것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뭐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하필 이 집은 그런 소소한 일상 정도는 이미 집어삼켜 버린 건지, 당최 집 구경을 하는 내내 자연스럽게 뭐라도 묻게 되질 않았다. 벌서는 것처럼 어딘가 불편하고 애매하다. 어차피 2박은 해야 끝날 일. 내가 불편하면 상대편도 불편한 법, 마음을 가다듬고 1층 화장실과 나란한 큰 어머니가 쓰시던 방의 문을
열었다. 말이 큰 어머니가 쓰시던 방이지 누구 방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으면 그저 창고나 스페어 방으로 보였다.
작은 서랍장 하나와 구석에 중국식 도자기인지 항아리인지 서 너 개가 전부. 하필이면 거기서, 그럴 때, 꼭 나의 물색없는 푼수 기질이 발동을 하는 걸까. 나는 도자기인지 항아리인지를 보자 냉큼, “큰아버지가 골동품을 좋아하신다더니 이런 거를 모으시는구나! 비싼 거지?” 아마도 분위기를 좀 바꿔 보고 싶은 내면적 갈망 정도 아니었겠나..
“어, 모으지. 그런데 다 쓰레기야!”.
이건 경멸이다.
경멸과 분노를 섞어 놓은 듯한 묘한 말투.
쭈뼛 놀라 M을 쳐다보니 꾹꾹 눌러 놓기만 했던 것 같은 과거가 정확한 표현으로, 외침 같기도 한 고백으로 쉬지 않고 나온다. 약간은 상기된 어조로 너도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는 듯.
“3년 전, 엄마는 여기서 목을 메달아 죽었고, 난 그걸 발견했고, 아버지는 그래도 이 집에서 저런
쓰레기들을 못 버리고 살길 원하지. 엄만 아빠가 죽인 거야” 굳이 왜 그랬을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과 다를 바 없는 사촌 누이에게 말로만 들어도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왜.? 3년으로는 감히 삭일 수 없는 엄마에 대한 비참함과 속상함을 어떻게든 입 밖으로 내놔야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큰 어머니가 어떻게, 왜 돌아가셨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가족에게, 너희들이 알고 있는 우리 아버지는 겨우 이런 사람이다! 결국은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신 거고 그러니 절대 우리 아버지를 인간으로 보지 말아라! 하고 싶었던 걸까. 대체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하나 고민 따위 하기도 전에,. “아.. 그랬구나..”
그 누구라도 알아챌 탄식, 깊은 탄식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주저앉을 듯 머리가 핑 돌았다. 아마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감히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 불 수도 없는 M 앞에서 섣부르게 울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울어선 안될 것 같았다.
열지 말아야 할 비밀의 문을 열어 버린 건지 그 이후로 집 구경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온통 머릿속은 이 집의 구조나 가구며, 분위기, 작은 살림까지 모두 돌아가신 큰 어머니와 연관된 사고로 자동 생성, 정리되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가 나머지 방들을 대충 구경하고 우린 재활치료를 받고 돌아오실 큰아버지를 아무렇지 않게 거실에서 기다렸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M은 내가 과연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않고 큰 아버지가 얼마나 고약한 아버지였는지, 몹쓸 남편이었는지, 돈만 아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는지 낮지만 또박또박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못 알아듣는 부분을 애써 다시 묻지 않았다. 이미 충분했다.
2박 3일 동안, M과 큰 아버지는 두 사람이 이야기할 땐,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일어로 대화했고, 그마저도 아주 짧았다.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임에도 M이 큰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는 쌀쌀하다 못해 경멸하는 듯했고, 큰 아버지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셨다. 나 역시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왜 분위기가 안 좋은지 큰 아버지에게 다시 물어볼 수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적당히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 판단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냉랭함이 너무 차가워 내가 알고 말고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느껴져 본능적으로 피한 것이 맞겠다.
큰 아버지는 연세보다 충분히 연로해 보이셨고, 약한 중풍이 지나간 뒤부터 움직이기가 수월하지 않으셨단다. 재활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증세가 호전되길 기대해 받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고 집 밖을 나갈 수 있는 기회이기에 열심히 받으시는 듯 보였다.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상태로 보였지만 당신 스스로는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셨고 이런 큰아버지를 M 역시 식사부터 이동까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동거인이지만 남보다 더 한 남처럼 살고 있는 거다. 식사도 알아서, 잠도 알아서, 들고 나가는 것도 서로 전혀 관여하지 않고.
M과 큰아버지는 한식을 생각보다 좋아했다. 다행히 한인 마켓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구입할 수 있어 나는 남은 하루 동안 두 사람이 열흘은 족히 먹을 양의 국과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를 채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두 번 정도 M을 더 볼 기회가 있었다. 볼 때마다 M과 큰 아버지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그대로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큰아버지는 밴쿠버에서 뵙고 5년 정도 지나서였나, 일본 어느 호텔 방에서 객사하셨고 M은 시신을 옮기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 내내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M은 결혼을 해도 아버지가 죽고 나서 할 것이며, 절대 애를 낳지는 않을 것이고, 지긋지긋한 그 집은 팔아버리겠다고 했었는데, 정말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사귀던 대만 계 캐나다인과 계약 결혼을 했고, 주변에선 돈 때문에 여자가 결혼을 했네 어쩌네 말을 날랐지만 결국 두 사람은 아이를 낳고 진짜 부부가 됐다고 한다. 이후, M과의 연락은 끊어진 거나 다름 없다고 해야겠다. 아버지께서 캐나다를 한 번 방문하셨으나 M은 공사다망 해 아버지를 찾지 않았고, 그 이후 아버지도 나도 큰아버지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그 어느 친족도 살뜰히 M을 찾지 않았다.
지나가면 그만이 아닌 무수한 일들.
잘 견뎌냈으니 더 단단하게 잘 살겠지.
난, 모름지기 M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정말 잘 살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