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인사 잘해라. 어디서든 인사만 잘해도 찍히진 않는다! 오빠랑 악수할 때 손을 꽉 잡어! 꽉.
잡다 놓지 말고! 남자가 좀 쎄 보여야지!!”
언제부터였을까,.
난 어쩌다가 이리도 씩씩해진 걸까.
아무래도 내가 이 남자보다 100배는 용감무쌍해 보인다.
“5분만 걸으면 된다더니 10분도 넘었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 남자, 계속 투덜댄다. 걷는 게 이리도 싫은데 주야장천 걷기 세계 챔피언을 하고도 남을 나랑 어찌 평생을 살까..
“다 왔어. 다! 무슨 남자가 10분 걷고 힘들어하냐.. 인사 잘해라. 우리 집 식구들 다른 건 몰라도 인사성 하나는 끝장난다.” 하라는 답은 안 하고 이 남자 키득키득, 진짜 웃긴 모양이다.
왜? 뭐야? “야, 진짜,. 세상 별게 다 있네. 강남에도 저런 게 있나? ** 무술이래! 무술! 저런 데를 누가 다니나?”
침착하자. 나도 댁 같았으니까. 아,.... 최대한 담담하게.
“저기야. 저기가 우리 집이야.” “어? 어...” 음,. 이 남자, 순간 당황했군.
어둑해진 뒤라 상호 표정에 대한 배려는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
당시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 결혼할 남자를 우리 집에 데려오는 일.
직사각형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해 확성기 모양과 엇비슷한 사다리꼴 건물. 굳이 자세히 관찰할 사람도
없겠으나 관심을 두고 보면 건물 내부 모양이 참 특이하겠다 싶은 이곳이 그때 우리 집이었다. 건물이 앉은
대지 모양이 원래 그러한지라 건물을 놓을 때도 이런 식으로 밖엔 지을 수 없었겠다 싶긴 하지만,. 참.. 어정쩡
하다. 뒷집 자투리 땅을 조금이라도 더해놓았으면 참 멀쩡했을 텐데, ..
모자란 땅, 딱 여기까지가 이 건물 주인의 관할이었던 모양. 그러나 건물이 앉은자리가 좁거나 반듯하지 않아도 건물 모양으로 멋을 내 그럴싸하게 보이게 할 수 도 있었을 텐데,.
이 건물은 오직 실용이라는 사명만을 타고 지어진 듯했다.
건물 외벽엔 타일처럼 보이지만 타일은 아닌 묘한 외장재를 붙였는데 그마저도 건물 입구가 있는 정면, 한 면에만 발라져 있었다. 건물의 좌우 끝을 정면에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작은 건물인데다 건물이 앉은자리 자체가 살짝 어슷하니 삐딱해 타일 부착의 목적이 분명 외관상 돋보임 같은 이유였을 텐데 아무리 봐도 옷을
입다 만 건지, 벗다 만 건지. 애매하다.
건물의 오른 쪽 끝은 주차장. 그러나 말만 주차장. 건물 식구들 모두가 주차를 하려면 가구 수만으로도 최소 6대 차량의 주차공간이 확보되어야 했지만 오직 2대만 주차가 가능했다. 그것도 나란히가 아니라 세로로 깊숙이. 즉, 앞차든 뒤차든 매너 한번 삐끗하면 분쟁 가능성 농후해지니 각별한 조심 필요. 건물 지하엔 당시 수도권에선 근근이 역사를 이어가고는 있었으나 곧 사라질 것이 분명한 오락실이 있었고, 1층엔 철물점과 도서 대여점,
그리고 특이한 이름 때문에 건물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무술 도장은 2층, 한 층 더 올라가 3층이 바로 우리 집, 가정집이었다.
가게 운영자들 입장에서 이곳은 생업을 이어가는 일터, 건물, 상가라 불렸고, 거주를 목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 식구들에겐 정리된 부동산 용어로 ‘상가주택’ 되겠다.
철물점은 사업의 특성상 웬만한 공구와 생활용품은 죄다 갖추어야 했으니 정리정돈이 잘 돼 있다 해도 미관상 딱히 호감 가는 분위기를 만들긴 힘들었고, 도서 대여점은 한창 유행처럼 번지던 전성기를 이미 지나 사업성으로 내리막을 걷던 때라 입구부터 언제 문을 닫으려나 짐작하게 했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관상 어떠해도 딱히 거슬릴 것 없는 업종이라 이웃사촌까지는 아니어도 사는 동안 오가며 인사도 나누고 소소한 일도 서로 부탁하며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2층, 무술 도장. 그냥 무술도장도 아니고 가장 지독하다는 **부대의 무술을 연마하는 곳이라 써 붙인 그곳은, 당시 도장이라 하면 태권도나 검도, 좀 특이하다 해도 권투 도장 까지만 상상 가능했던 나에게 비 호감을 넘어 혹 동종업계의 사이비 일파가 아닐까 하는 묘한 편견을 갖게 했다. 구체적 자료로 검증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당시 그 계파의 거의 첫 도장, 본원 정도 되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찌 됐든! 남이야 도를 닦든 사이비 무술을 하든, 나와는 도통 상관이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나는 참으로, 참말로 그 도장이 싫었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던 골목길을 사이로 학교와 미장원, 분식집, 치킨 집, 중국집, 약국, 과일가게 등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던 우리 집 근처는 나름 동네의 상가지역 정도 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어느 가게라도 금방 눈에 띌 수 있는 다글다글 좁은 곳이었단 거다.
그런데, 무술 도장에선 지나가는 사람마다 도저히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게 굳이 무지막지하게 큰 간판을
걸었는데, 눈길을 끌 요량이었다면 이름만으로도 충분하고도 이미 남구만 작정을 하고 치장을 한 간판을
내건 거다. 간판 디자인도 이름에 맞춘 게 분명해 보였는데 빨간색과 검은색을 번갈아 조합한데다,
묘하게 흘려 쓴 글씨체 자체가 마치 차력과 스턴트, 좀 나가 무림 세계까지 떠오르게 하는 묘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집을 드나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상가 출입구를 통해 반드시 2층 무술도장을 지나야 3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나는 무술도장의 사범도, 심지어 일개 단원조차 아니었음에도 그 건물에 발 딛는 순간부터 뒤통수가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무술도장에 들어가는지 누가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무술도장 윗 층에 사는지 마는지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 없는 일임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무술도장과 내가
연관 지어지고, 사이비 무술도장의 열혈 단원이 되어버린 듯, 찝찝했다.
이제야 차분히 짚어 생각해 보면 그냥 싫은 게 어디 있었겠나..
아무리 사소한 좋고 싫음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 아니던가.
아마도 당시 내가 살아내야 했던 안팎 상황이 묘하게 나를 자극했고, 거기에 딱 맞춰 무술도장이 자리했던 게
아니었을까..
아버지 자식인 덕분에 무술도장 이웃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그래도 어엿한 대문이 있는 집(잠깐버티며 산 곳
이었다 할지라도)들을 우리 집이라 불렀다. 흔한 말로 ‘하루아침’에 어정쩡한 동네 언저리로, 보기에도 딱
허름한 상가 3층을 우리 집이라 부르게 된 거였다.
그 뒤로 10년은 훌쩍 지나서였겠다.
나이 덕분인지 세월 덕분인지 겨우 제대로 된 눈치가 발동되자 사태의 전후를 얼추 파악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사 전 살던 빌라에서 전세금을 올려 달라 했던 것 같고, 부모님은 목돈 마련이 쉽지 않으셨던 것 같고. 그렇다면 답은 집을 줄이는 거. 그래서 한번 더 이사.
급작스런 신변 변화에 대처한 우리 가족들의 본능적 대응방식은 ‘눈치껏 서로 묻지도 말고 알아도 답하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도 자식들에게 대놓고 설명해야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고, 또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경제적 문제를 자식들과 상의한다거나 배려를 구하는 과정이 매우 난처하거나 내키지 않는 일이셨을
거다. 일차적인 생존환경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타의에 의해 변했을 때, 이성적으로 식솔들에게
앞으로 예상되는 변화를 이해시키고, 무엇보다 겪을 감정적 상처를 세밀히 보살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예외는 아니셨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애써 하시진 않았다.
그러나 쉬쉬한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없던 일이 될 순 없는 법.
알고 있는 걸 적당히 모르는 척 할 뿐이지.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두 분의 언쟁은 갑자기 우리 집이 사라진 이유가 아버지가 당한 “성실하고 신뢰로운 사기’ 때문이었다는 걸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다 알게 되었다 해도, 그래서 뭐 어쩔 건가. 이미 그렇게 된 것을. 다행히 우리 형제 누구도 어정쩡한 동네, 허름한 건물 3층에 살게 되었다고 아버지를 탓할 만큼 뻔뻔하거나 성정이 모자란 부류들은 아니었다. 다만 군대를 다녀온 큰 아들이 있던 그 시점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외치며 ‘내 집 마련’의 긴 여정을 한 번 더 시작하신 부모님, 두 분이 문제였다. 현실을 더 많이, 잘 알고 계셨으니 힘은 힘대로 더 들고, 진은 진대로 더 빠질 밖에. 하필 자식들도 아직 현실에 당당할 만큼 야물게 제 몫을 해낼 상태는 아니었던 지라 가정 형편에 큰 도움도 되질 않았다.
오빠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려 했던 것이 아님에도 남들보다 더 오래 걸려 대학에 진학했는데, 무술도장 윗 층에서 제대를 하고 학교로 돌아간 상태였으니 여러 모로 어수선하고 자신감이 떨어졌던 것 같고. 반면 나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가졌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없으면 견뎌내지 못할 시절 이었던 지라 그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겠다 하루 1000번은 더 다짐을 했던 때였다. 그러나 다짐대로 모든 일이 받아들여지고
이뤄지든가. 다짐은 다짐이고 현실은 현실이지. 반은 사기꾼 같고, 반은 양아치스러운 첫 직장 분위기에 심신이 피폐해 졌음에도 미래를 위해 1년은 다녀봐야 경험이지, 애써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퇴근을 하는데, 그 곳이 딱 3류로 보이는 무술도장 윗집이라..
3류처럼 살게 될까 겁먹었다.
아주 잔뜩.
아버지도 고꾸라지는 마당에 세상기준 어느 하나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은 그저 3류 바닥뿐일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아버지는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 기둥, 배경.. 세상 튼튼한 바람막이가 되어 줄 줄
알았다. 너무 쉽게 그냥 끝나 버리는 건 아닌가 불안했다.
아버지의 실수가 실패가 돼버리고 내 인생도 덩달아 그렇게 실패로 가는 건 아닐까,.
티를 내지 못할 만큼 불안했다.
오직 내속에서 내가 나를 눈치보고, 지쳐 하고, 딱해하고, 그렇게 바라보기를 반복하니 투사니 내사 같은 온갖 심리 상태가 뒤섞인 시절이었다.
그러니 참으로 꼴 보기 싫었던 무술 도장은 내가 그 집에서 살던 동안 이유 없는 눈 흘김을 받아내야 했다.
어쩌면 그 때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게 불안한 청춘을 보내며 널 뛰던 내 마음이 가장 3류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