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무수한 빡침의 순간과 마주한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난 스스로에게 참 많이 놀랐다. 나의 내면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화가 자리하고 있었나?
도대체 넌 누구냐?
어린 시절 나는 조용한 편이었다. 친한 친구들하고 소소하게 어울리고, 조금 떠들긴 했어도 큰 말썽은 부리지 않았다. 문학책을 읽었고,공부도 엄청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학급을 사등분 정도 했을 때 늘 위쪽에 있는 편이었기에 엄마도 딱히 나의 학창시절에 관여하지 않았다.
권력욕도 그다지 없었다. 아빠는 이웃의 어려움과 공룡, 우주, 환경에 관심이 많은 나를 기특해 했었다. 대세의 움직임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무난한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의 나와는 너무 다른 아이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군대에 가서 난 인생 최초로 꼴찌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군번을 보면 군사훈련 시절의 점수를 유추할 수 있는데, 웬만한 동기들이 다 14로 시작하는데 나는 15로 시작한다. '군번이 느리다'라고 표현한다. 군 생활을 길게 한다면 평생 가져갈 숫자에 단 4개월간의 첫 훈련 등수를 기재하는 건 너무하는 것 아닌가?
느린 군번의 이유는 훈련 당시 낮은 종합등수 때문이다. 장교는 임관 시점을 전후로 4개월의 군사훈련과 4개월의 병과훈련(전공같은 개념)을 하는데, 임관 당시 나의 군사훈련 점수는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
체력도 좋고, 키작은 애들 대신 M3도 들고 행군했으며, 낙오하는 동기들 있으면 챙겨서 끝까지 함께 갔으며,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데서나 잘 잤는데... 왜?
게다가 총은 오히려 잘 쏘는 편이었다. 사격훈련을 받을 때 일정 점수가 안되면 PRI와 사격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데, 나는 항상 첫 번에 기준 점수를 다 맞추고 '먼저 쉬는 그룹'에 앉아있었다. (PRI 모르는 꼬꼬마는 형들에게 물어보도록, 피날 정도로 알배기는 것)
가끔 직장동료들이랑 총 쏘고 인형받는 가게에 가면, 가게 사장님은 항상 잘 안나가던 큰 인형을 내 손에 쥐어줘야했다. 그런 가게에 가면 보통 남녀의 점수 기준이 다르다. 인형의 크기를 가르는 기준이 낮은데 비해, 웬만한 남자보다 많이 쏴봐서 그랬을 것이다.
사장님, 미안. 근데 여자라고 다 총을 못 쏘는 건 아니에요.
모든 훈련상 큰 결격사유가 없었음에도 나의 종합 점수가 높지 않았던 건,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훈련이 병사훈련과 조금 다른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조직의 리더로서 전장 상황을 시나리오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실전 훈련이 아닐 땐 별 관심이 없던 난 '저게 뭐지?'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몇몇은 재빠르게 손을 들고 발표를 했고, 보통 그렇게 나섰던 친구들이 종합점수 상위권에 있었다.
이 조직의 생존요건이 '나서기'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살고싶으면 나서라.
반장선거도 나가지 않았던 내가 종합행정학교 동기회장, 100명의 첫 회사 동기회장을 자처한 건 그때부터였다. 기회가 있으면 지원부터 했고, 남들이 안하는 곳에 뭐 좋은 것 없나 먼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14년이 채워졌다. 나는 변했고, 적어도 직장에서 꼴찌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경쟁.
학교 다닐때 옆 자리 친구랑 점수를 경쟁하는 건, 진정한 의미의 생존 경쟁은 아니었다. 직장에서 우리는 한 사람 이상을 만나는 출근의 순간부터 퇴근까지 서로가 서로를 평가한다.
기회가 있으면 얼른 그것을 선점하는게 임자이며, 아는 게 적어도 유려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잘한다라고 평가받는다. 진심으로 능력이 좋아서 이직을 잘 하는 사람이나, 정치를 잘해서 실력없이 스텔스기처럼 조용히 묻어가는 사람을 우리는 모두 능력자라 부른다.
후자의 능력자도 잘 되는 꼴을 보면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다보니, 우리에겐 늘 '어느 수준 이상의 화'가 자리하는 지도 모른다. 불편한 시스템과 쓸데없는 간섭, 평가의 불합리함은 덤증정 세트로.
오늘 분노유발자와의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따박따박 논리적으로 말을 하고, 상대를 내 의도대로 조종하려 들었는가? 뛰어노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조용히 책을 읽던 문학소녀는 어디로 갔나?
이유를 알면 좀 나아질까? 조용히 펜을 들고 이 조직에서 나를 화나게하는 순간들에 대해 적어보았다.
첫째, 상대가 말귀를 못알아 들을때
둘째, 조직 내 불합리함이 개선되지 않을때
셋째, 나보다 무능한 사람이 더 높이 올라가거나 좋은 자리로 갈 때
넷째, 내가 해왔던 것보다 못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다섯째, 사방에서 쓸데없이 나의 개인사에 간섭할 때
여섯째, 나의 능력이 생각보다 별로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일곱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가장 나으며 내일도 이곳에 성실히 출근할 것을 알고 있을 때
화남의 이유를 잘 살펴보면, 이 곳이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조직이기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2인 3각만 해도 엇박자가 나는데, 100인 10각정도를 매일 하고 있으니 난리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달라져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인가? 1번부터 5번까지는 내 의지로 해결 불가, 6번은 노력 여하에 따라 약간의 개선이 가능, 7번은 자의반 타의반 킵고잉. 물론 알아도 개선이 어려운 걸 알면, 또 스스로에게 분노할 수도 있다.
심리학적으로 10~15세정도에 형성된 인간 고유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생존하기 위해 터득한 사회적기술로 무장된 '회사에서의 나'는 가끔 낯설다. 직장PRI 10년이상이면 이렇게 직장인간병기가 완성되어 가나보다. 퇴근하고 집에와 조용한 곳에 있으면 어느새 원래의 내가 살금 고개를 든다. 너 아직 거기 살아있구나.
오늘 나를 스물스물 화나게 일이 있었는가? 그럴때면어린 시절, 원래의 내가 나의 사무실 책상 옆에 서서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고 생각해보자. 그 아이가 놀랄까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출 것이며, 세게 말 할 단어들도 조금은 순화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마치 저멀리 뜀박질하는 많은 직장인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한 명의 문학소녀처럼, 귀에 에어팟을 꼽고 오늘 해야할 일을 마쳤다. 누구라도 더 좋은 자리에 갔다면 축하해주고, 누군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두번 말해준다. 세번째도 엉뚱한 말을 하면 근본적으로 그런 자와의 접점을 줄여간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회사는 당신 것이 아니다.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도 된다. 물론 당신이 맘먹은대로 편히 놀지 못하는 '열심족'임을 안다. 동지여, 물 한잔 마실 핑계로 일어나 정수기 앞에서 6초만 숨을 크게 쉬어보자!
오늘도 당신의 이너피스(inner peace)를 기원하며.
[이너피스 꿀팁] - 산책, 명상, 심호흡, 미소. 진부한 것들이지만, 실천해보면 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 맹점은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잘 되지않는다. 사람이 어찌 하루아침에 바뀔까. 노력하고있음에 의의를 두며.
by. 요즘직장생존법, M과장
ps. 내가 어떤 종족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매거진의 이전 발행글, '일의 취향' 편 참고해주세요.
※ '빡침'은 화나다의 비속어입니다. 어원이 그리 좋지 못하나, 화남의 의미로 통용되고있어 일부 사용하였습니다. 고운 말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