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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선우 4시간전

검은 눈물을 닦은 기적의 바다

치유 여행기

명상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하는 공부는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대자연과 기(氣)를주고받는 공부이다. 지도선생님은 나에게 만리포 해수욕장을 다녀오라고 했다. 이튿날 만리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넓고 하얀 해변을 맨발로 걸으니 몸 안의 정전기가 발끝을 타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자연 속에서 두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켰다. 지도 법사님은 왜 만리포를 갔다 오라고 했을까? 보통 氣 대사를 하는 여행에는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몸의 병이 낫기를 바라면 소생하는 氣가 있는 내소사를 다녀오고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대구의 달성공원을 다녀오라는 식이다. 이번 만리포 氣운영은 어떤 연유로 내주신 걸까? 내심 궁금해졌다. 만리포에 가기 전 난 조금 우울했다. 회사 생활은 권태롭고, 따로 지내시던 시어머니께서 은퇴와 더불어 함께 살게 됐다. 자유분방하게 살던 집은 어르신 한 분을 모시므로 옷차림에도, 말투에도, 모든 것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했다. 소통은 어려워졌고 집안 공기는 무거워졌다. 할 말 다 하고 살던 내가 말을 삼켜야 하는 상황들이 자주 벌어졌다. 살림의 주도권이 자꾸만 어머니께로 넘어갔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도 없으신 데 자꾸 밥상을 차리셨다. 맛없는 음식을 즐거운 척, 마음에도 없는 웃는 낯으로 먹는 게 곤혹스러웠다. 짜증이 폭발하려던 그때쯤, 지도 선생님은 내게 만리포를 권하셨다. 만 리나 된다는 드넓은 모래사장을 걸어도 내 마음 한구석은 무거운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충 화사한 날 소풍 온 셈 치자고 혼자 위로했다. 동행했던 친구와 천리포수목원을 향해 걷던 중 '태안 유류 피해 극복기념관'을 발견했다. 2007년 12월 7일 선박들의 충돌로 다량의 기름이 유출되어 태안의 온 바다가 시커먼 기름으로 오염이 됐던 그해의 겨울. TV 뉴스로 보여주던 기름 범벅된 검은 바다와 갯벌, 기름 떡칠된 왜가리와 둥둥 떠올라 죽어있던 물고기들의 화면들.' 어쩌냐? 큰일 났네?' 잠깐의 걱정 외에 사는 게 바쁜 난 누군가는 알아서 해줄 거라는 무심함으로 무시했던 그날들을 기억한다. 자연적으로 복구되는 시간이 10년은 족히 걸릴 거라는 뉴스를 들으며 '서해안의 굴은 한동안 먹기는 글렀구먼!' 했던 이기주의와 함께.

그래서였을까? 무언가 홀리듯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코너마다 기름 떡칠된 생명들의 모습, 사람들의 절규가 담긴 눈물을 보았고 어부들은 슬픈 주름진 얼굴로 애꿎은 담배만 피우던 모습이 사진에 있었다. '이렇게나 큰 사고였었어?' 사진을 한 장씩 보며 옆으로 이동할 때마다 철없이 펄럭거렸던 윗도리 앞섶을 자꾸 여미게 됐다. 많은 사람이 그해 겨울 바다로 달려왔다. 차가운 바닷물 온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원봉사를 와 준 이들의 기록과 사진을 봤다. 모두 자기의 일인 그것처럼 당연한 일을 하고 있었다. 내 삶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며 무심했던 나의 무지하고 뻔뻔한 삶에 대한 깊은 반성이 올라왔다.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이곳 태안을 찾아 세계에서, 전국에서 날아와 줬고 난 그곳 어디에 기부금 낸 흔적도 없음을 부끄러워하게 됐다. 시커멓게 덕지덕지 엉겨 붙은 기름은 태안의 바위틈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검은 부끄럼이 되어 내 심장 안에 이기주의로 달라붙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거의 그 바다가 사람들의 손길로 7개월 만에 지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걸 기념관의 기록을 통해서 알게 된다. 좀 전까지 내 발을 담그고 기지개를 켜며 걸었던 만리포 해변은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살아난 실재하는 기적의 바다였다. 그래서 난 이곳에서 기적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기적은 적들에게 쫓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해 홍해 바다를 가르던 하나님만의 능력이 아니다. 태안의 검은 바다가 절망하며 울던 울음을 들은 모든 국민의 손길로 바위틈 모래 한 톨마다 눈물을 닦아냈던 그 손길로 만들어낸 것이 진정한 기적이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태안과 만리포를 향한 미안함과 만리포로 기운영 나온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기름 떡칠된 이기주의를 하나하나 자원봉사자의 마음으로 닦아내야만 내 안에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시어머니와 살아가는 지혜를, 삶이 무료하다는 권태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것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바다가 수많은 사람의 손길로 되찾은 기적의 바다임을 상기시키고 또한 닦고 닦으면 내 안에서도 기필코 기적은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순간.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을 주냐고, 제발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며 말한다. 그러면 그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태안의 유류 피해 복구 기념관과 검은 눈물을 닦은 기적의 바다 만리포를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하는 기적의 현장과 나 혼자 사는세상이 아닌 우리가 모두 만들어냈던 기적의 바다를 보고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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