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서점의 시작

by 박군

코로나가 시작되기 이전엔 일년에 공식적인 여행은 7번이 있었다.


1월 셋째주는 대방어를 먹으러 제주도

4월에는 벚꽃 시즌에 맞춰 오사카

5월과 12월에는 도쿄가죽박람회 일정에 따라 도쿄

9월에는 1박2일로 후쿠오카

12월 첫째주는 통영에 굴을 먹기 위해

10월이나 11월에는 3주정도 유럽으로 다녀왔다.


2015년부터 매년 여행 루틴은 한 두개씩 늘어나다가 결국은 7개나 되었다. 계기라면 20대 후반에 공황장애를 앓았었고 그것이 공황장애인지도 모른채 사람이 많은 곳을 기피하게 되었는데 전화도 오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해외가 유일한 휴식처가 되었었다.


여행을 가지 못하고 일만 했다. 'Joe튜브'라는 크레이에터가 호주 살면서 주7일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그 말에 적극공감하는 나에게 주말이나 평일 따위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일이 있으면 해야 했고 일이 없으면 없는대로 일을 했다.


주7일의 업무로 삶에 찌들린지 2년쯤 되어서 30년 전부터 살던 벚꽃길이 조성된 우리동네 복개천에서 사람이 북적이는 꽃4월에 서점에 앉아 문을 걸어 잠궈놓고 벚꽃이나 보며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인천 출장이 끝날 때쯤 서점을 임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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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평의 작은 매장을 임차하자마자 도면을 그리고 디자인을 했다. 크고 작은 철거와 셀프 인테리어를 위해 머릿 속은 하루 종일 서점 생각만 했다. 여행을 가지 못한 한풀이라도 하듯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7,900원짜리 간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거나 옆집에서 사온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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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셀프인테리어가 워낙 보편화되어 큰 일은 아니였지만 10년동안 집에서 가죽공방을 운영했고 20년 전 우리 동네에 BKCOM이라는 컴퓨터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망하고나서 생긴 오랜만의 공간이 그냥 좋았다. 벚꽃도 없는 12월의 창 밖 나무를 바라보며 웃기도 했다.


'벌써 좋은데 4월이면 얼마나 더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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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옆에서 '글배우'의 책을 읽던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너는 과거를 후회하니?'

'아니'

'너는 미래를 걱정하니?'

'아니'

'그럼 너는 행복한 사람이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에게 했던 상처의 말이나 행동을 후회하긴 하지만, 다시 볼 기회를 내가 노력하여 만들어야 하는 잘못의 종류는 아니였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아주 오래전부터 별로 하지 않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살아지니 욕심도 없고, 잃을 것이 없으니 불안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독자서점은 그렇게 시작하였다. 아주 오랫동안 일에 지치고 휴식도 없던 30대의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독자가 가끔 어릴적 생각을 할 때, 동네 어귀를 걸으며 하릴없이 하루 종일 먼지나 털고 책정리를 하는 책방사장님이 멋있어 보여서 했던 작은 다짐.


'나중에 서점이나 해야지'


서점에 책이 들어오고 먼지도 없는 책장을 닦고 있다가 들었던 옛생각에 웃음이 났다. 어쩌다보니 이렇게까지 되긴 됐구나, 이미 저질렀으니 이제 하릴없이 먼지나 털고 책정리를 하다가 많이 커버린 벚꽃나무를 바라보며 커피나 마시며 책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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