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법 터득하기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갖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난 내가 적절한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는 적당히 상식적인 경제 인구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적절한 경제관념이란 <버는 것과 쓰는 것의 균형을 잘 맞춘다, 이해타산에 관한 계산에 빠르다, 재산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감각을 가졌다> 이런 것을
의미하기보다 <내가 번 것으로 자력갱생 하기 충분하게 세상은 설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다 보면, ‘남들보다’는 아니어도 ‘남들만큼’은 잘 먹고 잘 살 것이다>라는 의미의 -세상 경제에 대한 낙천적인 믿음-에 가까웠다.
인정한다. ‘적절한 경제관념’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다만 난 사회 초년생으로 바라면 노력하고 노력하면 이뤄질 수 있는 ‘희망적인 경제생활’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모름지기 돈과 재산이란 내 눈 앞에 있고, 만질 수 있어야 내 것이다..라는 쓸데없이 경직된 사고가 더해졌고, 그러다 보니 로또나 숨겨진 재산 상속 같은 건 꿈에라도 바라지 않게 됐다. 그러니 딱히 돈과 연관될 일들이 적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돈 복이란 귀한 건가,…
눈 앞에 두고 만질 돈은 그저 열심히, 고단하게 벌어야 하는 팔자. 나와 내 신랑. 우리가 그랬다.
뭐 고단하게 벌어도 많이만 벌고, 또 잘 쓸 수만 있다면야 무엇이 걱정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았다 더라.. 만 약속된다면 노동의 고단함과 수고로움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용기가 나에겐 아직도 남아 있다. 감사할지어다!
허나 내가 추구했던 자력갱생의 꿈은 신혼시절까지만 해도 여러모로 현실 반영 영역과는 떨어져 있어
벌이는 정해져 있는데 나갈 곳은 수월찮게 많은 적나라한 현실을 맞닥뜨릴 때마다 살금살금 조각났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은 스트레스로 채워졌다.
우선 시작이 잘못됐었다.
‘열심히 일하면 남들만큼은 잘 살 수 있겠지, 혹은 남들보다 잘 살 수 있겠지’, 이렇게 시작하다 보니,
노동이 힘든 게 아니라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의 결과물을 가지고도, 지금 나는 ‘남들만큼’인지,
‘남들보다’인지 비교하느라 힘들었다.
아니 더 힘들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으로 노하우를 쌓고 나서야 속 편한 방법을 알게 됐으나 늦었다고 한탄하지 않겠다.
늦었지만 알았으니 어딘가!!
이거야말로 ‘적절한 경제관념’의 정석이요, 본보기라 할 수 있겠다.
‘남들만큼이고 남들 보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행복할 만큼만 벌어 잘 먹고 잘 살자!’
연애의 끝이 자연스럽게 결혼이던 시절, 그 개념에 딱히 이견이 없었던 데다, 어떤 일이든 늘 깊게 생각하지 않고 덜컥 잘도 결정하는 버릇대로 (지금 생각하면 인생사 내내 몇 번 없을 큰 일을 참 쉽게도 결정했다 싶음) 후다닥 결혼을 추진, 결국은 남편 직장이 있는 강서구와 내 직장이 있는 서초구의 절반, 가운데로 여겨지는 신림동에 신혼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지금이야 집을 구한다 하면, 온라인으로 시세도 알아보고 위성사진으로 동네 사진은 물론 주변 환경까지 전 방위적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는 오직 원하는 지역의 (지금은 거의 사라진) 복덕방이나 부동산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거래 가능한 전 월세 물건이 있는지 확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 한창 유행하던 벼룩시장 같은 지역 정보지를 통해 구인부터 부동산, 중고 물건 등을 중개상 없이 당사자들이 직접 사고팔 수 있었으나 주택과 관련된 거래는 나름 큰돈이 오가는 일이라 오직 지역 정보지의 사실만 믿고 거래하기는 힘들었다.) 일단 집을 중개할 부동산을 정하고 세부적인 브리핑을 부동산 사장님께 한다.
가진 돈이 얼마며, 몇 식구가 살 것이고, 교통이 중요한지, 학군이 중요한지 구하려는 집의 조건을 브리핑하면 중개인은 맞춤 한 집을 소개하고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함께 집 구경을 가는 식이었다.
주 5일제 근무가 시행되기 전이라 우린 함께 집을 둘러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누구라도 가능한 사람이 먼저 집을 보고 마음에 든다 싶으면 남은 한 사람은 퇴근하다 가라도 들려 다시 집을 보고 바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써놓고 보니 마치 집 보러 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는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도) 집을 구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돈이라는 것을. 집이 마음에 들면 돈이 모자라고, 돈이 맞다 싶으면 집이 마음에 들지 않고.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만 가득했지 현실인식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던 풋내기 중
상 풋내기여서 모자라는 예산과 선택 가능한 집 사이에서 널을 뛰던 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몰랐다.
모자라는 돈과 살고 싶은 집 사이를 오가는 동안 스멀스멀 기어 나온 온갖 비교, 걱정, 실망, 불안, 속물근성..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모든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하겠다는 결혼 서약의 그 역경과 고난의 대부분은 돈과 연관될 것이라는 것을!
당시 시댁에선 장남이건 차남이건, 아들이건 딸이건 집을 얻어주고 말고 할 사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 탈없이 회사에 입사한 아들의 월급봉투를 결혼하는 그 날이 지나고도 1년이 넘도록 꼬박꼬박 바로 가져가셨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신랑이 겨우 모은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당시 듣고 싶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은 까짓 안 보고 안 들으면 되는 식으로 문제 해결 방식이 입력돼 있던 신부에겐 가당치도 않은 집들이 었다.
먼저 아파트 포기. 다음은 빌라 포기. 그리고 연립주택도 포기. 남은 건 다 가구 주택이나 상가주택.
두 집을 구경하고 결단을 내렸다.
첫 집. 방 2개짜리 반 지하. 분명 반 지하라는 데 이건 아무리 봐줘도 그냥 지하 방이었다.
지하, 반 지하 거주에 대한 불안감은 무엇보다 곰팡이 때문이었는데 곰팡이가 얼마나 번거롭고 기분 나쁜지 가장 친한 친구의 거주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던 나는 두 번도 안 돌아보고 해 드는 집을 고집, 두 번째 집을 보러 갔다. 2층에 해 하나는 하루 종일 끝장나게 잘 든다는 두 번째 집은 2층임에도 용케 가격이 맞다 싶었더니 상가주택. 한데 하필 복작복작한 전통시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데다 집 바로 아래가 꽤나 규모 있는 정육점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간판임이 분명한 정육점 간판 불빛은 그렇다 쳐도, 냉장고에 켜 놓은 빨간 불빛이 가게
주변을 붉게 물들이다 못해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며 2층 거실까지 넘실거리며 번져 들어오는데,.
아… 묘한 컬트적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패스.
‘몇 집을 더 보나 마나 두 사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이 정돈데 어쩌나..’
반 지하고 상가주택이고 영 마땅치 않아하는 나를 더 마땅치 않게 쳐다보며 현실을 일깨워 준 사람은 바로 부동산 사장님.
과연 당시의 나는 결혼할 준비가 돼 있던 사람이었던가?
생애 어떤 이벤트든 그저 때가 되니 꾸역꾸역 밀려 맞닥뜨려지는 게 아니라, 때가 무르익었다, 이쯤 이걸 해보자, 이 정도면 무리 없이 다음 순서로 넘어가도 되겠다..
준비, 평가, 다음 단계로 실행. 따박 따박 순서대로 진행되듯 살아가면 별 실수 없이 얼마나 평화롭게 살아질까.. 허나, 이것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인생이란 게 절대 순서대로, 예측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결단코 나는 결혼을 위해서 뭔가 진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가는 데로 저절로 준비된 게 있었다면,
1번, 하루라도 빨리 친정 일가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2번, 그나마 신랑 될 사람과 같이 있으면 웬만한 것들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즉, 마음의 안정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로 이번 생은 아닌 걸로 될까 조마조마하던 차, 사랑을 핑계 삼아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저질렀다.
즉, 결혼을 결정하면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 특히 경제문제,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집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전무했다. 다행히 결혼 전까지는 현실과 상관없는 저~어~어~쪽 세상에 살았던 바, 돈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진정한 배려가 아니며, 꼭 남자만 집을 구하느라 큰 지출을 해야 할 이유가 당최 무엇인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약간의 오류를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바로잡기로 했다.
돈을 구하면 된다!
비상금으로 사용할 돈은 물론이고, 신접 살림살이도 대폭 줄여 보탤 수 있는 모든 돈을 보태기로 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