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 = 바퀴 가자 도마뱀 오다.
보통 사람들이 어디든 자리를 잡고 한 동안 머무르며 ‘거주’를 하게 되면 그곳에서 겪어낸 시간만큼 공간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잠시’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딱 ‘잠시’ 만큼만 견뎌내면 되니 도리어 ‘애착’ 따윈 거추장스럽다.
그러나 ‘잠시’를 넘어 ‘꽤나’ 되는 세월을 같은 집에서 겪어내려면 마음가짐부터 바로 먹어야 한다.
내가 살 곳이니 우선 ‘마음’을 줘야 하는 건 당연하고 쓸고 닦고 보살피는 건 필수다.
모름지기 집은 무엇보다 편안하고 안전해야 세월을 함께 견뎌낼 동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해도 걱정은 없다. 다방면에서 편안하고 안전한 거처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더하면 되니까. 그리하다 보면 결국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려 떠나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다. 보낸 시간만큼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만큼 편안해지는 곳. 그런 곳이 ‘집’이어야 한다.
그런데 강남 끝자락 상가주택은 나에게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낯설어지고, 더해서 절대 익숙해지고도 싶지 않은 집이었다. 나이로 따져 한창 철이 없을 때는 이미 지나 갑작스럽게 뚝 내리 꽂힌 생활수준을 탓하며 방황할 때도 아니었고, 부모의 경제 수준 때문에 정체성이 흔들릴 만큼 돈에 민감했던 부류도 아니었는데도 이놈의 집은 나에게 ‘집’이 아니라 거주하는 내내 ‘집구석’이었다.
그리도 지긋지긋했던 이유. 기막히게도 돈 탓도, 사람 탓도 아닌 바퀴벌레 때문이었다.
살다 보면 어디 바퀴벌레뿐 인가. 눈에만 안 보일 뿐, 사람 사는 곳이라면 당연히 공생하는 무리들이 벌레들이다. 물론 나야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일부에선 위생과 청결을 문제 삼아 절대 거주공간 공유를 허락하지 않는 부류들도 있긴 하더라.. 허나 다행히 나와 가족들은 이런 것들을 문제 삼을 만큼 민감한 편은 아니었다.
헌데,. 그 누구도 자신이 처한 상황만큼은 독보적이고 특별해지는 법 아니던가,. 그 집에서 바퀴벌레의 위세는 실로 대단해 결국, 난 바퀴벌레뿐 아니라 세상 벌레란 벌레는 가능하면 박멸해야 하고, 지구를 위해 살려둬야 한다면 특별 구역을 만들어 생존케 하는 건 어떨까..라는 의견까지 갖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 초창기에는 크기가 족히 엄지 손가락 만하더라도, 생각보다 빨라 놓치기 일쑤더라도, 한바탕 던지고, 짓이기는 처절한 전투 덕에 밤잠을 설쳐도, 그래도 야심해서나 만날 수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식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다른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동거 가족이라는 친밀함이 생긴 것인가, 아니면 아무리 때려잡아도 수적으로 절대 우세함을 보여 겁먹게 하려 했음인가,. 어느 순간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악은 어쩌다 화분을 옮기거나 구석진 곳을 뒤질 일이라도 있으면 그야말로 어김없이 떼로 발견되는 일이었다. 잠잠하다 싶어 승리에 도취할 즈음 확인되는
이 떼거지들은 인간인 내가 과연 곤충에게 굴복할 수 도 있겠다 싶은 절망마저 느끼게 했다.
덕분에 바퀴에 관해 세간에 떠도는 관련 잡설은 모두 수집되어 박멸 사업에 철저히 적용, 응용되었으며 적절한 집중 거리가 없던 당시 엄마의 최대 주력 사업이 되었다. 이후 뿌리고, 피우고, 바르고, 붙이고 가 계속됐는데 마트에서 판매되는 기성 제품은 기본이요, 근처 재래시장에서 3일에 한번 만날 수 있던 노점 상 아저씨의 특제 연고까지 구해 도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집안일에 영 관심이 없던 아버지조차 움직이셨는데, 아버지는 바퀴의 출몰은 우리 집의 바퀴 박멸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건물 전체의 비위생적인 환경 문제 때문이니 전 방위적 소독에 힘써야 한다 결론 내리셨고, ‘크레졸’ 같은 독한 소독약을 화장실은 물론이요, 건물 전체가 연결돼 있는 배수구, 건물 아래층 구석구석에까지 분사를 하셨다.
이렇듯 강남 끝자락에서 유일하게 온 가족이 뜻을 같이 해 중, 장기 사업으로 밀어붙인 일이 바퀴 박멸 사업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집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바퀴는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우리 식구들의 주 동거 대상이었다. 마지막까지 순간을 노려 책 날리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민첩하게 스프레이를 발사했음에도 말이다.
아마 바퀴벌레는 강남 끝자락부터 나에게 가능하면 만나고 싶지 않은 인생의 한 장면, 한 상징이 되어 버린 듯 하다. 이런 지긋지긋한 바퀴벌레에 대한 기억은 이후 10년이 넘어서 다시 한번 나를 제대로 괴롭혔다.
2년여,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에 머물러야 했다. 한두 달 일정이 아니다 보니 안정적으로 머무를 곳을 구해야 했다. 피부색 다르고 쓰는 말 달라도 사람 사는 거 어디든 매일반이다 싶어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막상 집을 구하려니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많아 한두 가지가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더해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처리해야 할 일들까지 터져주니, 결국 직접 집을 구하지 못하고 에이젼트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머무를 곳에 대한 특별한 요구사항이야 있을 리 없고, 그저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편했으면 좋겠고, 정해진 예산대로 살아야 하니 우리나라 아파트 급이라는 콘도는 제치고, 저렴하고 교통 좋은 곳으로 구하자 하니, 에이젼트는 정말 더도 덜도 아닌 그 두 가지 요구에 딱 맞는 곳을 골라왔다.
즉,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이사 날짜도 잘 맞아 번잡하게 들고 나지 않아도 됐고, 마침 이사 전 청소를 할 여유도 생겨 시작이 순조로웠다. 낡은 수건을 찢어 걸레를 만들고 청소용 세제는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주방용 세제도 챙겨 2년을 지낼 ‘우리 집’을 맞을 채비를 했다. 의지할 곳 없는 낯선 곳에서 지내기엔 사람이 드문 곳보다 복작거리는 곳이 더 낫겠다 싶어 흔쾌히 교통이 편한 곳으로 결정을 하긴 했지만 지하철역에 시내버스 중간 터미널 정도 되는 곳도 바로 앞에 있어 생각보다 복작댔다. 집이 아파트 13층인데도 대기하고 있는 버스들의 시동 소리가 한데 뭉쳐 뭉글뭉글 올라오는 것이 집이 버스 주차장인지, 버스 주차장이 집인지 분간이 안 되는 듯했다.
게다가 시장과 큰 마트도 2개나 앞뒤로 모여 있어 하루 종일 사람 구경은 제대로 하겠다 싶었는데,.
문득.. 거슬린다,..
아니지, 20년도 아니고 2년을,.. 더구나 이 더운 나라에서 엎어지면 코 닫는 데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장 보는 게 백 번 낫지, 아무렴,. 스스로 위로인지 합리화인지 맘을 다독이면서 쓸고 닦고나 해보자 싶었다.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 이라더만 그 특유의 냄새가 집에 배어 영 낯선 데다 더운 나라라 그런지 바닥도 타일을 깔아 놓아 발 닿는 곳마다 타일 특유의 섬뜩한 차가움에 기분이 싸해졌다.
우리나라였다면 이사를 들어오면서 내 집이 아니더라도 도배나 장판쯤은 새로 하기 마련인데, 길어야 2년, 끝이 정해진 집에 살면서 새로 페인트칠을 하니, 어쩌니 깔끔 떨기가 민망해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만, 벽 곳곳에 누런 자국이며 칠이 벗겨진 천장 구석을 보니 어째 기분이 눅눅해졌다.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쓰면서 일을 해야 하는 법. 제대로 땀 뺄 각오를 하면서 방문을 열었는데!!!
굵고 낮은 내 목소리가 위험이나 공포를 느꼈을 때 정확히 어떤 톤으로 바뀌는지 아마, 그날 제대로 알았던 듯.
검지와 중지를 합한 길이와 넓이의 시커멓고, 둥글며, 곤충으로 인식되나 도대체 저렇게 큰 곤충은 무엇이던가? ‘꺄악!’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서면서 번뜩! 정체를 깨닫는데, 바로! 저것은
‘바퀴! 바퀴 벌레다!!!!!’
아... 징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적당하다.
징하게 크다.
빠른 척 지나가려 하지만 그 큰 덩치에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기괴’ 그 자체다. 내 눈 앞에 이 놈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이 집 어딘가엔 이 무리들이 군집을 이뤄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곧, 집 안팎의 위생 수준이 그다지 양호한 상태가 아니란 것!
나의 청소 작업에 적색경보가 울렸다. 만사를 놔두고 집 근처 마트로 향했다.
젠장! 바퀴다. 하필 바퀴벌레다.
마트까지 가는 동안 계속 불길하고, 여전히 찝찝하고, 뭔가 다 잘 안될 것만 같은 불안감, 공포감이 스멀거린다. 눈이 시큰하다.
가슴 아래부터 뜨끈한 것이 자꾸 울컥거린다.
숨을 입으로 좀 길게 내뱉으면서 시큰한 눈을, 울컥한 가슴을 진정시킨다.
생소한 중국계 마트지만 나 말고도 이 물건을 찾는 사람이 꽤나 많았던 듯. 만국인의 공용, 필수품은 세계 공통 싸인 덕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퀴임이 분명한 시커먼 덩어리를 한 낱 사선이지만 빨갛게 쭉 내려 그은 것이 단번에 처치 가능하다는 박멸의 의지를 한껏 담은 스프레이와 각종 살 바퀴 제재를 꼼꼼히 살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뿌리고 발라줄 테다. 있는 놈들은 싹 쓸어버리고 다시는 못 들어오게 해 줄 테다.
시큰했던 눈에 열을 올리면서 그 와중에 이렇게 작은 글씨는 대체 어떻게 써넣을 수 있는 건지 신기해하며 사용법을 읽고 있는데,. 전화다. 한국이다... 집은 구했는지, 언제 들어가는지, 그리고 밥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온통 내 걱정일 엄마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엄마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박멸의 의지로 열이 올라 있던 눈이 다시 시큰해지면서 적당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포효하듯, 우렁차게 울어버렸다.
기가 막힌 엄마는 대체 무슨 일인지 채근하시는데, 대성통곡을 하면서 한다는 대답이
“아,. 엄마. 어흑. 엉엉엉.. 바퀴! 주먹만 한 바퀴가 있어요.... 엉엉엉...”
집을 나서며 연막 치듯 바퀴 약을 뿌리고 들어와 곳곳을 닦기를 주기적으로, 지치지도 않고, 일관되게 반복했다. 이유 없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힘들어할 즈음, 이웃의 예리한 추리 덕에 이 나라에선 바퀴 약을 자주, 과하게 뿌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나의 신뢰를 넘치게 받고 있던 그 스프레이는 아주 독한 약이어서 뿌릴 때도, 뿌리고 나서도 주의해야 하고 특히 애들 있는 집에선 사용을 꺼려할 정도라고.
아... 적과 함께 죽음도 불사한 나의 비장함이여.....
이후, 노력한 만큼 바퀴가 덜 나왔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그 집에 산 덕분에 비 이성적으로 바퀴를 혐오했던 내가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찾고 ‘바퀴’를 ‘바퀴’로만 판단하게 된 건 기억이 난다.
상가주택에서 갖은 방법으로 몰살시키려 했지만 지치지도 않고 출몰했던 바퀴벌레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마치 벗어나고 싶지만 아무리 노력해봤자 더하면 더했지 나아질 일은 없을 것 같았던 우울했던 그 시절의 불안, 불안의 상징이었다. 난데없이 시커먼 몰골에 예측불허로 나타날 때마다 이유 없는 불안을 남기던 그놈의 바퀴벌레! 쓸데없는 감정이입에 압도되면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건 수순.
그러나 참으로 아니러니 하게 바퀴벌레를 한 순간에 제압할 강적이 싱가포르 집에서 나타났다.
이 놈들에 비하면 느려 터지고 미련한 싱가포르 바퀴벌레쯤이야 손에 잡히는 대로 책도 던지고, 스프레이도 뿌리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그러나 강적은 바로 도마뱀!
손가락 크기부터 손바닥 크기까지, 회색 빛인지, 푸른빛인지, 온갖 찝찝한 색에 재수 없으면 탈색돼 속이 훤히 보이는 도마뱀까지!!! 이틀에 한번 꼴로 부엌에서 마루에서 화장실에서 속속 출몰이다!
차마 난 도마뱀에게까지 책을 날리고 스프레이를 발사할 순 없었다.
살다 보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같이 살며 부대낄 수밖에 없는 별별 문제들이 많은 모양이다.
바퀴벌레에 도마뱀까지.
아,.. 다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