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살다 보니 다음 달 예정된 이사까지 총 열여덟 번 이사를 하며 살아왔다.
결혼 전 이사가 아홉 번, 결혼 후 이사가 아홉 번이니 결혼이 곧 정착(심적, 공간적)인 줄 알았던 내 판단은 보기 좋게 틀렸다 할 수도 있겠다.
가끔 ‘이사’와 ‘집’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가 되면, 평균 2.5년에 한 번, 스무 번에 육박하는 이사를 했다는 내 이야기에 상대방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세상에나! 고생 많이 하셨군요!”
이삿짐을 싸고 푸는 번거로움이 고생이라면 다행히 나는 그것 때문에 자기 연민을 느끼거나 불행을 느끼진 않는다. 어디 한 곳에 정착해 살지 못하는 부류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함께 불행감을 느끼다 보면 결국 나만 손해더라는 학습의 결과인지 그저 이사는 약간의 노동이 가미된 며칠간의 불편함. 그 정도에서 감정이 정리된 지 오래다. 오히려 새 거처가 좁든, 넓든, 낡았든, 새것이든 시간이 흐르면서 낯선 구석구석이 점점 익숙한 공간으로 바뀌는 과정이 재미로 느껴질 정도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장착된 거다.
그러나 ‘오래’ 머물러 익숙해지고 익숙해져서 편안해 떠나고 싶지 않을 때가 문제가 되긴 한다.
결국 다시 새로 자리 잡으며 ‘정착 중’ 해야 하니 묘한 박탈감, 피로감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총 열여덟 번 이사이나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거주지가 몇 더 있으니 얼추 스무 군 데. 어쨌든 평균 2.5년에 한 번 짐을 싸줬으니 천막만 안 들고 다녔지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현대판 노매드(nomad)로 불릴 법하다.
거주한 주택의 형태로 보자면 (알아먹기 쉬운 우리네 용어로) 단독주택에 아파트, 다세대를 거쳐 빌라, 상가 주택에 기숙사까지 두루 섭렵했고, 금전적 계약의 형태로 따져도 전세에 월세, 자취방 더부살이, 궁극의 자가 소유까지 서류 기재에 올라가는 대부분의 거주 형태는 다 경험했다 할 수 있겠다.
한 자리에 눌러앉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부류들의 안정감이 때론 부럽기도 하지만 현대판 유목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어쩔 수 없던 내 인생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잦은 이동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나는 물론이요, 가족의 질긴 생존능력 배양에 한몫 도움을 준 것도 분명하니 손해만 보고 산 건 분명히 아니지 싶다.
어쩔 것인가. 이미 그렇게 살아버린 것을!!
스무 군데의 집은 스물의 배의 배는 넘을 삶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어느 집에서건 대강 넘어가 준 해가 없었고, 만만하게 살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아량도 세월은 베풀어 주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청소년기를 그 집에서 보냈고, 저 집에선 홍수를 이겨냈고, 이 집에선 내가 부모가 되었고,. 그렇게 어느 한 집에서라도 아프건 기쁘건 기억과 추억이 가득하지 않은 집이 없다.
중년을 넘어서자 만들어질 추억에 대한 기대보다 지난 기억과 추억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좋든 싫든 살아왔고, 남한테 박수까지는 못 받아도 이젠 내가 나한테 손뼉 치는 일에 궁색해지고 싶지가 않다. 그러려니 우선은 지난 시간을 되짚고, 받아들이는 게 순서인데 그때 그 상황이 꽉 차 있었던 공간들,
그때 그 시절의 ‘우리 집’을 빼고는 정리정돈의 개연성이 확 떨어진다.
그리하여 내가 시간을 보냈던 집, 그 집들을 차근차근 다시 들러본다.
해 뜨니 나서고, 별 보면 돌아왔던 나의 베이스캠프, ‘우리 집’에서 난 왜 아팠는지, 무엇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는지,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지, 그래서 어떻다는 건지,
내가 살았던 나를 담았던 집을 이야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