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끝자락 상가주택 2.

: 확실한 건, 나만 아팠던 건 아니다.

by Auntie J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자한 명성까지 얻기엔 대중들의 이해가 너그럽지 못했던 걸까, 동네 마케팅에 한계가 있었던 걸까, 무술 도장은 단원 모집에 그다지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듯 보였다. 결국 혹시라도 지나다니며 어느 집 청년의 웃통 벗은 모습이라도 보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했던 나의 쓸데없는 걱정은 딱 쓸데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고만고만한 애들의 기합 소리며, 혹 운동을 핑계 대고 힘으로 폼 재고 다니는 껄렁한 패들이 들락댈까 미리부터 챙겨둔 짜증과 겁은 딱 그 수준에서 멈출 수 있었다.


엄마는 이미 잃어버린 살림 재미를 상가 주택으로 옮기면서 완전히 잃어버리신 듯했다.

이사하던 날, 작아도 단독주택 하나를 차지했던 우리의 세간은 눈짐작만으로도 상가주택에 쑤셔 넣기엔 넘쳐나 어디에 무엇을 놓고, 어떻게 보관을 해야 할지 모두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모여 어울리기를 좋아해 오가던 친지와 측근들을 빠짐없이 거두셨던 엄마는 음식 잘하고 큰살림하는 자부심을 용도별로 갖추고 있던 주방 용품으로 은근히 나타내셨는데, 각기 다른 용도의 수많은 냄비와 그릇, 접시들은 물론이고, 김장철만 되면 주변 이웃들의 감탄을 자아내던 배추를 재울 통에 다양한 사이즈의 빨간 대야까지 보유하고 계셨다. 지인들의 크고 작은 잔치마다 엄마 세간이 출장을 다녔으니 그 주방 살림 규모를 알만하지 않은가.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간장에 된장까지 직접 담가 먹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듯 한해도 거르지 않고 메주를 띄우고 고추장까지 직접 만들어야 했던 엄마의 필수품으로 장정 두 명은 붙어야 옮길 수 있는 돌절구에 높낮이에 크기까지 각색인 장독 항아리까지 포함돼 있었다.


집을 넓혀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좁혀 가는 마당에 사람이 북적여야 빛을 발하는 엄마의 세간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을 듯했다.

게다가 당시 단독주택에는 빠짐없이 있었던 다용도 공간, ‘광’의 부재로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한 번은 없어서 아쉬운 잡다한 세간들이 자리 잡을 곳이 묘연해졌다. 결국 짐 풀기를 멈추고 풀었던 짐은 다시 싸서 박스 채 쌓아둔 곳이 부엌과 내 방을 잇는, 아파트로 따지자면 뒷 베란다 정도 되는 복도였다.


방 3개 역시 정리와 수납에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용도에 따라 나눠 쓰면 되겠지 했는데, 생겨먹은 건물 모양 자체가 사다리꼴인 것부터가 문제였다. 방 모양이 반듯한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틀이 잡히질 않아 어디는 좁고 어디는 길고 그러니 가구 배치도 어쩔 수 없이 매우 실험적이 될 수밖에.

안방으로 사용한 방은 넓다기보다 긴 방이었는데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준비’, ‘땅’ 외치며 신나게 달리기 딱 좋았다. 그리고 이 긴 방의 길이만큼 벽으로 맞닿은 곳을 부엌과 작은 방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하필 부엌이 중간에 끼어 있어 볕도 잘 안 들고 통풍도 잘 되지 않는 답답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그나마 반듯한 방이 동생과 내가 쓸 방으로 당첨되었는데, 모서리 진 안방과 턱없이 작은 오빠 방에 자리 잡지 못한 가구들은 죄다 우리 방에 집합하게 되었다.


가세가 기울면 값이 나가는 물건은 고난 극복을 위해 처분되고, 값이 나가지 않는 세간은 집을 좁혀 이사를 하니 공간 부족으로 정리되기 마련인데, 우리 집은 기어이 버리거나 처분하는 것 없이 죄다 싸 들고 이사를 했다.

덕분에 이사 당일 주방에 식탁을 놓자 사람 한 명이 겨우 빠져나올까 말까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식탁은 이삿짐 센터의 직원용 식탁으로 용도가 정해지면서 주인도 바뀌게 되었다.


가장 큰 수모를 겪은 가구는 어정쩡한 앤틱 풍의 책장이었다. 간격이 매우 큰 6개의 선반에 여닫는 유리문이 달린 그 책장은 나란히 두, 세 개가 놓여야 웅장하며 고상한 분위기를 내뿜는 가구였다. 그러나 2층짜리 양옥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집의 격에 맞는 가구가 절실했을 때 구입했던 이 책장은 아버지와 엄마의 '내 집'을 나오면서부터 용도 자체가 바뀌었다 하겠다. 가구란 모름지기 그 용도를 짐작해 제작된 것이고, 용도에 맞게 사용되어야 쓸모가 있어지는 법 아니던가. 명색이 책장으로 태어난 이 조합체가 품어야 할 것은 가족 구성원의 손때의 흔적만큼 가치로운 소장도서이었어야 했을 텐데, 정작 그 속에 보관돼 있던 것들은 싱크대와 찬장, 벽장과 선반을 넘나들며 찾아야 할 잡다한 세간들이었다. 물론 책이 전혀 보관돼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언제 구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상가주택까지 쫓아온 <광복 50년 사> 전집과 <카네기 인생 전집>은 유일하게 책장의 용도를 기억하게 해 주는 책들이었다. 그러나 잦은 이사 때문이었는지 ‘전집’은 더 이상 ‘전집’이 아니었는데, 순서대로 맞춰 세우다 보면 몇 권의 책은 이미 사라져 이 빠진 모양 숭숭 구멍이 났다. 그러나 희한한 건 책은 사라졌어도 각 권의 책 박스는 온전히 남아있어 자신의 순서에 용케 꿋꿋이 서 있더라는 거다. 알맹이가 없어도 있는 척. 세워놔야만 했던 건가.


결국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책장은 오빠 방에 한 짝, 동생과 내가 사용할 방에 한 짝씩 나눠 놓였고 책장을 정리하던 나는 책 알맹이는 없고 전시용만 남아있던 박스를 과감히 버렸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들춰 보지 않는 이놈의 책을 왜 이리 고생스럽게 싸 짊어지고 다니는지 울화가 치밀어 죄다 들어내곤 어디든 틈만 있으면 자리 잡으려 줄 서고 있는 온갖 세간들을 책장에 쑤셔 넣었다. 대충 정리가 끝났을 때 아버지는 <광복 50년 사>와 <카네기 인생 전집>이 책장에서 쫓겨 나와 방구석에 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셨고, 책장 문을 여셨다.

그리곤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보따리며 봉투를 한쪽으로 밀고, 더 이상 ‘전집’이 아닌 그 책들을 켜켜이 쌓으시기 시작했다. 전시용으로 나란히 배열하려면 공간을 많이 잡아먹으니 그저 가로로 눕혀 한 권이라도 더 들어갈 수 있게. 그런 아버지 등 뒤로 보지도 않는 책 왜 버리지도 못하냐는 엄마의 사나운 질책이 날아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안 보셨고, 이후로도 안 볼 것이라 추측되는 그 책들을 끝까지 버리질 못하셨다.


언젠가 다시 원래 모습 그대로 반듯하게 열 맞춰 세워놓겠다는 다짐이었을까,.

아님, 책을 구입할 당시 수 십 권이 넘는 이 책들을 읽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그때까지도 버리지 못하셨던 걸까,. 아님, 아직은 이 책을 읽을 때가 아니니 더 묵혀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하지만 결국, 서 있지 못하고 누워있던 <광복> 이들과 <카네기>들은 이후 경기도 인근 아파트로 또 다른 이사를 할 때, 결국 <인생>을 마감했다.


곧 정리될 줄 알았던 강남 끝자락 생활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아버지는 부채탕감을 위해 명예롭지 않은 대신 목돈을 쥐어주는 방식의 퇴직을 선택하셨고, 이후 어떤 일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버지의 기존 커리어 덕에 재취업을 하셨는데, 딱히 가족들에게까지 어떤 류의 일인지 알리고 싶지 않으셨는지, 명함 한 장, 사무실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지 않으신 채 매일 출근을 하셨다. 그리고 아주, 꽤 늦게 귀가를 하시기 일쑤였고, 간혹 집에 들어오지 않으시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손 크기에 맞지 않게 쪼그라든 살림 규모 때문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으셨는데 특히나 동네를 지나 다니는 트럭 아저씨의 바구니 과일을 먹을 때마다 우울한 신세한탄인지, 밑도 끝도 없는 아버지 욕인지 주제는 불분명하지만 듣고 있으면 분명히 기분이 나빠지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셨다.

여러 이유에서였겠지만 우리 집 구성원들은 각자 바로,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열중해야 할 시기라는 기막힌 핑계로 귀가 시간을 늦추거나 끊임없는 약속을 만들어 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최소로 만들어 나갔다. 다들 작정하고 소원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문득 아버지께 <광복 50년 사>나 <카네기 인생 전집>을 구해 드렸어야 했다… 싶다.


맞춤 한 책장에 언젠가 한 번은 꼭 읽고 싶었던 책들을 사서 꽂아 놓고, 내가 원할 때마다 책으로 위안받고 책과 휴식하는 일, 내 손때와 함께 세월을 묵힐 내 책들을 갖는 일. 아마 아버지는 내 집을 사고 나서 그 집에서 그런 일상을 보낼 꿈을 꾸셨을 게다.


집이 자꾸 좁아지더라도,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책이니 내 방에 놓고 싶지 않았어도, 결국은 이 빠진 전집이 돼 버렸다 해도 그 책들을 그렇게 정리해선 안됐었다.


이젠 너무 늦었다.

용케 지금 그 책들을 구해 아버지께 드리면, 아버진 신문 읽기도 힘든데 웬 책이냐며 ‘너나 읽어라!’ 하실 것 같다. 그런데 이젠 내 눈도 작은 글씨의 책은 한 시간이라도 읽어주면 다행인 나이가 돼버렸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구구절절 옳은 소리를 하는 시가 떠오른다.

난 물론 그땐 당연히 몰랐고, 지금도 겨우 알락 말락 하는 미련한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


주말, 책 말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단감이라도 사서 아버지한테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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