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투피스와 함께 불어오는 계절의 향기가 선명한 날이다.
낮의 선선함과 밤의 선선함이 별반 차이가 없는 계절의 중심에 있었다. 만개한 벚꽃들은 흩날리기 시작했고,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은 꽃길을 따라 계절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최대한 감정적이지 않은 배려가 자리 잡고 있었다.
행여나 누구 하나라도 섣부른 마침표로 인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 일찍이였는지, 늦은 밤이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의 주제는 미안함과 섭섭함이였지만 서로가 '이런 일로'라며 조심스러웠다. 그 사람은 다시 먼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배웅을 위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선선한 봄바람이 계속되었다.
며칠간 우리는 함께 걸었고, 손을 마주 잡았었다. 어떤 주제가 없이도 끝없는 대화를 이어 나갔고, 가끔은 질투에 가끔은 역정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비가 오고, 봉오리가 꽃을 피우던 날이 지나고 다른 사람을 위한 배웅에 일찍부터 자리를 비운 그 사람과의 대화가 잠깐 끊어지고 나는 혼자 봄을 맞이 했다.
집에서 5분이면 나오는 벚꽃길을 따라 걷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했다. 기분이 상했을 때,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고 버릇이라 반복적으로 그러했다.
'간다'고 메세지를 보낸 후 족히 하루는 걸릴 줄 알았던 배웅의 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세지로 돌아왔다.
'가지 않았다'고,
역에서 돌아온 그 사람을 만난 곳은 벚꽃이 만개하고 가까스로 메달려 불어오는 바람에 겨우 가지에 있던 꽃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나무들이 즐비한 4차선 도로였다. 버스에서 내려 길건너 나무를 구경하던 그 사람을 보기 위해 서두르지 않은 듯 서둘렀던 내 발걸음이 신호등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빨간 치마를 두른 투피스 차림의 그 사람은 너무 예뻣고, 돌아왔다. 너무 예쁜 차림으로 누군가를 배웅하기 위해 나갔었고, 어떤 사유로 가지 않았다. 나의 연인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를 보낸 나의 연인이기도 했다. 한참 전에 끝난 인연의 마무리가 이제서야 되었던건 해외에서 머무르던 그 사람의 옛 연인이 이제서야 잠깐 돌아왔기 때문이다.
내 사람이기도 했고, 내 사람이 아닌 듯 하기도 했다. 미소가 이쁘고, 눈동자가 아름다웠던 그 사람의 계절에 나는 있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4번이 계절이 바뀌고나서 헤어졌다. 목련이 피었다가 매화가 피었다가, 벚꽃이 피는 짧은 절기에 아직도 표현하지 못한 배려에 오해를 하기도 했고, 아직도 표현하지 못했기에 섭섭함이 커져갔다. 서로가 충분히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던 자존심이 깊었고, 그렇게 깊은 자존심이 하나둘 모여 서로에게 더 상처가 되었다.
지나고 나서 후회는 남지 않았지만, 미안함은 언제까지나 지속된다. 섭섭함이 역정이 되었다가 역정은 이내 미안함으로 바뀌어 잘해주지 못한 미련으로 남을 때, 계절의 향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