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언저리 옥탑방

: 하늘이랑 가까운 맛에 사는 거지!

by Auntie J

자고 일어나니 오래된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로 핸드폰이 분주하다.

구구절절 내용을 보아하니 아마도 메시지를 보낸 뒤, 내 친구는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을 것 같다.

천천히 생각하고 답해주길 바란다는 덧붙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내 마음은 열 갈래 길을 떠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였다.

자취방 이사를 한 친구를 위해서 각종 생필품을 사 들고 신림동 어느 골목을 찾아 나섰다.

이 골목이 저 골목 같고, 금방 본 이 집이 그 집인지, 그 집이 저 집인지 마치 자가 복제를 한 듯 늘어선

다 가구 주택들로 길 찾기가 막막할 즈음 마중 나온 친구를 따라서야 제대로 길을 들어섰다.


당시만 해도 친구가 자취방을 구한 신림동 일대는 편리한 교통에 각종 생활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전세나 월세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동네였는데 만만한 금액 덕분에 들고 나기 편해서인지 다들 고만고만하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았다. 특히 그 부근은 객관적인 자료를 들어 설명할 순 없지만, 나에겐 왠지 인구밀도가 높은 동네로 여겨졌는데, 집집마다 빼곡하게 나란한 전기 계량기를 보고 있자면 더욱 그랬다. 지붕 하나에 평균 대 여섯이요, 좀 많다 싶으면 여덟에 열 가구까지 종종종 모여 살고 있으니 어찌 인구밀도가 높다 생각되지 않았겠나. 새삼 누가 지었는지 <다세대 주택, 다가구 주택>이란 단어 조합은 실로 탁월한 명명이라 하겠다!


어디든 인구밀도가 높은 주거 조건에선 집 안팎을 치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 친구가 사는 부근도 그러했는지라 모여 사는 어느 누구도 동네 분위기나 집 분위기를 따지며 자리를 잡은 사람들처럼 보이진 않았다.

특히나 집주인들 입장에선 집 자체가 쏠쏠한 수입원일 터이니 한 가구라도 더 들일 수 있도록 갖은 궁리를 다해 집을 활용하는 듯 보였다. 이런 집 들일수록 한 채의 집 좌우로, 혹은 대문이 있는 곳과 다른 반대편에 작은 출입문을 하나씩 더 만들어 놓았는데(대문이 2개라는 얘기다), 어떤 이유에 선지 주인집과 세 들어 사는 집이 다른 대문을 이용해 들고 나도록 만들어 놓았더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방법 치고는 유치하고, 각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과의 동선을 운운하며 설득하기엔 택도 없다.


집의 형태도 가지가지였다.

그나마 반 지하 방은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는 지하 방에 비해서 조건이 좋은 편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창고를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데도 사람 사는 방이라며 전 월세 시장에 나와 있는 것들도 꽤나 많았다. 처음 집을 지을 때부터 여러 가구가 함께 살 것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집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개조한 것이라 살기에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이런 집일수록 1 가구 1 화장실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고 마당 한쪽의 공동 화장실을 세 들어 사는 집들이 같이 이용하기도 했다.


역시 내 친구도 작은 쪽문을 이용해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올라가는 길이 좀 불편해서 그렇지 환기며 채광은 끝내준다고 계속 주저리는 친구 뒤를 쫓아 주인집 현관과는 정 반대인 집 뒤로 발길을 돌리니, 어른 한 사람이 겨우 들락거릴 만한 담과 집 사이의 좁은 공간이 보였다.

일단 들어가는 입구부터 속이 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만 살겠냐,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냐. 여전히 넌 잘 살아내고 있다. 지난 계절 옷이며 조금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세간 곳곳에 핀 곰팡이를 닦아내며 조금만 더 견뎌보자, 그래도 몸이 아프지 않은 게 어디냐, 아직은 나이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 마치 긍정 신이 있다면 접신이라도 한 것처럼, 지나 내나 같은 나이인데 꼭 내가 한참 더 살아본 것처럼 달래고 어르며 이쯤은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일인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소리 지르며 울어버릴 것 같아서. 사는 게 뭐 이따위냐고, 얼마나 애쓰고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거냐고. 결국 친구는 장마철 곰팡이도, 공동 화장실 때문도 아닌 변태 아저씨인지 총각 인지의 과감하고 줄기찬 퍼포먼스 때문에 반 지하 방에서 얼마 지내지 못하고 탈출을 결심해야 했다.

그리고 새로 얻은 집이 바로 입구부터 맘 상하게 하는 이 집이었다.


아, 옥탑이 무엇인가.

주택이나 건물의 맨 꼭대기, 그곳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 바로 옥탑 방이다.

즉, 맨 꼭대기에서 살아야 하니 맨 꼭대기에서 내려와야 하고, 다시 맨 꼭대기로 올라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집에서 옥탑 방을 세를 놓았다는 것은 당연히 옥탑방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세를 놓은 것일 터. 그런데 이 집주인은 세를 놓음과 동시에 주인집 에선 그 누구도 옥탑 쪽으로 드나들지 않을 거라 다짐한 게 분명했다!

친구는 계단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조심해서 올라와야 한다. 경사가 가파르다, 이젠 구두 같은 건 신을 엄두도 안 낸다. 그래도 몇 번 해보니 할 만하다... 묻지도 않은 말을 계속하며 한 덩치 하는 내가 혹여 헛디딜까 앞서면서도 끊임없이 뒤를 힐끗거렸다.


보아하니 집주인은 집을 개조해 얼마라도 목돈이 되는 전세금이며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세를 받는 이웃들을 성실히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집으로 돈을 벌 궁리를 했겠지. 그러나 본인의 집은 도저히 개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거고. 결국 개조가 아닌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낼 것을 결심했겠는데, 그것이 바로 엉성하게 옥상 한가운데 들어앉은 내 친구가 살게 될 옥탑방이라! 없던 방은 생겼으나 옥상으로 오르내릴 계단이 있어야겠고, 계단을 놓기는 놓아야겠으나 시멘트나 벽돌로 쌓아 올릴 정도의 미장공 사는 부담스럽고. 누구 생각인지 간편하고 깔끔하게 걸쳐만 놓으면 되는 계단!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던 모양이다.


딱 옥상과 땅 사이에 ‘툭’하고 철재 조립식 계단을 걸쳐 놓았는데 한번 올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계단을 놓은 사람이나 만든 사람이나 어지간히 생각 없다 한 마디씩 거들게 될 거다.

우선 계단이 열댓 개 정도의 높이가 아니다. 그럴 것이 단독 주택 옥상 위로 올라가야 할 용도로 놓인 계단이다. 족히 몇 미터는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높기만 했으면, 무릎도 좋고 균형감각도 좋은 나이에 무슨 투정이었을까. 좁다! 심하게!! 딱 한 사람 두발 올려놓자 좌우로 움직여질 여지가 박하다. 거기에 계단 세로 폭도 어지간히 좁아 한참 올라가다 발이라도 헛디뎌 뻥 뚫린 계단 사이에 다리가 끼어 대롱 거리며 매달리게 되는 건 아닐까 공포감이 밀려온다. 그런데 여기에 방점. 계단과 계단 사이의 경사가 가히 ‘도전!’이다! 가팔라도 너무 가파르다.

반드시 제정신 일 때만 이 집을 드나들어야겠다 다시 한번 다짐하고 두 팔로 손잡이를 억세게 붙잡고 최대한 발끝에 신경을 모으며 올라가는데, 두 사람이 이어 올라가자니 흔들흔들. 아… 가지가지한다.

부들부들 겨우 오르자 집이라 하기엔 간이 천막 같고 천막이라 하기엔 집 같은 이도 저도 아닌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로 덧댄 엉성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꼭 한 사람이 움직이기에 적당한 주방이 보이고 그 안쪽으로 역시 꼭 한 사람에게 적당한 방이 하나 있다. 옥탑 방의 규모를 보아하니 원래 용도는 분명 창고 정도였는데 살림살이를 가능하게 하려니 부엌 공간이 확보되어야 했고, 그러자니 방 하나를 아마도 1/3 정도 나눠 벽을 만들고 방과 주방의 경계를 지은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구색 맞춰 화장실까지 갖추었는데, 주방 오른쪽을 미장으로 한 단 올려 좌식 변기를 놓고 자바라로 문을 여닫게 만들어 놓았다.


친구의 아버지는 딸린 자식이 6명이나 있는 농부셨다.

오이, 고추, 호박, 배추,. 밥상에 오르내리는 채소 농사를 평생 하셨다. 보통 소를 먹이고 농사지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나니 부모한텐 굽은 허리만 남았다 더라지만, 친구 아버지는 친구가 대학 시험을 보기도 전에 이미 허리가 굽으셨다. 그리고 ‘나는 평생 허리 피고 살아보지 못했지만 너는 다르게 살아야지’... 하시면서 티끌처럼 모으신 종잣돈으로 자식 대학공부를 시키셨으면 좋았을 텐데, 도저히 당신이 감당하실 일이 아니라고 결정하셨단다. 결국, 아들이고 딸이고 목돈 들어가는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할 것을 종용하셨다. 하겠다는 자식 못 밀어주는 부모 심경도 처참했겠지만 남들은 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공부를 꽤나 해냈던 친구는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도 딱 죽고 싶었단다.

결국 하지 말라니 안 하고 말았던 다른 자식들과 달리 친구는 기어이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대학 생활 4년 내내 스스로 호구를 책임지느라 아버지처럼 허리가 굽을 판이었다.


보통 온갖 시련과 고난 뒤에 결실이 있고, 행복해진다.. 자고로 권선징악, 고진감래,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았나. 어찌 됐든 결국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날 테니 견뎌 내보자!라고 다짐하고 마음먹어 보는 게 긍정적 인간의 모습이요,. 되는 집안 이야긴데,. 문제는 그 시련과 고난 한가운데 있는 당사자다.

몰아치는 과한 고난 속에서 일상을 지켜내는 자체가 하드코어가 되면 지쳐 너덜너덜 해지기 마련이고, 해피엔딩이 과연 오기는 하는 건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회의주의자로 노선을 갈아타게 되기도 한다.

뿐인가. 다행히 해피엔딩이라 하자.

너무나 벅찬 감동, 인생에 대한 감사, 믿음, 신뢰, 뭐 이런 류의 단어들이 대거 등장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그 해피엔딩으로 가는 동안 너무 힘들어 벅찰 여력이 과연 남아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일 수도 있다.


결말만 좋으면 모든 시련, 고난, 역경을 싹 이겨내고 잊어버리기에 인간은 너무나 현실적인 바로, 지금이 참 많이 중요한 생명체가 아니던가. 그러니 극적인 해피엔딩보다는 그냥 그저 그런 삶이라도 좋으니 고난이 오더라도 너무 모질지 않게, 시련이 닥치더라도 과하지 않았으면 싶은. 그런 마음이 항상 내 친구를 위한 기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고생이 다양하고도 많았다는 말이다.


한창 더운 여름이 오자 옥탑 방은 끓어오를 듯 더워 친구는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내고 해가 져야 집으로 들어가곤 했고, 한창 추운 겨울에는 주방과 화장실, 물을 써야 하는 곳은 죄다 얼어붙어 역시 밖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그나마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누군가를 거슬리게 한다 해도 옥탑 방이니 아무도 수고로이 올라와 건건이 시비를 거는 일은 아예 없어 좋았다. 우린 눈치 볼 아무도 없고 제약도 없는 그곳에서 취업준비를 한답시고 토플책을 뒤적였고,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배를 깔고 시시콜콜 서로의 연애사와 이별사를 재조명하곤 했다.


반 지하에서 옥탑방으로, 그리고 다시 반 지하로 옮기면서 친구는 꾸역꾸역 대학원을 졸업했고, 결혼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혹은 아직은 고난과 도전이 물러갈 때가 아니었던 건지, 친구는 없이 살아도 사랑이 제일 중요한 부류였던 터라, 많이 넉넉하지도 않고 본인과 여러모로 차이가 많이 나는 신랑과 평생을 지내기로 결심을 했고, 이후 강약의 차이는 있으나 끊임없는 고난, 시련, 도전 등등을 버텨냈다.

그렇게까지 살지 않아도 될 만큼 열심을 다한 내 친구는, 결국 경기도 인근에 집을 장만했고, 곧 아쉬울 것 없을 만큼의 터전을 잡았다.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사람만큼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신랑과 함께. 이 정도면 해피엔딩으로 향하고 있는 중 인건 확실해 보이지 않는가..


바로 답하지 않아도 되니 천천히 생각하고 답해주길 바란다.... 왜 그렇게 열심히, 힘들게 살았던 건지, 이제 답이 좀 보이나 싶은 데, 친구는 모든 걸 정리하고 다른 나라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신림동 언저리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그때보다 더 하면 더했지 나을 것 없는 곳에서 다시 처음을 하고 싶단다.


산다는 게 바로바로 답이 나와만 준다면야 어줍지 않은 희망이라도 잠시 가져볼 법한데, 답이라는 게 아주 한참 지나고 나서야 보이기도 하고, 답이라는 데도 알 둥 말똥 희미하기만 하기도 하고,. 이러니 답을 바라고 살아야 항상 손해만 볼 일이다. 답을 바라고 살지 않으려면 뭣보다 ‘지금’ 집중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마음이 갈피를 잃었으니 ‘지금’에 집중하는 게 가능이나 할까.


아마도 내 친구는 틈만 나고 핑계만 생기면 못 가보고, 안 부대껴본 세상 생각에 마음이 산란할 게다.

당분간 나라도 핑곗거리를 제공하지 말아야 할 듯.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검토한다 하더라도 생각하고 검토한 대로만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인 걸 몸소 체험하는 순간 김이 좀 샜지만, 그래도 어째. 김새면서도 살아지는 게 인생인걸.


사는데 답이 어디 있냐.. 명언 중 명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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