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의 인생
선릉역 다단계 회사 쇼핑몰 안, 주얼리 샵에서 일하던 때였다.
나를 고용한 사장님은 말수가 적고 과묵한 분이셨고, 주얼리 샵 운영은 경험이 부족한 초보 사장이었다. 다단계라는 구조상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내부 사정 때문에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손님도 없고, 사장님은 종로 3가에 수리를 맡길 제품이 있다며 나에게 함께 가자고 하셨다. 마침 나도 선릉역에서 전철을 타는 것보다 종로 3가에서 집에 가는 게 더 편했기에, 사장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장님이 나와 동갑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따로 물어본 적은 없었다.
그의 차는 그 당시 흔히들 “개나 소나 탄다”라고 농담하던 소나타였는데, 눈에 띈 건 차종에 비해 고가로 보이는 카 스테레오였다.
‘어? 이거 사운드 끝내주는 건데?’
조수석 차문 포켓에는 리모컨으로 보이는 기계가 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금방이라도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할 듯 생긴 최신식 장비였다.
혼잣말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 스테레오면 런던 보이즈(London Boys)의 런던 나이트(London Night) 정도는 나와줘야지. 한 번 눌러볼까?’
나는 사장님께 스테레오를 틀어도 되냐고 물었고, 사장님은 표정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리모컨의 PLAY 버튼을 누른 그 순간
헉!
나 귀신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바로 런던 나이트(London Night)!
오 마이 갓.
한때 나이트클럽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찬란한 시절을 보내던 나의 인생 BGM이었다.
어깨가 절로 들썩이고, 나도 모르게 창을 내리며 외쳤다.
“오빠 달려~~!”
운전하던 사장님은 박장대소를 터뜨리더니 내게 물으셨다.
“실장님, 어디 롤라장 출신이세요?”
나는 망설임 없이, 본능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저요? 성동 롤라장이요. 사장님은요?”
사장님은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웃으며 대답하셨다.
“전 동서울이요!”
그 순간, 우린 마치 서로의 과거를 훔쳐본 사람들처럼 한참을 웃었다.
낯설기만 했던 그 사람과, 말 한마디 없이 출퇴근만 반복하던 일상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한 시절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어색함이 사라졌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젊었을 때 좀 놀았죠?”사장님이 엄청 웃으며 물었다.
하하, 뭐 어떤가.
내가 좀 놀았다고 해서 지금 누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여전히 해피하게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
음악 한 곡이 사장님과 나 사이의 오래된 벽을 가볍게 허물었다.
우리는 각자의 찬란했던 시절을 꺼내 놓으며 웃고, 공감하고, 하나가 되었다.
X세대 그 시대를 관통했던 우리는 런던 보이즈(London Boys), 모던 토킹(Modern Talking)의 노래를 들으며 선릉역에서 종로 3가까지 달렸다. 사브리나(Sabrina)의 보이즈(Boys)가 나올 때는 사운드를 최대로 올리고, 차가 들썩이게 어깨를 흔들며 함께 외쳤다.
“오빠~~ 달려!!!!”
그날 우연히 튼 노래 한 곡이, 서로의 젊음을 알아보게 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을 노래 한 곡이 봉인해제를 한다. 지금은 점잔을 빼고 살지만 누구에게나 있던 찬란하고 반짝이던 그날 그 시간으로 가는 타임머신의 버튼이 되는 것이다. 같은 노래, 같은 공간을 아는 것만으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사장과 직원이 아닌 동시대를 같이 살아온 친구이자 전우가 된다는 마법 말이다.